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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방을 선별해서 cctv 설치 못한다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26 조회수395 추천수0 반대(0) 신고

자해한다고 전부 정신질환이 아닙니다. 하늘이가 상세불명 혈소판 감소증(혈액종양)으로 여의도 성모병원 소아 암 병동에서 입원해 있을 때, 또 당 정신과에서 하늘이는 간호사 관찰을 1개월간 받았는데 '아빠' 안에서 단 한건도 일체 자해하지 않았습니다.  하늘이는 심한 변비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 자해로 자기 의사를 표현했을 뿐입니다. 즉, 무엇인가 어떤 여러가지 원인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기 의사 표현을 '자해'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 병원의 판단(뇌성마비의 특징)이었습니다.여기 아기들은 변비다, 체했다는 등의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른들의 섬세한 배려가 필요한 것입니다.


<용례> 아기를 아프게 했습니다. (어떤 아기는 소리로 내고, 하늘이는 소리를 안 냄)

양순한 직원들 =  <아가야, 내가 몰랐구나. 미안하다. 조심할께> 합니다.
거친 삯꾼(직원) =  <저 애는 원래 그런 애 예요> 합니다.

실재입니다.그래서 양순한 마음의 소유자는 자신의 행동을 고칩니다. 그렇지만 거친 마음의 소유자는 이중성(위선)을 드러냅니다. 방문자들에게는 친절히 대하지만 여전히 아기들에 대해서는 고치지 않습니다. 양순한 직원들은 고칩니다. 그래서 학대로 진전되지 않습니다만, 거친 삯꾼은 고치지 않습니다. 계속 반복하는데 학대로 진전되는 것입니다.

거친 삯꾼은 일의 스트레스에 의한 발생하게 되는 자신의 거친(의도적인) 행동에 대하여 다수로부터 인정을 얻고자 다른 직원들에게 악한 것들을 공유하게끔 아기자신도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장애 때문인데 이런 무죄한 아기들에게 그 모든 탓을 돌립니다

그리하여 아기들에 대한 분위기는(토양은) 거친 삯꾼의 입(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것들을 직원들 가운데서 공유하게 하여 <악의 토양, 고통과 죽음>이 뿌리내리게 되어 집니다.그러나, 양순한 직원들의 입(마음)에서 나오는 사랑다운 것들이 직원들 가운데서 서로 공유하게 된다면 <사랑의 토양, 평화와 생명>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건설 현장에서는 '친척 빽'이라고 용납되지 않습니다. 같은 회사의 다른 현장에도 갈 수 없게 됩니다. <게시글; '현장은 거칠다' 참조> 그리하여 생명과 평화의 건설 현장 분위기가 오늘날과 같이 정착되어진 것입니다. <이상의 게시글 ; 3월13일 더 큰 증언 중에서>

작년 여름 경입니다. [ 간혹 있게 되는 '거친 삯꾼'이 어떤 분과 싸워서 냉랭해 졌습니다. 거친 삯꾼은 그 어떤 분(1)이 사랑하는 아이에게 못된 말과 과격하게 밥을 먹입니다. 아이는 고통을 호소합니다 한 두번이 아니고 화해가 되기 까지 계속 그 악한 짓을 반복할 때마다 아이의 고통을 호소하는 부르짖음이 내 마음을 심히 아프게 합니다. 그래서 (1)에게 아이의 고통이 중지되도록 서로 해결책을 모색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며칠 뒤, 이제는 내가 사랑하는 아이(하늘이)에게 보복 학대를 자행했습니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아이의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이불로 싸매었습니다. 내가 아이에게 가는 동안 얼마나 되었는지 아이는 얼굴이 빨개져 있고 볼과 얼굴은 온통 물로 젖어 있었습니다. 나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런 경우가 여태까지 없었기 때문입니다. 거친 삯꾼이 '얼마든지 일러주라' 하고 도리어 큰소리 칩니다. ... (줄임) ..... 그 후에도 어떤 '빽'이 있는지 어른들의 냉각기 마다 거친 삯꾼은 자기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경고성으로 번번히 하늘이에게 보복 학대 합니다. 그 거친 삯꾼은 죄없는 아기들을 죽인 악인 헤로데의 행태를 (어떤 '빽'인지) 결코 고치지 않습니다.오히려 더 보호를 받아 갔습니다. (생략)<이상 ; 살과 피가 있는 사람 중에서>


