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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16 조회수580 추천수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3월 16일 사순 제4주간 토요일



"Never before has anyone
spoken like this man."
(Jn.7,46)



 
제1독서 예레 11,18-20

 
18 주님께서 저에게 알려 주시어 제가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그들의 악행을 보여 주셨습니다.
19 그런데도 저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 같았습니다. 저는 그들이 저를 없애려고 음모를 꾸미는 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저 나무를 열매째 베어 버리자. 그를 산 이들의 땅에서 없애 버려 아무도 그의 이름을 다시는 기억하지 못하게 하자.”
20 그러나 정의롭게 판단하시고, 마음과 속을 떠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


 
복음 요한 7,40-53

그때에 예수님의 40 말씀을 들은 군중 가운데 어떤 이들은, “저분은 참으로 그 예언자시다.” 하고, 41 어떤 이들은 “저분은 메시아시다.”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42 성경에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그리고 다윗이 살았던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는가?” 43 이렇게 군중 가운데에서 예수님 때문에 논란이 일어났다. 44 그들 가운데 몇몇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께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45 성전 경비병들이 돌아오자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왜 그 사람을 끌고 오지 않았느냐?” 하고 그들에게 물었다.
46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고 성전 경비병들이 대답하자, 47 바리사이들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도 속은 것이 아니냐? 48 최고 의회 의원들이나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그를 믿더냐? 49 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은 저주받은 자들이다.”
50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전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51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 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52 그러자 그들이 니코데모에게 대답하였다.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
53 그들은 저마다 집으로 돌아갔다.






처음으로 성당에 다녀온 어떤 형제님께서 성당을 열심히 다니고 있는 친구에게 정말로 궁금한 것이 있다면서 묻습니다.

“나 오늘 처음으로 성당에 다녀왔는데, 신부님 말씀이 너무 이상해. 원래 성당의 신부님 말씀이 이상한건가?”

친구는 “아니, 뭐가 이상한데?”라고 반문했지요.
 

“신부님께서 자꾸 ‘가톨릭은 질립니다.’라고 말씀하시잖아. 아니 자기 스스로 가톨릭이 질리다고 하다니, 내가 과연 이런 성당에 나가야할까?”

잠깐 생각했던 친구는 그 이유를 곧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웃으면서 말합니다.
 
“신부님께서 ‘가톨릭은 질립니다.’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가톨릭은 진리입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겠지. 바보야! 네가 잘못 들은 거야.”
 
아무 생각 없이 문득 듣게 되면 정말로 그렇게 들을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러나 생각하고 듣는다면 어떨까요? 절대로 그렇게 들을 수 없습니다. 즉, 자신이 얼마나 주의 깊게 생각하며 듣느냐에 따라 상대방의 의도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모습은 주님과의 관계 안에서도 똑같이 이루어집니다. 주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행하시는 그 뜻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합니다. 하지만 주의 깊게 생각하면서 듣는다면 내 삶 안에서 어떤 일이 발생해도 주님의 사랑 안에서 늘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과연 주님의 말씀을 얼마나 주의 깊게 생각하면서 들었을까요? 과거 이스라엘 사람처럼 주님의 말씀을 전혀 듣지 않으려는 딱딱하게 굳은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과거 이스라엘 사람들은 철저하게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특히 더 많은 교육을 받았다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예수님의 모든 행동과 말씀을 부정했지요. 그리고 오늘 복음에 나오듯이 예수님의 출신 성분까지도 드러내면서 절대로 메시아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앎은 과연 올바른 것일까요?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성경에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그리고 다윗이 살았던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들의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들은 제대로 알지 못했지요.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서 오랫동안 사시기는 했지만, 성경에 나와 있는 것처럼 분명히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하셨던 그 모든 말씀을 주의 깊게 생각하면서 듣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함부로 주님을 판단하지 않으며, 철저히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순시기도 막바지에 들어섭니다.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이 사순시기. 그러한 주님의 사랑에 비해 우리는 얼마나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는지를 반성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모두는 인생의 격차를 줄여 주기 위해 있는 누군가 덕분에 힘든 시간을 이겨 내곤 한다(오프라 윈프리).

 

미국에서 제일 높다는 윌리스 타워에서 폼좀 잡아봤습니다.



기막힌 처방(‘좋은생각’ 중에서)

어느 잡지에서 본 글입니다. 이 글을 보면서 희망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됩니다.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희망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지요. 희망 역시 자신의 적극적인 어떤 행동과 의지 없이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을 이 글을 보며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날, 한 회사에서 비서로 일하는 여인이 심리학자 밀턴 에릭슨의 진료실을 찾아왔다. 그는 자리에 풀썩 앉더니 인생에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자기를 좋아하는 남자도 없고, 직장 동료들과 원만하게 지내지 못해서 사는 낙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 보니 옷도 대충 입으면서 엉망으로 살았다며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찾아온 거라고 덧붙였다.

묵묵히 듣던 에릭슨이 입을 열었다.

“어차피 마지막이니 그동안 저금해 둔 돈이나 다 쓰는 게 어떨까요? 예쁜 옷 사 입고, 파마도 하고요. 그 다음에는 점심시간마다 쉬러 간다는 분수대에서 자주 옆에 말없이 앉아 있던 남자가 보이면 물을 뿌리고 도망가세요.”

“네? 제가 어떻게 낯선 남자에게 그런 장난을?”

여인은 고민 끝에 에릭슨의 말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은행에서 돈을 모두 찾아 옷과 구두를 사고, 파마하고, 아름답게 화장했다.

그러고는 다음 날, 분수대로 갔다. 어김없이 옆에 앉은 남자에게 물총을 쏘면서 장난을 했다. 그 일을 계기로 남자가 말을 걸었고, 둘은 이튿날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그로부터 몇 개월 뒤, 그는 에릭슨에게 청첩장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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