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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윤을 계산하는 세속화 [좋은 일, 회심/최귀동 옹]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21 조회수429 추천수0 반대(0) 신고

유다인들이 돌을 집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나는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너희에게 좋은 일을 많이 보여 주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떤 일로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느냐?” .....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좋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에 당신에게 돌을 던지려는 것이오. ...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그러자 유다인들이 다시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요르단 강 건너편, 요한이 전에 세례를 주던 곳으로 물러가시어 그곳에 머무르셨다.  <요한 10, 31 -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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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너희에게 좋은 일을 많이 보여 주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떤 일로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느냐” 예수님께서 율법의 유다인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들이 대답합니다. “좋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에 당신에게 돌을 던지려는 것이오" 예수님께서는 '좋은 일'을 가지고 묻고,유다인들은 '좋은 일' 하고는 상관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의 유다인들에게는 '율법의 규정들'이 최우선이며 예수님께서 행하신 온갖 '아버지의 뜻에 따른 좋은 일'에 대하여서는 관심이 없습니다.쉽게 말하면 그것은 <너가 좋아서 했던 일>에 불과한 것이었고 유다인들의 하느님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너는 너이고, 우리는 우리다>는 것입니다.

유다인의 규정 방침에 어긋난 상태에서 아무리 '좋은 일'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 규정들과 방침들이 있고, 너는 단지 너일 뿐이다>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과 행동하신 행적들은 그들이 정한 규정들을 최고의 우선으로 따지는 유다인들에게서는 아무런 필요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의 세상 가치에 합당한 '그들에게 좋은 일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좋은 일'이란 아버지의 뜻에 합당한 좋은 일인 '하느님의 일'이었지만, 온갖 사람의 일들로써 만들어진 규정 속에 속한 유다인들은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좋은 일에 대해서 단죄와 심판하는 '규정의 돌'을 집어들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동체가 '예수님의 사랑'에 대하여 자신을 가난하게 낮추기 보다는 '공동체의 방침'을 최우선으로 할 때에, 이미 그 공동체는 < 이윤을 계산하는 기업체 >에 단지 지나지 않습니다.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하십니다.이같은 예수님께 향하여 <너가 좋아서 했던 일><너는 너이고 우리는 우리다>는 것은 영적인 나태에서 비롯됩니다

그동안 '주님의 은총'(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주님의 은총)을 욕되게 하면서도 그 깊은 잘못된 점들을 바빠서 깨닫지도 못하고, 오랜 침묵(방관)으로 진실되게 회개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 마리아와 마르타 가르침 참조 -
 
버려진 이들 때문에 '주님의 은총'이 내려지고, 버려진 이들 때문에 삯꾼들은 직장을 구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것도 국가로부터 매달 어김없는 봉급을 수령하여 '자신들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슴에도 불구하고 - 버려진 이들에게 도리어 얻어 먹을 수 있는 주님의 은총인 '밥과 이불과 기저귀'(집)로 학대하면서 ( 다른 곳조차 ) 그들의 고통 없는 평화의 평생 염원인 기도(행복)를 등한시해 온 돌멩이들이 깊이 박혀져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마침내 '예수님의 사랑'(아버지의 사랑) 조차에도 번지게 되었으며 학대하는 어두운 (삯꾼이 지배하는) 공동체의 돌을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예수님의 사랑)'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완고함으로는 결코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의 공동체가 될 수 없습니다. 삯꾼이 지배하는 기업체가 되어 이윤만을 계산하는 세상적 규정들을 최우선으로 섬기게 되어질 것입니다. 세계로 나가서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예수님께서는 다시 요르단 강 건너편, 요한이 전에 세례를 주던 곳으로 물러가시어 그곳에 머무르셨다.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분께 몰려와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다.

회심하여, 예수님께서 물러가신 곳(세례 장소)으로 되돌아 갈 때,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 계신 그 곳으로 몰려오고, 예수님의 사랑을 확인하며, '예수님의 참된 공동체' 임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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