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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월18일(월) 聖치릴로, 聖살바토르 님
작성자정유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17 조회수295 추천수1 반대(0) 신고



3월18일(월) 음2/7

聖치릴로, 聖살바토르


 


치릴로(3.18)

성인명

치릴로(Cyril)
축일 3월 18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교부, 교회학자
활동지역 예루살렘(Jerusalem)
활동연도 315?-387년
같은이름 시릴, 시릴로, 시릴루스, 치릴루스, 키릴로, 키릴로스, 키릴루스


315년경 예루살렘에서
로마 제국 황제 가문의 그리스도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듯한
성 키릴루스(Cyrillus, 또는 치릴로)는 예루살렘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았으며,
342년 또는 그 후에 성 막시무스 2세(Maximus, 5월 5일) 주교에게 사제품을 받았다.
성 키릴루스는 수년 동안 예비신자 교육에 전념하다가
350년 또는 351년에 예루살렘의 주교인 성 막시무스 2세가 사망하자
그를 승계하여 주교가 되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대한 교계적인 관할권을 주장하던
카이사레아(Caesarea)의 아리우스파(Arianism) 주교이던 아카키우스(Accacius)
아리우스주의자들에 의하여 그는 자신의 주교좌에서 해임되고 유배를 당하였다.
또 다른 이유는 성 키릴루스가 아리우스파에 반대하는 인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재산을 매각하여 기근의 희생자들에게 주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교회 재산을 불법으로 매각했다는 누명을 쓴 성 키릴루스는
타르수스(Tarsus)로 갔으나 359년 셀레우키아(Seleukeia) 주교회의에 의해
복직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재차 아카키우스의 음모에 의하여
황제 콘스탄티우스로부터 축출되었다가,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에 의하여 다시 복직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성 키릴루스는 367년에 세 번째로 유배되었으나,
발렌스 황제가 율리아누스 황제의 통치 기간에 유배된 모든 종교인들을
사면함으로써 석방되어 다시 주교좌로 돌아왔다.

또 다음 해에는 안티오키아(Antiochia) 공의회가
니사(Nyssa)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3월 9일)를 팔레스티나(Palestina)로 파견하여
그가 역설하던 ‘호모우시오스’(Homoousios)로 인한 잡음을 조사하게 하였는데,
이 용어는 니케아(Nicaea) 신경의 기본 용어이다.
성 그레고리우스는 예루살렘 주교좌는 파벌주의와 아리우스주의로 뒤엉켜 있고
또 윤리적으로 타락해 있다는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성 키릴루스의 신앙과 그 주교좌는 올바르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 후 성 키릴루스와 성 그레고리우스는
381년의 제1차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공의회에 참석하였고,
여기서 성 키릴루스는 니케아 공의회의 정통 교리를 따르는 주교로 인정받았다.

사실 성 키릴루스는 성서학자이자 뛰어난 설교가였으며,
347년의 사순절 동안 사용한 그의 “교리서”는 세례 준비자에게
명쾌한 교리 해설서가 되었으며,
4세기의 팔레스티나 전례를 자세히 보여주는 유명한 교리서였다.
역사가인 소크라테스와 소조멘은
성 키릴루스는 철저한 아리우스주의 반대자였고,
그의 정통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기술하였다.
387년 3월 18일에 세상을 떠난 그는 교황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굿뉴스 자료집에서 발췌


예루살렘의 교회학자 성 치릴로 님이시여
님을 기억하는 오늘

저희가 언제나 올바른 교리 안에 머물 수 있도록
천상의 기도를 보내 주옵소서!....아멘

 


 


살바토르(3.18)

성인명

살바토르(Salvator)
축일 3월 18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수사, 증거자
활동지역 오르타(Horta)
활동연도 1520-1567년
같은이름 살바도르, 살바또르, 쌀바또르


오르타의 성 살바토르(Salvator)\

 

 
 

오르타의 성 살바토르는 에스파냐 헤로나(Gerona) 교구의
산타 콜룸바(Santa Columba)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은 매우 가난했는데,
설상가상으로 그는 아기 때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그는 이때부터 거리를 헤매다가
바르셀로나(Barcelona)에서 신기료장수가 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20세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수도자가 되려는 열망으로 가득하여
작은 형제회 회원이 되고자 하였다.

바르셀로나에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한 그는 처음에는
수도원 부엌일을 담당하였는데, 그의 덕이 급속도로 성장하여
토르토사(Tortosa)의 예수 마리아 은둔소로 갔다.
여기서 그는 그 누구보다도 엄격한 생활을 하였는데,
맹인과 벙어리 그리고 불구자들이 그에게 오면
항상 치유를 받는 기적이 일어나곤 하였다.
 
그는 항상 맨발로 다녔고, 매일 편태를 했으며,
길고 엄격한 단식을 끊임없이 계속했다.
그는 특히 성모 마리아와 성 바오로(Paulus)에 대한 신심이 투철했으며,
수 차례에 걸쳐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하였다.
 
그는 47세의 일기로 선종하였으나, 생전에 이미 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었다.
그는 1606년 2월 5일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해 시복되었고,
1938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는 살바도르(Salvador)로도 불린다.

*굿뉴스 자료집에서 발췌

내 영혼의 노래



길거리를 헤매던 고아는
작은 형제회의 부엌일을 맡았고

주님께서는 그를 축복하시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치유 은사의 임무를 허락하셨네요.

오르타의 성 살바도르 님이시여
가난한 병자들을 위하여
천상의 기도를 보내 주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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