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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13 조회수782 추천수1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3월 13일 사순 제4주간 수요일



Amen, amen, I say to you, whoever hears my word
and believes in the one who sent me  has eternal life.
(Jn.5,24)


 
제1독서 이사 49,8-15

 
8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은혜의 때에 내가 너에게 응답하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내어 백성을 위한 계약으로 삼았으니, 땅을 다시 일으키고 황폐해진 재산을 다시 나누어 주기 위함이며, 9 갇힌 이들에게는 ‘나와라.’ 하고, 어둠 속에 있는 이들에게는 ‘모습을 드러내어라.’ 하고 말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가는 길마다 풀을 뜯고, 민둥산마다 그들을 위한 초원이 있으리라. 10 그들은 배고프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으며, 열풍도 태양도 그들을 해치지 못하리니, 그들을 가엾이 여기시는 분께서 그들을 이끄시며, 샘터로 그들을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다. 11 나는 나의 모든 산들을 길로 만들고, 큰길들은 돋우어 주리라.
12 보라, 이들이 먼 곳에서 온다. 보라, 이들이 북녘과 서녘에서 오며 또 시님족의 땅에서 온다. 13 하늘아, 환성을 올려라. 땅아, 기뻐 뛰어라. 산들아, 기뻐 소리쳐라.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로하시고, 당신의 가련한 이들을 가엾이 여기셨다.
14 그런데 시온은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고 말하였지. 15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복음 요한 5,17-30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17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18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기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20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 주신다. 그리고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들을 아들에게 보여 주시어, 너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
21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22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하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넘기셨다. 23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공경하듯이 아들도 공경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자는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않는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26 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아들도 그 안에 생명을 가지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27 아버지께서는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심판을 하는 권한도 주셨다.
28 이 말에 놀라지 마라.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듣는 때가 온다. 29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
30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제가 아는 신부님 중에 옷을 잘 입으시는 분이 계십니다. 신부들은 대체적으로 외모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신부님께서는 다른 신부와는 달리 항상 깔끔한 옷차림과 위아래가 잘 어울리는 옷들을 맞춰 입으십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분들이 비싼 명품을 입고 있다고 생각하더군요. 저 역시 이렇게 멋지고 잘 어울리는 옷이 무척 비쌀 것이라는 생각에 한 번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냥 평범한 옷이었고, 또 가격도 보통의 옷들보다도 오히려 훨씬 저렴한 옷들이었습니다. 누가 입으면 싸구려 옷도 명품처럼 보인다고 하더니만 바로 이 신부님이 그런 분이더군요.

그에 반해서 저는 이 신부님과는 정반대의 평가를 받습니다. 누군가가 값비싼 명품 옷을 사주셨지요. 그러나 제가 입으면 알아주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비싼 옷이라 한 동안 입고 다녔더니 어떤 신부님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좀 좋은 옷 좀 입고 다녀. 왜 그런 옷만 입고 다니는 거야?”

누가 입으면 싸구려 옷도 명품처럼 보이는데, 제가 입으면 명품도 싸구려로 보이는가 봅니다. 그렇다면 그 기준이 과연 사람의 외모만일까요? 아름답고 멋진 외모를 가지고 있어야지만 옷이 더욱 더 부각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 그 신부님은 키도 그렇게 크지 않고, 약간 통통한 느낌을 주는 외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에게 너무 잘 어울리게 옷을 입습니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는 말도 있듯이, 옷을 잘 입지 못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 명품 옷이 전혀 필요 없지요. 그러면서 주님과 우리의 관계 역시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님이라는 명품. 그 명품과 함께 하면서 우리는 과연 나한테 가장 잘 어울리는 분으로 모시고 있을까요? 혹시 옷을 잘 입지 못해서 명품도 명품 같지 않게 만드는 저처럼, 명품이신 주님을 형편없는 분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신 뒤, 당신 편한 대로 사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장 끔찍한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십자가까지도 기쁘게 받아들이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철저하게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맞춰서 생활하셨고, 하느님 아버지의 일을 하신 주님이십니다. 이렇게 하느님과 일치되는 삶을 사셨기에 하느님의 뜻이 세상에 환하게 드러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들 역시 그렇게 해야 함을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명품이신 주님을 세상에 잘 드러낼 수 있도록 내 자신을 바꾸도록 합시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갈 때, 특히 사랑의 삶을 실천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덤으로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되는 내 자신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열심히 한다고 누구나 성공하는 건 아니다. 운과 재능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 그러나 최소한 성공한 사람들 중에서, 열심히 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시카고 한인 성당 내부



12시 30분.

어제 잠을 자다가 시계를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12시 30분.

헉!! 너무나도 꿀잠을 잤다 싶었는데, 12시 30분이랍니다. 왜냐하면 10시에 본당 미사를 하기로 했거든요. 그런데 12시 30분이니 어떻게 합니까? 본당 신부님께서 아마도 제가 시차 적응 때문에 늦잠을 자는 것으로 알고 깨우지 않았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전날 밤에 이번 주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걱정 마세요. 제가 이번 주 미사 다 하고, 강론도 다할게요.”라고 호기를 부린 것이 부끄럽기만 하더군요.

그런데 참 이상했습니다. 전날 밤 11시쯤 잠들었는데, 어떻게 12시간 넘게 한 번도 깨지 않고 잠을 잘 수 있을까요? 평상시에 3~4시간 자는 저로써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아무튼 부끄러운 마음에 밖의 동태를 살피려고 방문을 살짝 열어 보았습니다. 너무 어둡습니다. 그리고 이 어두움을 보면서 비로소 저는 혼자 실컷 웃을 수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12시간 넘게 잠을 잔 것이 아니라, 딱 1시간 30분을 잤던 것입니다. 그리고 안심을 하고 다시 잘 수 있었지요.

이 세상은 오해하고 착각할 것들로 가득한 곳이 아닐까요?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면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실 혼자만의 생각으로 어렵고 힘든 길을 선택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당신과 함께 주의를 기울여 이 세상을 똑바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해주십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길, 그 길만이 가장 편하고 쉬운 길임을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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