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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과의 소통 -대화의 기도- 2013.3.14 사순 제4주간 목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14 조회수375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3.3.14 사순 제4주간 목요일 탈출32,7-14 요한5,31-47

 

 

 

 



하느님과의 소통

 

-대화의 기도-

 

 

 


활짝 열린 새벽의 고요를 통해

하느님은 우리를 당신과의 소통으로 초대하십니다.

눈만 열리면 모두가 하느님과 소통의 매개물임을 깨닫습니다.

 


소통은 개방입니다.

소통은 생명입니다.

소통은 사랑입니다.

 


소통을 막는 것이 죄요 불통의 결과 온통 심신의 병입니다.

소통할 때 행복이지만 불통일 때 불행입니다.

소통할 때 천국이지만 불통일 때 지옥입니다.

 


아무리 주위환경이 좋아도 서로가 불통이면 바로 거기가 지옥입니다.


소통할 때 건강이지만 불통일 때 병입니다.

소통할 때 평화이지만 불통일 때 불화입니다.

소통할 때 생명이지만 불통일 때는 죽음입니다.

 


사람은 무엇보다 ‘소통의 동물’입니다.

소통해야 삽니다.

그러나 소통보다 더 중요하고 힘든 것은 없습니다.

영원한 과제가 소통입니다.

 

 

 

 

 


첫째, 하느님과의 소통이 우선입니다.

 

하느님과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자체가 하느님과의 소통을 전제로 합니다.

오늘날 힐링 열풍이나 소통이란 화두도 하느님 빠지면 반쪽에 불과할 뿐입니다.

 

바로 하느님과의 소통이 대화의 기도입니다.


하느님과의 소통은 말 그대로 숨통입니다.

하느님과의 소통인 대화의 기도가 원활해야 영육의 건강입니다.

 


“가장 인상적인 메시지는

  몸보다 영혼을 돌보는 것이 아름답게 사는 첩경이란 점이다.”

 


플라톤의 ‘국가’를 번역한 천병희 씨의 고백입니다.

바로 하느님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영혼을 돌봄이

아름다운 삶의 첩경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과의 소통의 대가가 바로 기도의 사람, 모세와 예수님이십니다.

하느님과 백성을 연결하여 소통으로 연결해주는 모세와 예수님이십니다.

 


소통은 연결입니다.

단절로 소통이 끊기면 죽음입니다.


하느님과 백성을 연결의 소통을 위한 모세의 기도가 눈물겹습니다.

 

모세의 기도는 그대로 하느님과 영적싸움입니다.


모세의 간절한 기도에 하느님은

당신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시고 소통을 회복하십니다.

 


예수님 역시 불통의 유다인들을 향한 노력이 눈물겹습니다.

하느님과의 소통인 직통로인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 예수님의 하신 일들, 하느님, 성경이 증언하는 데도

예수님을 믿지 못해 불통의 삶을 사는 유다인들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불통보다 큰 죄도 병도 없습니다.


우리를 하느님과의 소통으로 초대하시는 길이자 진리이자 생명이신

예수님이 아니곤 아버지와의 소통은 불가능합니다.

 

 

 

 

 


둘째, 소통의 전제는 신뢰와 사랑입니다.

 

말과 글은 소통의 매개물입니다.

서로 간에 소통하라 있는 말과 글입니다.


그러나 말과 글도 마음의 표현입니다.


신뢰와 사랑의 마음 있어야 온전한 소통입니다.

 

신뢰자체가 소통이요 소통의 완성입니다.

무신불립, 신뢰가 없으면 애당초 소통은 불가능합니다.


부부간이든, 친구간이든

말 없어도 신뢰와 사랑이 있어 서로 편안한 가운데 깊은 소통입니다.


모세가 이렇게 하느님께 당돌하게 설득의 기도를 바칠 수 있었던 것도

하느님께 대한 깊은 신뢰와 사랑이 있어 가능했고,

하느님 역시 백성은 못 믿어도 모세는 깊이 신뢰하고 사랑했기에

그의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경우도 모세와 똑같습니다.

세상 그 누구도

하느님과 예수님 간의 신뢰와 사랑의 소통 관계를 넘어설 수 없을 것입니다.

 

 

 

 

 


셋째, 소통은 끊임없는 훈련과 노력, 배움을 필요로 합니다.

 

소통보다 더 어려운 공부는 없습니다.

저절로 소통은 어불성설입니다.

평생공부의 대상이 소통입니다.

 


늘 공부해도 늘 처음처럼 어려운 게 소통입니다.

방법은 훈련과 노력, 배움뿐입니다.


우리가 매일 바치는 성무일도와 미사와 공동전례기도, 교회의 모든 성사가

바로 하느님은 물론 이웃과의 참 좋은 소통의 훈련이자 공부입니다.

 


끊임없이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을 통해 하느님과 소통할 때

저절로 영육의 치유와 건강입니다.


그러니 하느님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마련해 주신

교회의 성사와 전례가 참 고맙습니다.

 

고백성사를 줄 때마다 느낌은 하느님과의 소통을 회복하여 살게 해 주는

고백성사가 참 고맙다는 것입니다.

 

 

 

 

 


넷째, 하느님과의 소통과 이웃과의 소통은 함께 갑니다.

 

하여 사랑의 이중계명입니다.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할 때 하느님과의 원활한 소통이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때 이웃과의 원활한 소통입니다.

사랑의 이중계명의 실천을 통한 소통의 완성입니다.

하느님과의 소통 없는 이웃과의 소통은 늘 불완전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라는 자작시의 다음 연 역시

소통의 관점에서 보면 그 이해가 확연해 집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활짝 열린 앞문, 뒷문이 되어 살았습니다.

 

앞문은 세상에 활짝 열려 있어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환대(歡待)하여 영혼의 쉼터가 되었고

 

뒷문은 사막의 고요에 활짝 열려 있어

 

하느님과 깊은 친교(親交)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느님과의 소통은 물론

이웃과의 소통의 대가이자 달인이신 모세와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하느님과는 물론 이웃과의 소통을 회복시켜 주시어

우리 모두 건강한 영육으로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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