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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께서 정하신 계획대로 넘겨지신 예수님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14 조회수310 추천수1 반대(0) 신고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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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속량하시는 죽음

 

하느님께서 정하신 계획대로 넘겨지신 예수님

 

599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한 일은 불행한 상황들 때문에 생겨난 우연한 결과가

아니었다. 베드로 사도가 성령 강림 날의 첫 설교 때부터 예루살렘의 유다인들에게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예수님이 넘겨지셨다(사도 2,23)고

설명했듯, 예수님의 죽음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의 신비에 속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성경의 이러한 어법은 예수님을 넘겨준 440)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미리 써 놓으신

각본을 수동적으로 실행에 옮긴 것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600 하느님께서는 시간의 모든 순간이 실재적으로 현재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그 '예정'의 영원한 계획을 수립하실 때 거기에는 당신 은총에 대한 각 사람의 자유

로운 응답도 포함된다. "과연 헤로데와 본시오 빌라도는 주님께서 기름 부으신 분,

곧 주님의 거룩한 종 예수님을 없애려고, 441) 다른 민족들은 물론 이스라엘 백성과도

함께 이 도성에 모여, 그렇게 되도록 주님의 손과 주님의 주님의 뜻으로 예정하신

일들을 다 실행하였습니다."(사도 4,27-28).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계획을

이루시기 위하여 442) 그들의 무지에서 나온 행동을 허락하셨다.443)

 

출처: 가톨릭 교리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이미 창세기에서도 말씀해 주시고 계시다.

직접적인 구원 계획이라는 단어가 쓰이지는 않았지만 창세기 원복음(창세3,15)을

비롯해 노아에게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두시며 계약의 표징을 삼으시고 다시는

홍수로 모든 살덩어리들이 멸망하지 않고, 다시는 땅을 파멸시키는 홍수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계약을 세우셨다.

 

또한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이런 약속도 주셨다.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너에게 축복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겠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창세 12,2-3)

 

이렇게 모든 종족을 아브라함을 통하여 복을 주시려고 계획하셨는데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가? 그 모습을 성경은 고스란히 담아 전하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를 탈출하기 전에 하느님의 능력과 영광을 직접 자신들의 눈으로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았는가? 성경은 그 모습을 아프게 아프게 보여주고 있다.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이후 카인이 

자신의 친 동생 아벨을 살해하고 죄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공동체의 문제로 

커 나아가고 있는 모습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그를 통해 하느님을 섬기며 

행복하게 사는 길이 어떤 길이지 알려 주시고자 했다. 그 길은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말씀에 어떻게 순명하고 살고 있는지 성경을 통해 묵상해야 할 것이다.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의 삶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부족하고 한계를 지닌 인간을 

행복의 길로 끊임없이 초대하시는 주님의 사랑이다. 이 사랑에 사람으로 완전하게 

응답한 성경의 인물 중에 한 분이 바로 요셉이었다.

요셉을 끝으로 창세기는 막을 내린다.

 

그런데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데 요셉이 죽기 전에 한 말이다.

 

"나는 이제 죽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여러분을

이 땅에서 이끌어 내시어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실 것입니다."

 

요셉은 이스라엘의 아들들에게 맹세하게 하면서 일렀다. 하느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때 여기에서 내 유골을 가지고 올라가십시오." (창세 50,24-25)

 

그리하여 모세는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나왔다고 합니다.

"모세는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나왔다."(탈출 13,19ㄱ)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집트에서 가지고 올라온 요셉의 유골을 스켐에, 야곱이 스켐의

아버지 하모르의 아들들에게 돈 백 닢을 주고 산 밭에 묻었다. 그곳은 요셉의 자손들

의 상속 재산이 된 곳이다."(여호 24,32)

 

저는 이 부분을 아주 인상 깊이 묵상해 보았습니다.

모세는 이집트를 탈출할 때에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자신들이 살아갈 물건을 들고 탈출하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요셉의 유골을 메고

나왔으며 광야 생활 내내 메고 다녔다는 이야기인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저는 성경이 저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은 이것입니다.

요셉의 유언이기에 단순히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나온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요셉은 어떤 분이신가? 창세기의 끝을 장식하신 분이십니다. 무엇으로?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삶으로 창세기를 마무리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며 그의 유골을 가지고 나온 의미는 그들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려면 요셉이 살았던 삶을 본받아야 한다는 의미가 있지 않나?

그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런데 광야 생활 동안 그들이 하느님께 어떻게 했는지요?

광야 생활 40년이 하느님의 계획이었는지요?

그들이 왜 40년을 광야에서 살아야 했는지는 성경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민수기 14장 20절 이하에 그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그들은 여호수아의 인도로 주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

왔습니다. 그러고 나서도 그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잘 보여주는 곳이 판관기이고

판관을 거쳐 왕을 달라고 청해서 왕정국가가 세워지고 그러한 흐름 안에서 그들이

주님의 뜻과 어긋나게 살 때마나 주님께서는 누구를 보내셨는가?

 

많은 예언자들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어떻게 했는가?

마태오 복음 21장 33절 이하에 나오는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마음으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고 보았습니다.

