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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녀의 반전 [그들 공동체의 돌]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16 조회수675 추천수0 반대(0) 신고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가거라.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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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라고 요한 복음은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않았느냐 그런데도 너희 가운데 율법을 지키는 자가 하나도 없다. 도대체 너희는 왜 나를 죽이려고 하느냐.....너희는 안식일에도 사람들에게 할례를 베푼다. 모세의 율법을 어기지 않으려고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데, 어째서 내가 안식일에 한 사람의 온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준 것을 가지고 나에게 화를 내느냐 (요한 7장)] 

모세의 율법에 따라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는 규정과 방침에 따라 돌로 죽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간음한 여자가 아니더라도,  예수님과 제자들도 모세의 율법 규정을 어기는 일들이 종종 기록되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로 율법의 규정들에 예외가 되지는 않으셨습니다.

율법 아래의 모든 사람은 율법으로 단죄받고, 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단죄하지 마라 심판하지 마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이처럼 율법으로 단죄하지 말며 율법으로 심판하지 마라는 의미에서 율법의 사슬로부터 풀려져 나오기를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시고자 창녀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문자로 씌여진 '옛 법'과 성령으로 씌여지는 '새 법'의 상호 충돌이 일어나고 있는 공간과 시간 가운데의 모습입니다. 늙은 법은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처럼 해가 지듯이 지고 새로운 창조의 빛이신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율법의 규정들과 방침들로 추해지고 상처받은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공동체 사람들은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그나마 제 양심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옛법의 온갖 규정들 안에서 단죄하고, 심판하며 설쳐대는 '고통과 죽음'의 마귀들을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물리치셨다 할 것입니다. 이는 "너희 가운데 이미 하느님의 나라가 온 것이다"(루카 11, 20 참조)를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간음의 우두머리이다' 하고 말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버려진 이들과 어울린다고 '죄의 우두머리, 버리는 우두머리'가 되시는게 분명히 아닌 것입니다. 그들과 어울린다고 해서 간음이 많아지고 죄가 많아지며 버려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겠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사랑 그 자체이신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파괴자가 아니라 율법의 완성자가 되십니다. 사랑은 율법을 파괴하는게 아니고 오히려 율법을 완성시키는 것입니다.추하고 상처입은 사람은 공동체가 아니었습니다. 

'죄스런 배경의 본질'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내부적으로 지니고 있던 공동체는 사랑에 어긋나는 규정들과 방침들을 결국 만들어 내게 되어지는 법이고 '사랑없이' 거룩하고 완전해 보이고자 그 '단죄의 돌'을 예수님(사랑) 앞에서 집어 들었다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의 법은 사랑에 어긋나는 공동체의 돌을 저마다 내려 놓게 합니다
사랑으로는 단죄할 수 없고 심판할 수 없는 규정입니다. '아빠'가 공동체 방침에 따라 단죄를 받아야 한다면 그들은 더 큰 단죄와 심판을 받아야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여기서의 '창녀'는 달라집니다. 죄스런 배경의 본질을 내부적으로 지니고 있는 '창녀'는 돌을 집어든 사람들 곧 예수님의 사랑을 등한시 했던 '그들 공동체' 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가거라.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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