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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20 조회수836 추천수1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3월 20일 사순 제5주간 수요일



"If you remain in my word, you will truly be my disciples,
and you wi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will set you free."
(Jn.8,31-32)

 
제1독서 다니 3,14-20.91-92.95

 
그 무렵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이 14 물었다. “사드락, 메삭, 아벳 느고! 너희가 나의 신들을 섬기지도 않고 또 내가 세운 금 상에 절하지도 않는다니, 그것이 사실이냐? 15 이제라도 뿔 나팔, 피리, 비파, 삼각금, 수금, 풍적 등 모든 악기 소리가 날 때에 너희가 엎드려, 내가 만든 상에 절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곧바로 타오르는 불가마 속으로 던져질 것이다. 그러면 어느 신이 너희를 내 손에서 구해 낼 수 있겠느냐?”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가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에게 대답하였다. “이 일을 두고 저희는 임금님께 응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17 임금님, 저희가 섬기는 하느님께서 저희를 구해 내실 수 있다면, 그분께서는 타오르는 불가마와 임금님의 손에서 저희를 구해 내실 것입니다. 18 임금님,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저희는 임금님의 신들을 섬기지도 않고, 임금님께서 세우신 금 상에 절하지도 않을 터이니 그리 아시기 바랍니다.”
19 그러자 네부카드네자르는 노기로 가득 찼다. 그리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를 보며 얼굴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가마를 여느 때에 달구는 것보다 일곱 배나 더 달구라고 분부하였다. 20 또 군사들 가운데에서 힘센 장정 몇 사람에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를 묶어 타오르는 불가마 속으로 던지라고 분부하였다.
91 그때에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이 깜짝 놀라 급히 일어서서 자문관들에게 물었다. “우리가 묶어서 불 속으로 던진 사람은 세 명이 아니더냐?” 그들이 “그렇습니다, 임금님.” 하고 대답하자, 92 임금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네 사람이 결박이 풀렸을 뿐만 아니라, 다친 곳 하나 없이 불 속을 거닐고 있다. 그리고 넷째 사람의 모습은 신의 아들 같구나.”
95 네부카드네자르가 말하였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어, 자기들의 하느님을 신뢰하여 몸을 바치면서까지 임금의 명령을 어기고, 자기들의 하느님 말고는 다른 어떠한 신도 섬기거나 절하지 않은 당신의 종들을 구해 내셨다.”


 
복음 요한 8,31-42

그때에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33 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아무에게도 종노릇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 ‘너희가 자유롭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십니까?”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이다. 35 종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르지 못하지만, 아들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른다.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 37 나는 너희가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너희는 나를 죽이려고 한다.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이야기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실천한다.”
39 그들이 “우리 조상은 아브라함이오.” 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아브라함이 한 일을 따라 해야 할 것이다. 40 그런데 너희는 지금, 하느님에게서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이야기해 준 사람인 나를 죽이려고 한다. 아브라함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41 그러니 너희는 너희 아비가 한 일을 따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우리는 사생아가 아니오. 우리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느님이시오.”
4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하느님께서 너희 아버지시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할 것이다.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와 여기에 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다.”






찬미예수님~~~ 다시 한국에서 이렇게 인사를 올립니다. 일주일 동안의 미국 시카고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이렇게 다시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시카고 한인 공동체에서 그렇게 많이 신경을 써주셨지만 그래도 한국이 좋네요. 아무튼 여러분들의 기도와 염려 덕분에 좋은 시간 보내고 돌아올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감사의 인사를 올리며 오늘의 새벽 묵상 글 시작합니다.

이번 특강에서는 시카고 한인 공동체의 뜨거운 열정을 볼 수 있어서, 오히려 제가 더 많은 힘을 얻을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강의를 하다보면 정말로 분위기가 이상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반응이 전혀 없는 곳, 그런 곳에서는 1시간 강의하는 것도 힘듭니다. 그러나 별 것 아닌 이야기에도 열렬한 반응을 보이는 곳에서는 3시간을 내리 강의해도 힘든 줄을 모릅니다. 즉, 강의를 하는 사람도 중요하겠지만, 강의를 듣는 사람들의 모습 역시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처음 강의를 했을 때가 기억납니다.

사제서품을 받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지요. 어느 본당신부님의 부탁으로 1시간짜리 견진교리를 하게 되었지요. 처음이라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강의가 중반 정도 이르렀을 때, 하품을 하시는 몇몇 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에 ‘망했다’는 생각과 얼굴이 화끈거리며 위축되기 시작합니다. 결국 강의를 어떻게 마쳤는지도 모르겠더군요. 하지만 강의를 마치고 인사를 하는데 많은 분들이 너무나 좋았다면서 강의록을 줄 수 없냐는 부탁을 하십니다.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좋게 봐 주신 분들도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누군가 말했습니다. 청중의 반응은 10%의 과도한 호감, 10%의 과도한 비난, 그리고 80%의 무덤덤이라고요. 그런데 저는 겨우 10%의 과도한 비난에 위축되었던 것이지요. 분명 10%의 과도한 호감을 가지고 계신 분들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 뒤 저는 10%의 과도한 호감을 갖고 계신 분들을 바라보며 강의를 하자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더 열정적으로 강의를 할 수 있게 되었지요.

예수님께서도 이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오늘 복음에도 나오듯이 예수님을 반대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특히 소위 배웠다는 사람들 그리고 종교지도자들이 더욱 더 당신을 반대하니 큰 실망과 함께 이 세상에 대한 구원을 포기할 생각도 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를 위해 노력하십니다. 왜냐하면 당신께만 오로지 희망을 두는 10%의 사람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께서 바라보시는 그 10%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과도하게 비난하는 반대의 10%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또 무덤덤하게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는 80%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예수님만을 믿고 따르는 10%의 주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죄의 유혹에서 벗어나 주님 안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순시기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다 틀렸다고 포기하지 말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 주님만을 향하여 나가도록 노력했으면 합니다.

 

마음을 터놓고 나를 보여 주는 것은, 상대가 들어올 문을 열어 주는 일이기도 하다(이유석).



시카고에서의 마지막 새벽. 눈이 오더라구여. 한국에 못오는줄 알았습니다.



당장 끊을 수 있는 용기

인터넷 검색 중에 ‘옛날 오락실 게임’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옛날 생각이 나더군요. 그래서 다운로드를 받아서 실행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래픽도 너무나 조잡하고, 게임의 구성도 단순하고 유치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그렇게 재미있고 이 오락에 대해 도저히 끊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약간의 돈만 생기면 무조건 오락실로 향했고, 돈이 없어도 그냥 오락실에 가서 남들이 하는 것 구경을 하면서도 행복했었습니다. 오락은 당시 도저히 끊을 수 없었던 엄청난 유혹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해 보니 그러했던 내 자신이 왜 그랬나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유혹들이 내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 유혹을 도저히 끊을 수 없다고도 이야기하면서 유혹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유혹들 역시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 분명히 유치하고 한심한 유혹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그래서 지금 당장 끊어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별 것도 아닌 유치하고 한심한 유혹 때문에 내 인생의 소중한 시간들을 더 이상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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