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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꽃동네 12. 회개하지 못하는 좌도 [자신들 때문에 울어라]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24 조회수388 추천수0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자리에 앉으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내가 고난을 겪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파스카 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바랐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파스카 축제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다 이루어질 때까지 이 파스카 음식을 다시는 먹지 않겠다.”  <루카22, 14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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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이사야 5, 4 - 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보라, 너희 집은 버려져 황폐해질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때까지, 정녕 나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마태오 23, 37 - 39>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 때문에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 때문에 울어라.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두 죄수도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 하나는 그분의 오른쪽에 다른 하나는 왼쪽에 못 박았다...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루카 23, 28 -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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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매달리시어 죽음에 까지 순종하시는 예수님,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 겸손한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들의 용서를 빌어셨지만 저들은 결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 좌측에 있던 죄수와 같이 예수님을 모독하기까지 합니다.

두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좌도의 길'이며 다른 하나는 '우도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용서를 빌어셨지만, 회개하지 않는 좌도의 길은 멸망하는 예루살렘으로 향해 나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도의 길은 구원의 열매에 낙원으로 향합니다.

예수님께서 용서를 빌어셨다고 해서 자신이 회개할 마음과 행실을 저버린다면 구원의 은총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너희는 마다하였다. 보라, 너희 집은 버려져 황폐해질 것이다 뿐입니다. [파스카 축제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다 이루어질 때까지 이 파스카 음식을 다시는 먹지 않겠다] 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자신들의 눈에 가리워진 '예수님의 사랑'에 대하여 저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없애고자 벼랑으로 끌고 갔으며 돌멩이를 집어들어 없애고자 하였습니다. 거친 (학대하는) 삯꾼들이 지배하는 기업체이었지, 결코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의 공동체'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윤만을 계산하며 '예수님의 사랑'에는 등한시(오랜 침묵의 방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저들의 눈에는 <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이 무엇인지 >가 눈에 가리워져 있었다고 할 것입니다.아빠에게는 '두 번 다시는 고통을 받지 않는다'는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 (마르코 14, 25) ] 

[ 우리가 진리를 깨닫고서도 일부러 죄를 짓는다면,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바칠 수 있는 제물이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해 준 계약의 피를 더러운 것으로 여기고, 은총의 성령을 모독한 자는 얼마나 더 나쁜 벌을 받아야 마땅하겠습니까 .... 살아 계신 하느님의 손에 떨어지는 것 무서운 일입니다. (히브리서 10, 2 - 31) ]

공동체의 죄악 때문에 고통을 받는 '하늘이의 십자가'는 모든 고통을 받는 버려진 이들로써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주님의 은총"인데 이 은총을 욕되게 하는 공동체는 이제 하느님의 손에 떨어진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공동체는 '좌도의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우도의 길을 택할 것인가 하는 두 가지 선택의 길이 남아 있습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마태오 23, 2 참조)" "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요한 5, 45 참조)" 예수님의 제자들이 십자가를 멀리하고 거친 삯꾼이 지배하는 기업체로 전락한 이같은 공동체(모세)가 '예수님의 사랑'을 저버리기 때문입니다. 




<참고> 

오랜 침묵의 방관 = 회개하지 않는 침묵 곧, 방관 (등한시)
"울어라" = 회개의 눈물(행실)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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