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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안에서 공포와 불안이 없는 자유를/신앙의 해[119]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20 조회수335 추천수1 반대(0) 신고


                                        그림 : [이스라엘] 갈릴래아 타브가 참행복 성당 입구

이 세상 것은 채우면 채울수록 더욱 갈증이 심해진단다.
이 세상 것으로는 영원한 행복을 결코 누릴 수가 없기 때문일 게다.
우리에게는 근원적인 동경과 목마름이 자리 잡고 있기에.
인간은 처음부터 하느님을 향하도록 창조되었다.
해바라기가 해를 따라 움직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하느님을 벗어날 때 불안해진다.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을 알고 사랑으로 행복하게 살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1-32)’
 

예수님은 유다인들이 진리를 깨닫고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기를 바라신다.
그러나 그들은 종살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마저도 깨닫지 못한다.
과연 우리는 종살이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있을까?

‘악마 대학’의 한 실험실에서 교수가 학생들을 모아 놓고 개구리 실험을 하였다.
처음에는 팔팔 끓는 물에 개구리를 집어넣었다.
그랬더니 개구리는 깜짝 놀라 물 밖으로 단번에 뛰쳐나왔단다.
다음에는 개구리를 찬물에 집어넣고 나서
개구리가 느끼지 못할 만큼 조금씩 알코올램프의 온도를 높여 나갔다.
개구리는 그릇 속에서 뛰쳐나가지 않고 놀다가 서서히 정신을 잃어 가더니
나중에는 아예 네 다리를 쭉 뻗은 채 죽어 버렸다.

실험이 끝난 다음 교수가 학생들에게 말했다.
“이것이 ‘서서히 법칙’이다. 사람들도 이렇게 파멸시켜야 한다.
미움, 거짓, 뇌물, 쾌락 중독 등 이 모든 중독으로 서서히 맛들이게 해 죽이는 거야.
그게 우리의 과업이지.”

우리도 마찬가지 일게다.
처음에는 잘 모르다가 조금씩 조금씩 서서히 죄에 물들어 가면 거기에 중독되어 간다.
그리하여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리라.
그렇다. 진리를 향해 늘 깨어 있지 못한다면, 어느새 중독이 되어 죄의 종이 된다.
결국 유다인들처럼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할뿐더러 그분을 배척하게 될 게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인간은 궁극적으로 하느님을 동경하며,
하느님 안에서 비로소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성인은 ‘고백록’에서
“오, 하느님, 당신께서는 우리를 당신을 향해 발돋움하도록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은 당신 안에서 쉬게 될 때까지 쉴 줄을 모릅니다.”라고 하였다.
성인은 이 진리를 터득하기까지 수없이 갈등하고 방황하다가
서른세 살의 나이에 하느님을 알고 방황을 끝내게 되었단다.

우리의 육신도 여러 가지 제약을 받는다.
마음은 간절하지만 몸이 잘 따라 주지를 않는다.
영은 날래지만 육이 연약하다.
그러므로 육이 자유롭지 못한 것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마음이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육의 자유를 작은 자유라고 한다면 마음의 자유는 큰 자유라고 할 수 있겠다.
진리를 깨닫게 된다면 예수님께서 참으로 누구신지 깨달을 수 있고,
그분과 함께한다면 우리는 마음의 자유, 큰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진리가 무엇일까?
하느님에게서 비롯한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끈다.
이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렇게 우리가 주님의 진리를 깨달으면 우리는 진정 자유인이 될 수 있다.
신앙의 해다.
주님께서는 세상의 온갖 영향력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신다.
왜냐면 주님 자신이 구원이요 자유 그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유한한 생명은 영원한 생명 자체이신 주님 안에서만이
공포와 불안이 없는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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