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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의 종 -고요함, 자비로움, 항구함- 2013.3.25 성주간 월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25 조회수318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3.3.25 성주간 월요일 이사42,1-7 요한12,1-11

 

 

 


주님의 종

 

-고요함, 자비로움, 항구함-

 

 

 


주님은 우리의 반쪽입니다.

주님 없이는 우리는 반쪽 인생을, 반쪽 사랑을 살아갈 수뿐이 없습니다.

반달 같은 반쪽의 주님 성체를 모시면서
비로소 온전한 둥근 삶, 둥근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계속 미사경문 때 마다 ‘교황 (프란치스꼬)’라 부를 때마다 신이 납니다.

제 수도명이 프란치스꼬 이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교회 사상 처음으로 불리어 지는 프란치스코 이름입니다.

프란치스꼬 성인을 사랑하시기에
가난하고 겸손하고 단순한 성인을 닮은 교황 같습니다.


마치
하늘 높은 자리에서 땅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느낌이 드는 교황이십니다.

 


사랑할 때 알고 닮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했기에 자비로운 아버지를 알고 닮았던 예수님이요
여기서 나온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 복음과 주님의 기도입니다.

오늘 복음의 마리아의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겸손이 감동적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사랑하여 알았던 마리아요,
그에 앞서 마리아를 사랑하여 알았던 예수님이셨습니다.

얼마나 가난한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예수님인지,

또 얼마나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했던 주님인지 깨닫습니다.

똑같은 지근거리에 있으면서도 마리아와 유다가 참 대조적입니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마음의 거리는 천지차이입니다.

주님께 똑같은 지근거리이지만

가장 가까이 있는 마리아에 비해 유다는 참 멀리 있습니다.


사랑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부은 마리아의 삼백 데나리온 어치의 향유는 그대로
마리아의 사랑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드라를 가져와서, 

 예수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 같은 장면입니다.
마리아의 극진한 사랑과 겸손이 감동적입니다.

온 집안에 가득한 향유 냄새는
그대로 마리아의 사랑의 향기, 영혼의 향기, 존재의 향기, 겸손의 향기를
상징합니다.

매일 미사 때 마다
주님께 바치는 우리 사랑의 향기로 가득한 성전분위기였으면 좋겠습니다.

 

이에 대한 유다의 반응이
지극히 현실적이고 합리적이지만 공허하기 짝이 없습니다.
바로 사랑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마리아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았던 까닭은 어디 있을까요?

바로 이사야서의 주님의 종이 그 답을 줍니다.
예수님은 그대로 주님의 종의 전형이며 다음 세 특징으로 요약됩니다.

 

 

 

 

 


첫째, 고요함입니다.

 

주님의 종인 예수님은 고요한 분이셨습니다.

시끄럽지 않고 요란하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고요한 중에 끊임없이 일하시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중심이 가벼우면 주변이 시끄럽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중심이 깊고 고요할 때 주변도 평화롭고 고요합니다.

고요 중에 치유와 정화되는 영혼입니다.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그대로 예수님에 대한 묘사 같습니다.

오늘도 당신 발치에 엎드려 향유를 붓는 마리아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도
한없이 고요합니다.

고요함 또한 깊은 사랑의 표현임을 깨닫습니다.

 

 

 

 

 


둘째는 자비로움입니다.

 

주님의 종, 예수님은 자비로운 분이셨습니다.

연민, 배려, 존중, 온유, 겸손으로 표현되는 주님의 종의 자비로움입니다.

상처받은 가난한 마리아의 영혼을 치유해주시고 채워주실 분은
예수님뿐임을 깨닫습니다.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바로 자비로운 주님의 종, 예수님에 대한 묘사 같습니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라 말씀하시는 마리아에 대한 주님의 반응에서
그대로 감지됩니다.

 

 

 

 

 


셋째는 항구함입니다.

 

주님의 종, 예수님은 항구하신 분이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에 항구하셨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 받습니다. 궁극의 승리자가 됩니다.

넘어지는 게 죄가 아니라 일어나지 않는 게 죄입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늘 새롭게 시작하셨던 주님이셨습니다.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그대로 주님의 종, 예수님께 대한 묘사 같습니다.

 

 

 

 

 

주님께 대한 열렬한 사랑의 열매가 고요함이요 자비로움이요 항구함입니다.

 


이런 고요하고 자비롭고 항구한

주님의 종의 현존자체가 세상의 빛이요 생명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의 거룩한 종으로 변화시켜 주시어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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