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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꽃동네 11. 악에게 코를 뀌이다 [죄스런 배경의 본질]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22 조회수399 추천수0 반대(0) 신고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의회를 소집하고 이렇게 말하였다.“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오.” .....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이 말은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것이 아니라 그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이다. 곧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이다이렇게 하여 그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요한 11, 45 -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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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의회를 소집하였습니다.예수님 때문이었습니다. 그대로 내버려 둘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결국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습니다.
그대로 두면, 모두 예수님을 믿을 것이고 또 로마인들이 자신들의 성전과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다는 현실적인 우려에서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은 온 민족의 멸망으로부터 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한낱 초라한 나자렛 사람으로만 취급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행적에서 '하느님의 섭리'하심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을 여실히 보게 됩니다.실제로 모든 '인간사'의 측면에서 보면 어두운 것들은 밝은 것을 싫어하고 또한 미워하기 마련입니다. 어두운 것들이 밝은 것에 의해서 숨길 수가 없고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른 좋은 일'은 어두운 자들에게서는 사실상 '짐'이 되어 집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옆 사람도 같이 죄를 지을 때, 같은 처지의 죄 속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어둠의 동지'가 됩니다. 죄 속에 빠진 자들은 자신들의 처지와 다른, 죄에서 자유로운 이들을 경계하게 되며 그들을 주시하게 됩니다.어떻게 하면 '쫓아낼 수 있을까'하고 적당한 기회를 기다리고만 있게 됩니다. 죄스런 배경의 본질은 깊이 회개하여 어둠 속에서 빠져 나올 생각은 차마 하지 못합니다.어둠 속에서 지낼 궁리에만 신경을 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많이 쌓이면 쌓일수록 더욱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맙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있는 악도 기회를 엿보다가 자기 때가 되면 '죄가 축적되어져 가는 자들'에게 달려듭니다
로마서 7장 19절 ~ 23절에는 이에 대하여 아주 잘 기록하고 있습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그래서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하면, 그 일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은 죄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법칙을 발견합니다.내가 좋은 것을 하기를 바라는데도 악이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죄가 쌓인다는 것은 '내 안에 자리 잡은 죄' 입니다. 그리고 내 곁에는 악이 있다 것입니다. 내 곁에서 도사리고 있는 악을 수용하면 자기 안에는 죄가 쌓여져 가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자기 곁에 있는 악을 막지 못할 경우 자기 안에는 죄가 커져가고 또한 더 큰 악을 허용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악에게 코를 뀌인 탓입니다. 

'악'을 방관한 공동체는 자기 '죄'에서 빠져 나오지 못합니다. 이런 상태가 죄의 종입니다. 사람은 연약하여 죄를 범할 수는 있지만, 범한 죄는 회개하여야만 악으로부터 침입을 막고 더 이상 '죄의 종'이 되어져서 '죄에게 종살이'를 하지 않도록 풀려나는 것입니다.
악에게 코를 뀌이면 악은 막강한 '빽'을 가집니다.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의 나라를 미워(증오)하는 악들이 '죄된 공동체' 안에서 설쳐대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처럼 자신들의 처지와 다른, '예수님의 사랑'을 쫓아내고자 음모를 결국 지니게 됩니다.

<게시글; 꽃동네6. 눈에 감추어져 있던 그리스도의 증인 본문에서> 버려진 이들에게 '밥과 이불과 기저귀'로 학대하는 것은 버려진 이들 때문에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는 '주님의 은총' (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 )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게시글; 고통으로 살다가 죽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고통으로 살다가 죽는 것이다' 라고 당연한 도식을 정한 공동체는 '예수의 공동체'가 결코 될 수 없습니다. 거친(학대하는) 삯꾼들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자기 행복만을 알며 '죽으면 그만이다'고 쉽게 말하겠지만, 성한 사람들도 고통 없이 살기를 심히 바라는데 그들은 더욱 고통 없이 살고 싶은 '평생 염원의 기도'를(이들의 행복을) 간직한 사람들임을 소중히 알아야 합니다.

삯꾼이 지배하는 공동체는 버려진 이들 때문에 직장을 얻었고, 국가로부터 매달 봉급을 수령하게도 되었지만,예수님의 제자들이 맡아야 할 자리와 그 영적인 몫까지 삯꾼들에게 넘겨준 삯꾼들의 기업체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의 공동체가 결코 되지 못합니다.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 하며 예수님의 사랑(곧, 한 사람)을 저버리고 맙니다. 다음은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가르침입니다.


[
구원은 악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며 또 그렇기 때문에 구원은 고통의 문제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르면 인간을 악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세상에 당신 아들을 주셨습니다그리스도의 구원적 고통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고통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 차원은 구속의 차원입니다. 외아들 그분이 인류에게 주어진 것은 일차적으로 결정적인 악에 대항하고 결정적인 고통에 대항하여 인간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인간 고통의 근저에는 죄와의 복합적인 연루관계가 있다는 비판 기준을 배격할 수 없다는 것도 진실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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