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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보내신 분의 뜻, 고통의 특권에 대한 왜곡 [더 나쁜 일]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12 조회수438 추천수0 반대(0) 신고

......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아들도 그 안에 생명을 가지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듣는 때가 온다.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요한 5, 17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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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인간의 고통에 가까이 다가오셨습니다. 인간의 고통에 민감하시어 인간 고통의 근원에 뿌리 내려진 악을 물리치시기 위하여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1요한 3, 8 참조) 인간 고통의 근저에는 "죄스런 배경"이 있으며 구원이란 악으로부터의 해방인 것을 말합니다. ;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죄와 악에서 해방되어지는 것이 '구원의 은총'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성전에서 만나시자 그에게 이르셨다.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하셨습니다.

육적으로 건강해지기는 했지만 영적인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죄를 짓지 마라 하시는 것입니다. 공동체가 육적으로 건강해졌다면, 영적으로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죄를 짓지 마라 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할 것입니다.

버려진 이들에게는 더욱 고통없이 살고 싶은 염원이 간절합니다. 성한 사람도 고통없이 살기를 심히 바라는데 하물며 그들이야 더욱 그 청원 함이 애절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들의 고통을 등한시하지 아니하고 그 고통에 일치하는 것이 "그리스도적 고통"입니다 이를 두고서 <고통의 특권>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예수님께서는 인간 고통에 밀접하게 결합하심으로써 고통의 근저에 깔린 '죄스런 배경'을 뿌리뽑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이를 '구원의 은총'이라 하셨습니다. 모름지기 이러한 '그리스도적 고통'에 참여하는 것이 <고통의 특권>이라 할 수 있겠지만 버려진 이들의 고통을 도외시하면서도 풍파가 치는 것을 두고 고통의 특권이라고 하지 못합니다.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하셨는데 이는 특별히 버려진 이들의 고통에 일치하는 그리스도적 고통에 무관심 해서는 안 된다는 주님의 뜻도 담겨져 있다 하겠습니다.   버려진 이들의 고통에 일치하지 못하는 영적인 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죄를 짓지 마라 하시는 것입니다.

물질적인(육적인) 관심사는 영적으로 더 나쁜 일이 일어나게 되는 '죄스런 배경'을 만들어 내게 합니다. '공동체도 영적인 몸'에 해당됩니다. '그 몸'이 건강해 졌으면 죄를 짓지 마라고 하시는 말씀으로써 이는 ['죄스런 배경'을 물리쳐라 (죄짓지 마라)]는 뜻입니다

죄를 짓고 풍파가 치는 것을 두고 <고통의 특권>이라고 하는 것은 물질적인 관심사에만 몰두하기 때문입니다. 물질적인 풍파가 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본질의 왜곡이 바로 영적인 더 나쁜 일이다 할 것입니다.고통의 특권은 '그리스도적 고통'에 참여하는 그런 특권인 것입니다. 

거친(보복 학대하는) 삯꾼에 의해서 <버려진 이들의 고통없이 살고 싶은> 염원을 묵살해 버리며 주님의 은총을 욕되게 하면서 '고통의 특권'을 가진다고 할 수 없습니다.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본다면 예수님께서 하시는 것을 공동체도 그대로 할 따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버려진 이들의 고통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적 고통을, 공동체도 온전히 지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고통의 특권'이며, 자신들의 죄스런 배경 때문에 풍파가 이는 것은 아닐까를 두고서 '고통의 특권'이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할 것입니다.

"육적인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로마서 참조) 성령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일찌기 알았더라면 ㅡ 생명과 평화를 등한시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령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일찌기 깨달았더라면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으며 또한 고통에서 평화로 건너갔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성령의 관심사가 없으니
고통과 죽음 (고통으로 살다가 죽는 것이다는 도식)이 있을 뿐입니다.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 하셨습니다.“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하셨습니다. '고통의 특권'에 대한 왜곡은, 영적으로 더 나쁜 일이됩니다. 

그리스도적 고통에 일치하지 못하도록 혼란과 더 나쁜 영적인 죄를 짓게 하는 것입니다
거친 삯꾼들이 더욱 설칠 수 있게 해 주며,  '주님의 은총'을 더 욕되게 만드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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