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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24 조회수532 추천수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3월 24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They continued their shouting,
“Crucify him! Crucify him!”
(Lk.23,21)


제1독서 이사 50,4-7
제2독서 필리 2,6-11
복음 루카 22,14─23,56

한 청년이 고등학교 때의 선생님 이야기를 합니다. 그 선생님이 얼마나 못된 선생님인지, 만약 그 선생님만 만나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신나고 재미있는 학창시절을 보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지요. 그런데 이렇게 선생님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에게 좋은 선생님이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부정적인 모습만을 바라보니 그 누가 자신의 입맛에 맞겠습니까? 아마 저에 대해서도 나중에는 “내가 그 빠다킹 신부 때문에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니까.”라고 다른 이들에게 말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런 사람과 달리 선생님에 대해 깊은 존경을 표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존경하는 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 분은 이래서 존경하고, 저 분은 저래서 존경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존경 받을 만한 스승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다면 스승 운이 좋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본인 스스로 갖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존경받기에 충분한 스승을 만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어떤 청년이 제게 자기 여자 친구라면서 사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요.

“신부님, 제 여자 친구 정말 예쁘죠?”

저는 이 사진을 보고서, 이 친구가 이상한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얼굴이었고, 또 요즘 청년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제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싶어서 다른 청년에게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 역시 저와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맞습니다. 긍정적으로 보는 마음이 가장 아름다운 여자 친구로 보이게 만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곁에 존경할 사람이 없다면, 내가 운이 없어서가 아니라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아닐까요?

이천 년 전에 오신 예수님. 존경과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조건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입성을 하실 때, 사람들은 열렬히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런 마음들 안에 부정적인 생각들이 자리 잡으면서 존경과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조건들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보다 없어져야 할 대상, 죽어도 마땅할 사람으로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던졌던 환호에서 “십자가에 못 박아라.”라는 악의에 찬 외침으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지금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십니까? 내게 정말로 필요한 분, 나에게 가장 좋은 것만을 주시는 분으로 받아들입니까? 혹시 내가 필요할 때에만 찾는 분, 내게 그다지 필요 없는 분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렇다면 언젠가 내게 큰 전환점이 찾아올 때, 주님을 향해 악의에 찬 외침을 던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마음으로 주님께 다가서는 사람들은 언제나 주님과 함께 하면서 뜨거운 마음으로 늘 열렬히 환호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과연 어느 쪽인가요? 성주간의 첫날인 오늘, 깊이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낭비된 인생이란 없어요. 우리가 낭비하는 시간이란 외롭다고 생각하며 보내는 시간뿐이지요.(이치 앨봄)


교구청 사제관 성당. 새벽에 기도하러 들어갔다가 오늘 올릴 사진이 없어서 찍음. ㅋㅋ




애는 애처럼, 어른은 어른처럼


만약 갓난아기가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요?

“엄마, 지금 바쁘시잖아요. 그러니까 젖은 나중에 주세요. 지금 무척 배가 고프기는 하지만 엄마가 바쁘니 힘들잖아요. 조금만 참죠 뭐.”
 

징그럽다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갓난아기는 자신의 욕구를 그대로 분출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 자신의 욕구를 그대로 드러내면 어떨까요?

“나 지금 배고프단 말이야. 얼른 밥상 차려!! 바쁘다고? 네 바쁜 거하고 나 배고픈 거하고 무슨 상관인데?”

자신의 나이에 맞게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어른이 되어 ‘애처럼 굴면’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는 삶은 결코 어른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애처럼 구는 어른이 너무나도 많은 것 같습니다.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렵다고 계속해서 칭얼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신의 나이에 맞게 사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애는 애처럼, 어른은 어른처럼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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