학대한다는 것은 폭행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밥과 이불과 기저귀로 아프게(학대)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버려진 이들에게 '밥과 이불과 기저귀'로 학대하는 것은 버려진 이들 때문에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는 '주님의 은총' (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 )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고통으로 살다가 죽는 것이다' 라고 당연한 도식을 정한 공동체는 '예수의 공동체'가 결코 될 수 없습니다. 거친(학대하는) 삯꾼들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자기 행복만을 알며 '죽으면 그만이다'고 쉽게 말하겠지만, 성한 사람들도 고통 없이 살기를 심히 바라는데 그들은 더욱 고통 없이 살고 싶은 '평생 염원의 기도'를(이들의 행복을) 간직한 사람들임을 소중히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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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교서 가르침 ㅡ


 
구원은 악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며
또 그렇기 때문에 구원은 고통의 문제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르면 인간을

악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세상에 당신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적 고통은 외아들 그분이 인류에게 주어진 것은
일차적으로
결정적인 악에 대항하고 결정적인 고통에 대항하여
인간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고통을 인간 역사에서
개인적 행동과 사회적 과정의 죄스런 배경에서 분리시켜 놓을 수도 없습니다.
 
인간 고통의 근저에는 죄와의 복합적인 연루관계가 있다는
비판 기준을 배격할 수 없다는 것도 진실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선 첫째로는 원죄와 더불어 비롯하여
악의 영향력 아래 인간의 역사 안에 뿌리를 내린 죄의 지배를 불식하시며

그 다음으로는 인간에게
성화은총 속에서 살 수 있는 가능성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 고통의 세계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셨습니다.  그분의 활동은 일차적으로 고통 속에서 도움을 찾고 있는 사람들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그분은 육신의 고통이든, 영혼의 고통이든 인간의 모든 고통에 대하여 민감한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 고통을 바로 당신 자신에게 받아들임으로써 인간 고통의 세계에 다가오심을 이루셨습니다.
 
그분은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멸시, 오해를 받는 일을 겪으셨을 뿐아니라,  점점 더 소외를 당하고 적의에 둘러싸이게 되셨으며 자기를 죽이려고 계획하는 음모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그리스도께서는 이 모든것을 알고 계셨으며 죽음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수난과 죽음을 향하여 나아가시며 이 방법으로 당신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의식하고 계셨습니다. (인간 고통을 당신 자신에게 받아들인)  바로 이 고통을 수단으로 하여 그분은 인간이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으로 인류 역사와 인간 영혼에 뻗어 내려 있는 악의 뿌리를 쳐부수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더불어 모든 인간 고통이 새로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데 악의 경험이 비할데 없이 그리스도의 고통을 결정지었으면 이 그리스도의 고통이 구속의 댓가가 되었습니다.

구속자께서는 인간을 대신하여 그리고 인간을 위하여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인간 각자 모두가 구속사업이 성취되게 한 그 고통에 참여 하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누구나가 자기 자신의 고통을 겪으면서 그리스도의 구속적 고통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고통받고 죽으시면서 이토록 우리를 사랑하셨다 할진대 그분은 이 고통및 죽음과 더불어 당신께서 사랑하신 사람 안에 살아계십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 안에 살아계시기에 그분의 십자가를 통하여 그 사람에게 일치되십니다. 이 일치로 말미암아 세상은 나에게 대해서 죽고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그리스도와 결합하는 이 몸 안에서 대저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은 비단 그리스도로부터 힘을 받고 있을 뿐만아니라 또한  자기 고통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고" 있기도 합니다. 인간 고통이 그리스도와의 사랑의 결합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의 고통을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하 생략>



악의 경험이 => 비할데 없이 그리스도의 고통을 결정지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악에 의한 인간 고통을 바로 당신 자신에게 받아들임으로써 인간 고통의 세계에 다가오심을 이루셨습니다. 바로 이 그리스도의 고통을 수단으로 하여 악을 쳐부수셨던 것입니다

참된 십자가 의미 = 악의 경험이 그리스도의 고통을 결정지었으며 그리스도께서는 이 고통을 당신의 십자가로 악을 쳐부수시었습니다. 구원이란 악으로부터의 해방을 말하는 것입니다. 악에 의한 인간 고통에 결합할 때,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십자가를 통하여 그 사람에게 일치되십니다. 악에 대항하고 고통에 대항하는 이것이 진정 <참된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며, 악의 고통에서 인간을 보호하고자 하신 그리스도적 고통(고통의 특권), 곧 구원에 이르는 고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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