당신이 보내신 모든 종들에게 매질하고 죽이고 돌로 던져 죽이기까지 했지만,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마태 21,37) 고

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긴 글을 서두에 쓰는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당신이 창조하신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교리서가 말씀하시고 계시듯이 "그러나 성경의 이러한 어법은 예수님을

넘겨준 440)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미리 써 놓으신 각본을 수동적으로 실행에

옮긴 것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고 설명하시는 이 부분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가 저의 관심사입니다.

 

저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왜 예수님을 죽여야만 했는가를 알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내내 어떻게 사셨는지요?

예수님의 삶의 모습과 그분의 모든 말씀들이 어땠길래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그다지도 애를 썼을까?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마태 21,32)

 

그들은 생각을 바꾸지 않아서 끝내 요한을 믿지 않았듯이 그렇게 예수님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면 어떤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는 의미인가?

 

율법학자와 바라시이들은 누구보다도 구약성경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우리를 위해 메시아를 보내주시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이사야 예언서에는 그 하느님의 종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들도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그들이 이해한 메시아는 어떤 분이셨는가?

 

예수님께서  모든 말씀과 삶으로 보여주시며 전하시는 하느님의 뜻이 자신들이

이해한 하느님과 달랐습니다.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는 메시아 상과 다른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이미 말했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 ...(중략)..

그러자 유다인들이 돌을 집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너희에게 좋은 일을 보여 주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떤 일로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는냐?'"(요한 10,22 이하 참조)

 

이렇게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과 그래도 온전치는 못하였지만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사람들의 다른 점은 무엇이었을까?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들과 말씀에서 권위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찬양하고 놀라기도 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일을 보도 들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은 왜 정 반대의 길을 걸어야

했는가? 우리는 이 부분을 잘 이해해야 당시의 율법학자와 바리시이들처럼 예수님을

십자가에 또 다시 못 박지 않을
것이라 저는 생각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 계획을 위해 그동안

많은 예언자들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언자들의 말을 듣기는 커녕

배척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라며 못난 우리들을

믿으시고 보내신 당신의 아들을 존중은 커녕 죽였습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라는 마음으로 예수님께서

요나의 표징 밖에 보여 줄 것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부분을 이해한 것입니다.

만약에, 당시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하느님께서 원하셨듯이 당신의

아드님 예수님을 존중해 주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것입니다.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마태 12,41 참조)

 요나 예언자가 니네베에 가서 설교를 했을 때에 그들은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에 '

이르기까지 재를 뒤집어 쓰고 회개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바람대로 그들이 예수님을 존중해 주었다면? 이것이 만약에라는 전제입니다.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오셔서 말씀하신다면 어떤 결과가 나와야 하는지요?

 

저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미리 계획하신 것은 맞지만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라고 각본을 짜서 보내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이러한 어법은 예수님을 넘겨준 440)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미리 써 놓으신 각본을 수동적으로 실행에 옮긴 것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람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아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이야 존중해 주겠지라며

우리에게 희망을 가지고 보내시기는 하시지만 우리들이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들인지

너무도 잘 아시는지라 결말이 그렇게 날 것을 뻔히 아시면서도 그 구원 계획을 실현

하셨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를 잘 아시면서도 불구하고 또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면 어떻게 결말이 날 것인지를 다 아시면서도 당신의 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낸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요한 3,16-19)



바오로 사도가 전하는 하느님의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기에 당신의 외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을 때에

어떻게 되실 것을 아시면서도 보내셨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아, 이 사랑의 깊이를 누가 알 수 있으랴!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악이 세상에 많아지고, 그들 마음의 모든 생각과 뜻이 언제나

악하기만 한 것을 보시고, 세상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

(창세 6,5) 사람들의 악이 세상에 많아졌다고 하십니다. 우리들 마음의 모든 생각과

뜻이 언제나 악하기만 하다고 하십니다. 왜 그럴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늘 깨어 있으면서 우리들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을 가는 것이 아니고 악으로 쏠리는 성향이 있다고

합니다. 저 또한 별 생각없이 하는 제 생각을 잘 들여다 보면 대부분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고 살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여기까지는 제 생각입니다.

다음은 200주년 기념 성서를 옮겨 드리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의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

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사도 2,23)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 미리 정하신 뜻과 계획에 따라", 곧 하느님의 구원경륜에

따라 돌아가셨다(루카 9,22; 17,25;22,37; 24,26; 사도 2,23; 4,28; 17,3). 그러나

동시에 "무법자"(=이방인= 로마인)들의 손을 빌려 유다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했다(루카 23,25; 사도 13,28-29). 그렇다면 이방인들과 유다인들의 사악한

행위까지도 하느님으로부터 예정된 것인가?

 

이런 예정설은 루카를 비롯한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사고방식이나 신학적 관점이

아니라 훨씬 후대의 사변적 신학에서 나온 것이다. 성서 저자들은 단지 인간의

구원 문제에 있어서 하느님이 처음부터 주도권을 쥐고 구원의 실현과정을 당신

뜻에 따라 이루신다는 사실을 강조할 따름이다. 이 계획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무리가 있었음도 아울러 지적한다(하느님의 구원계획과 인간의 역활에 대해

[모든 이에게 평화의 복음을] 35-9 참조)

출처: 200주년 기념성서 623쪽

 
감사합니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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