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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17 조회수554 추천수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3월 17일 사순 제5주일



“Let the one among you who is without sin
be the first to throw a stone at her.”
Again he bent down and wrote on the ground.
(Jn.8,7-8)


 
제1독서 이사 43,16-21

 
16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은 바다 가운데에 길을 내시고, 거센 물 속에 큰길을 내신 분, 17 병거와 병마, 군대와 용사들을 함께 나오게 하신 분. 그들은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꺼져 가는 심지처럼 사그라졌다.
18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
20 들짐승들과, 승냥이와 타조들도 나를 공경하리니, 내가 선택한 나의 백성에게 물을 마시게 하려고, 광야에는 샘을 내고, 사막에는 강을 내기 때문이다. 21 이들은 내가 나를 위하여 빚어 만든 백성, 이들이 나에 대한 찬양을 전하리라.


 
제2독서 필리 3,8-14

 
형제 여러분, 나는 8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오는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움, 곧 믿음을 바탕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지니고 있으려는 것입니다. 10 나는 죽음을 겪으시는 그분을 닮아, 그분과 그분 부활의 힘을 알고 그분 고난에 동참하는 법을 알고 싶습니다. 11 그리하여 어떻게든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2 나는 이미 그것을 얻은 것도 아니고 목적지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차지하려고 달려갈 따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셨기 때문입니다. 13 형제 여러분, 나는 이미 그것을 차지하였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달리고 있습니다. 14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로 부르시어 주시는 상을 얻으려고, 그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 요한 8,1-11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2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3 그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4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5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6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7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8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9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11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지금 잠시 머물고 있는 시카고와 한국 사이에는 14시간이라는 시간 차이가 있습니다. 즉,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카고 오후 3시가 한국에서는 다음 날 새벽 5시이라는 것입니다. 이 시차 때문에 상당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열심히 활동할 낮 시간에 너무나도 졸리고, 모두가 잠들어 있는 밤 시간에는 전혀 잠이 오지 않고 두 눈이 더욱 더 초롱초롱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몸이 요구하는 한국 시간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곳 시차에 맞추기 위해 낮 시간에는 절대로 잠자지 말고 밤에 잘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지금 어떻게 할까요? 사람들의 이런 의견을 따르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저는 제 몸이 원하는 대로 낮에 졸리면 자고, 또 밤에 졸리지 않으면 그냥 깨어 있습니다. 앞으로 며칠 뒤에는 한국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시카고에서 더 오랜 시간 있어야 한다면 여기 시차에 따르도록 노력하겠지만, 다시 한국에 돌아갈 것이 분명한데 굳이 이곳에 시차 적응을 해놔서 한국 가서 다시 힘들게 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꼭 적응해야 할 환경이 있고 그렇지 않은 환경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유익을 전해줄 환경이라면 적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따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들이 생각하는 그 유익의 기준이 참으로 이상합니다. 그 기준이 바로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에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정말로 우리가 적응해야 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환경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의 환경은 ‘내’가 중심이지만, 하느님 나라의 환경은 ‘우리’가 중심입니다. 이 세상의 환경은 ‘물질’이 최고이지만, 하느님 나라의 환경은 ‘사랑’이 최고입니다. 이 세상의 환경은 ‘미움과 다툼’이 가득하지만, 하느님 나라의 환경은 ‘용서와 화해’가 가득한 곳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을 데리고 옵니다. 그들은 이 여인을 모세의 법에 따라 돌을 던져 죽여야 할 것인지, 아니면 그냥 풀어줘야 할지를 묻습니다. 만약 모세의 법을 지키라고 하면 그동안 강조하셨던 ‘사랑’은 어떻게 된 것이냐고 따질 것이고, 그냥 풀어주라고 하면 모세의 법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냐면서 고발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명확하셨습니다. 세상의 환경이 아닌 하느님의 환경을 철저하게 따르시기에 이렇게 자신 있게 말씀하셨던 것이지요.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세상의 환경을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던 그들은 하느님 나라의 환경을 따르는 예수님의 말씀을 물리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아무도 돌을 던지지 못하고 부끄러워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우리가 따르는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잠시의 만족만을 가져다 줄 세상의 환경을 따르기보다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하느님 나라의 환경을 따르는데 최선을 다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당신이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지 누군가 물으면 대답해라. “물론이죠.” 그다음 어떻게 그 일을 해낼지 부지런히 고민하라(시어도어 루스벨트).


정말로 높은 빌딩인데 위에서 보니 별 것 아니네요.



행복과 커피

새벽에 일어나 모닝커피를 마십니다. 빈 속으로 들어가는 커피 한 잔은 저를 번쩍 깨웁니다. 그리고 뜨거운 커피 잔을 들고 있는 편안한 지금 이 순간이 ‘참 좋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해야 할 일들은 해야겠지요.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커피 잔을 손에서 놓아야 합니다. 계속 손에 쥐고 있으면 타이핑도 할 수 없고, 책을 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행복도 이런 것이 아닐까요? 행복 역시 무조건 붙잡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행복을 꼭 움켜잡고 싶지요. 그러나 커피 잔을 움켜잡고 있으면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지금의 행복 역시 움켜잡고 있으면 다른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즉, 행복을 손에서 내려 옆에 두어야 다른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일들을 통해서 또 다른 행복을 내 손에 잡을 수가 있는 것이지요.

지금의 행복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갖지 마십시오. 그래야 이 행복을 내려놓고 다른 행복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지금 힘들어도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 다시 옆에 놓여 있는 행복의 잔을 들고서 천천히 음미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이 행복만을 움켜잡으려 한다면 다른 것들을 절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별 생각을 다하죠? 그 사이 커피가 다 식었네요. 그런데 차가운 커피 역시 맛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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