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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음의 눈 -의미의 발견- 2013.3.23 사순 제5주간 토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23 조회수523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3.3.23 사순 제5주간 토요일 에제37,21ㄴ-28 요한11,45-56

 

 

 


믿음의 눈

 

-의미의 발견-

 

 

 


오늘은 ‘믿음의 눈-의미의 발견-’주제로 그 묵상을 나눕니다.

하느님을 믿는 이들의 크나 큰 은총은
무엇보다도 믿음의 눈으로 의미를 발견하여 풍요한 삶을 사는 데 있습니다.

몇 가지 예화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엊그제 선종하신 분도수녀회의
이 소피아 수녀님의 사부 별세 축일(3.21일)과 일치됨이 은혜로웠습니다.

시신을 기증하셨기에 성전 제대 앞에 영전 사진만 있고 관은 없었습니다.

순간 믿음의 눈이 열려
‘아, 수녀님은 사부 베네딕도처럼 아름다운 떠난, 거룩한 죽음의 임종을 맞이하셨구나. 그대로 승천하셨구나.’ 하는 깨달음이 가슴을 쳤습니다.

믿음의 눈이 열릴 때 의미의 발견입니다.

 

또 어제 어느 화가가 그려준 수도원 풍경의 거대한 그림 액자가 도착했습니다.

순간 ‘아, 짐이 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수 백 억 원을 호가하는 렘브란트의 명화야 참 영원한 소중한 선물이지만
보통의 작품은 세월 지나면서 짐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렘브란트의 명화도 눈이 열려있어야 귀중한 보물의 선물이지
볼 눈이 없으면 짐에 불과할 것입니다.

똑같은 경우가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적용됩니다.

우리 삶도, 이웃도 깨달아 믿음의 눈이 열릴 때는 선물이지만
눈이 가려져 있으면 모두 짐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믿음의 눈이 열려 부단히 의미가 발견될 때 비로소 선물인생입니다.

의미를 찾는 인간입니다.

살아있는 사람만이 묻습니다.

때로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물어야
의미의 발견입니다.

의미의 발견이 구원입니다.

무의미의 고통은 얼마나 큰지요.

무의미한 삶에 무기력, 무감각, 무의욕이 뒤따르고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심신입니다.

 

렉시오 디비나의 목표도 결국은 믿음의 눈이 열려
부단한 의미의 발견으로 풍요한 삶을 살자는 데 있습니다.

주님 말씀 안에 머무를 때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가, 그 삶의 의미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언제나 그 자리의 정주생활을 하는 내적순례여정 중의 우리에게 끊임없이 믿음의 눈이 열려야 매일 새 하늘과 새 땅의 의미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바꿔야 할 것은 환경이나 사람에 앞서 내 마음의 눈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은 궁극의 의미이자 일치의 원리이십니다.

예언자 에제키엘은 바빌론 유배지에서 믿음의 눈이 활짝 열려
하느님 안에 일치의 비전을 발견하고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나는 그들과 평화의 계약을 맺으리니
그것이 그들과 맺는 영원한 계약이 될 것이다.

…이렇게 나의 거처가 그들 사이에 있으면서,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나의 성전이 그들 한가운데 있게 되면, 그
제야 민족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마침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열매인 이 거룩한 성체성사를 통해
에제키엘의 예언이 실현되었음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사가도 믿음의 눈이 활짝 열려
대사제 카야파의 말에서 하느님의 뜻을, 의미를 발견합니다.

카야파 역시 하느님의 도구였음을 깨닫습니다.

 

‘곧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한데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의 눈으로 대사제 카야바의 예수님에 대한 죽음을 재해석한
복음사가요 초대교회신자들입니다.

그대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에제키엘의 예언이 완전히 실현됨을 봅니다.

믿음의 눈이 계속 열려갈 때
하느님의 넓고 깊은 시야를 닮아가게 되고 의미 충만한 삶이 뒤따릅니다.

 

몰라서 판단하지 알면 판단하지 않습니다.

몰라서 운명이요 우연이지 알면 섭리요 필연이요 자유로움입니다.

저희 수도원 25주년 역사를 믿음의 눈으로 봤을 때 발견한 세 가지 의미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모든 것은 필요했다.’ 는 것입니다.

이 중 세 번째 깨달음이 더욱 고맙습니다.

모두가 필요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그 의미를 발견할 때
세상에 버릴 것은,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끊임없이 우리 믿음의 눈을 열어주시어 의미 충만한 행복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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