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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가끔 자신 안에서 유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때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26 조회수697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성주간 화요일


<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너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


복음: 요한 13,21ㄴ-33.36-38





유다의 배반


조토(Giotto) 작, (1302-1305), 파도바 아레나 경당


     < 가끔 자신 안에서 유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때 >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감독이 나타내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사랑을 받지 못해서 잔악한 범죄를 저질렀던 남자 주인공 강도가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받게 되고 난 후, 지금까지 자신이 저지른 죄를 속죄하여 마치 십자가의 오른쪽에 못 박혔지만 회개하여 마지막에 신으로부터 자비를 얻게 된 것처럼 누구도 회개하면 자비를 얻게 된다는 내용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강도의 어머니로 속이고 강도에게 접근해 그에게 생전 처음으로 사랑이란 것을 알게 한 후에 자신이 남에 의해 죽임을 당함으로써 타인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의 아픔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게 해 줄 복수를 계획하고 실행한 어머니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강도는 사채업자의 하수인으로 돈을 내지 않으면 채무자의 몸의 일부를 절단하여 거기서 나오는 보험료로 돈을 뜯어내는 인간 같지도 않은 역할로 나옵니다. 그로부터 돈을 뜯기다 못해 자살한 한 사람의 어머니가 그에게로 찾아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강도의 어머니라고 하며 어렸을 때 버려서 미안하다며 속죄를 합니다. 처음에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믿지 않다가 자신을 위해 어머니만이 할 수 있는 희생과 사랑을 주는 것을 보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머니의 사랑이란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을 알아가고 남에게 해가 되는 일을 끊기로 결심했을 무렵, 엄마는 갑자기 사라져버립니다. 강도는 엄마가 납치되었다고 생각하여 엄마를 찾기 위해 자신이 지금까지 돈을 뜯어냈던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닙니다. 자신 때문에 불구가 되었거나 자살을 하여 온 가족이 풍비박산이 난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사랑을 받지 못했을 때는 사랑을 몰랐기에 그 고통을 알 수 없었지만 이제는 사랑을 알게 되니 자신이 한 짓들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었음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엄마는 강도가 보는 앞에서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는 연기를 하며 건물에서 떨어져 죽습니다. 강도는 엄마의 죽음을 보며 오열합니다. 물론 나중에 자신 때문에 자살한 한 사람의 어머니였음을 알게는 되지만, 강도는 결국 자신의 그동안의 죄를 뉘우치기 위해 자신 때문에 피해를 본 한 사람의 차 밑에 자신을 묶어 길바닥에 갈려지며 마지막 보속을 하고 그렇게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영화는 결국 이렇게 반전으로 끝납니다. 자신의 아들이 한 인간에 의해 목숨을 끊었다고 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복수를 하는 어머니는 처음에는 피해자였지만 이젠 가해자가 되어 복수를 위해 자살을 함으로써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되고, 나쁜 짓만 일삼다가 결국 회개한 강도는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 어머니는 성경 인물로는 예수님을 팔아넘긴 가리옷 유다를 상징합니다. 자신이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예수님을 아프게 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자신이 피눈물을 흘리더라도 남을 눈물 흘리게 하려는 이가 유다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회개하여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된 강도는 이 영화의 주인공 강도와 같고, 혹은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하였지만 결국 회개한 베드로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 자신 안에 유다와 같은 면이 있음을 발견하지 못합니까? 내가 고통스럽더라도 남을 미워하고 증오하지는 않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배반할 이를 너무나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를 밝히지 않고 당신을 팔아넘기도록 내보내주십니다. 이제는 그동안 가져왔던 유다의 구원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그가 배반할 것을 알고도 그를 회개시키기 위해 끝까지 희망을 끈을 놓지 않고 계셨던 것입니다.

어떤 분이 자신에게 유다와 같은 면이 발견되어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런 죄를 지으면 매우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죄를 일부러 짓고 또 이런 자신을 용서하지 말라는 생각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유다와 같은 면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죄는 무엇이나 자기 자신을 해하는 것이고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지만 자기 스스로 알면서도 짓는 것입니다. 바로 자아가 우리에게서 유다의 모습을 보이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아가 나의 주인이 되면 유다의 모습을 그대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자아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지만 그 자아 때문에 지옥에 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유다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유다처럼 완전히 의지적으로 어둠을 나의 주인으로 삼으려는 확고한 결심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주님은 우리에게 아주 조금의 희망만 있어도 결코 우리 손을 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를 괴롭히면서까지 남에게 아픔을 주려는 마음이 일거든 그것을 바라보고 그 마음에 저항하기는 해야 합니다. 내가 내 자신을 망치기를 원치만 않는다면 언제나 희망은 있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살리기를 원하면 그분도 그것을 원하시기에 영원히 나의 손을 놓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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