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26 조회수765 추천수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3월 26일 성주간 화요일



"Master, who is it?"
(Jn.13,25)


제1독서 이사 49,1-6

 
1 섬들아, 내 말을 들어라. 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2 그분께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 주셨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드시어 당신의 화살 통 속에 감추셨다.
3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4 그러나 나는 말하였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5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야곱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고, 이스라엘이 당신께 모여들게 하시려고, 나를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6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복음 요한 13,21ㄴ-33.36-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셔서 21 마음이 산란하시어 드러내 놓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2 제자들은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여 서로 바라보기만 하였다.
23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다. 24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람이 누구인지 여쭈어 보게 하였다. 25 그 제자가 예수님께 더 다가가,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빵을 적신 다음 그것을 들어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27 유다가 그 빵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28 식탁에 함께 앉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주머니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예수님께서 그에게 축제에 필요한 것을 사라고 하셨거나, 또는 가난한 이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30 유다는 빵을 받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
31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32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33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너희는 나를 찾을 터인데, 내가 유다인들에게 말한 것처럼 이제 너희에게도 말한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36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37 베드로가 다시 “주님, 어찌하여 지금은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하자, 38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제가 그리 긴 인생을 산 것은 아니지만, 40년 넘게 살아 온 시간 동안 깨달은 한 가지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 또한 내가 피하고 싶은 사람이 분명히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내게 필요한 사람,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친구를 막 사귑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인터넷 온라인상에서 불특정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서비스, SNS(Social Networking Service)의 대표겪이라고 말할 수 있는 페이스북에서 해당하는 말입니다. 이곳을 통해서 많은 분들이 제게 친구 요청을 하시는데, 저는 단 한 번도 친구 맺자는 것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승낙 버튼을 누르다보니,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1,000명이 넘는 친구가 생겼더군요.

그들 중에는 얼굴 한번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대다수입니다. 그렇다면 얼굴 한번 본 적이 없고, 목소리를 직접 듣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의 실제가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의 글과 사진을 보면서, 직접 보지는 않았어도 가까워지고 또 그래서 인터넷 온라인상에서 대화를 쉽게 나누는 실제의 친구입니다.

주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주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또 주님의 목소리를 한 반도 들은 적이 없는데 어떻게 주님을 믿을 수 있냐고 말입니다. 인터넷 친구 역시 보지도 또 듣지도 못했지만 분명히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삶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들을 떠올려 볼 때 주님을 직접 보지 못하고 또 직접 듣지 못해도 분명히 계신다는 믿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러한 믿음을 항상 요구하십니다. 우리 곁에 분명히 계시는 주님, 그래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떠한가요? 너무나도 많은 유혹에 쉽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하긴 예수님의 으뜸 제자라고 하는 베드로도 흔들리고 말았지요. 예수님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면서 예수님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겠다고 호언장담을 하지만, 자신의 안위를 위해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정하는 행동을 하고 말지요.

이 사실을 미리 알고서 베드로에게 말씀해주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즉,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다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어떤 확실한 주의도 주지 않습니다. 또 어떤 단죄도 내리지 않습니다. 그저 “그럴 것이다.”고 말씀하실 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이미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지금의 부족한 우리들 모습을 보시는 분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그보다는 점점 나아지는 모습, 주님을 첫 번째 자리에 모시면서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키워나가는 우리들을 보시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내 모습, 과거의 내 모습보다 얼마나 더 나을까요? 주님께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배려는 마음을 쓴다. 즉 타인에게까지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다. 자애를 펼치는 것이다. 마음을 멀리 쓴 만큼 내 마음이 넓어진다(이케다 다이사쿠).


저의 페이스북. 이곳을 통해 많은 친구를 사귑니다.



주님의 메시지

눈이 나빠진다는 것은 상당히 저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책을 봐야 하는데 책의 글자가 가물가물하게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종종 있지요. 글쎄 노안이랍니다. 벌써 돋보기를 써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이 슬프기는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는 체 하지 말라는 주님의 경고가 아닐까라는 생각 말이지요.

책을 많이 보게 되면 그만큼 지식이 쌓이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의 지식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가지고 있는 나를 사람들에게 알리는데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러한 교만의 마음을 갖지 말라고 내 눈을 통해 책을 많이 읽지 못하게 만드신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노안만의 문제가 아니더군요. 얼마 전에 길을 가다가 횡단보도를 건너야 할 상황에 놓였습니다. 하지만 천천히 걸어서 건너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재빨리 뛰어야지만 빨간 신호등을 피해 건널 수가 있을 것 같더군요. 저는 뛰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뛰는 것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몸이 무겁고 발이 내 머릿속의 생각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이때 또 깨달았지요. 이제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가야 하는 것이라고…….

이 세상 안에서의 삶의 시간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더욱 더 겸손해지고 내 자신을 낮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살아가는 삶을 간직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이러한 현상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더욱 더 빨리 살고, 더욱 더 나를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애를 씁니다. 과연 행복할까요?

주님께서 우리들을 향해서 던지시는 이러한 메시지를 무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