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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월 27일 *성주간 수요일(R)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27 조회수724 추천수13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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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7일 *성주간 수요일(R) - 마태 26,14-25


 

“사람의 아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성주간 우리의 영적생활>

 

 

    지금 우리는 교회 전례력에서 가장 정점이자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성주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 성주간 동안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잘 묘사하고 있는 예수 수난 복음을 깊이 묵상하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지난 성지주일 수난 복음을 낭독하면서 예수님의 ‘특별한 생애’를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되더군요.

 

    첫 번째 시기는 예수님 일생 가운데 가장 긴 시기-약 30년-에 해당되는 나자렛에서의 숨은 생활입니다.

 

    예수님 입장에서 이 시기는 아무래도 본격적인 인류 구원 사업 시기를 준비하는 기다림의 시기, 침묵의 시기, 수동의 때였습니다. 이 수동의 시기 예수님께서는 양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께 순종하면서 침묵과 기도 속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찾아나가셨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3년간의 공생활 기간입니다. 적극적인 능동의 시기입니다. 드디어 예수님께서는 오랜 침묵을 깨고 구세사의 전면에 등장하십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부여해주신 힘과 능력, 그간 갈고 닦은 내공에 힘입어 힘차게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정말이지 하루하루 신명나는 나날이었습니다. 직접 선택하신 제자들과 함께 이스라엘 전역을 활발하게 다니시면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당대 내놓으라는 대학자들과 맞서 토론을 벌이시는데 논리가 얼마나 정연하고 그 말씀에 힘이 있는지 사람들이 다들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말씀 한 마디로 오랜 고질병 환자들을 일으켜 세우십니다. 마귀 들린 사람을 해방시키십니다. 죽은 사람조차도 생명으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빵을 많게 하는 기적을 통해 오늘 여기서 구원이 이루어졌음을 선포하십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짧은 공생활 기간이 끝나고 드디어 아버지께서 정해주신 때, 수난의 때가 왔습니다. 이 시기 예수님께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신의 태도를 180도 바꾸십니다. 더 이상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순순히 적들의 손에 포위되십니다. 무장한 병사들 앞에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십니다. 대사제 앞으로 빌라도 앞으로 헤로데 앞으로 이리저리 힘없이 끌려 다니십니다. 이윽고 순순히 기둥에 묶이십니다. 그 끔찍한 채찍질을 고스란히 받으십니다. 십자가를 등에 지우니 그냥 지십니다.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아무 말 없이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수난의 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습은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셨습니까?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권능을 고스란히 지니고 계셨던 능력의 주님이셨습니다. 말씀 한 마디로 한 고을을 완전히 쓸어버릴 수 있는 주님이셨습니다. 생각 한번으로 골고타 언덕의 판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 수 있는 기적의 주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수난의 시기 예수님은 더 이상 힘이 없습니다. 능력도 없습니다. 철저하게도 수동적입니다. 무자비한 폭력 앞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으시고 그저 무기력한 사형수의 모습으로 최후를 맞이하십니다.

 

    하느님의 구원 사업이 결정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수난의 시기 예수님께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는 이거 대체 어찌된 일일까요?

 

    대체 왜 이러시는 걸까요?

 

    그러나 좀 더 깊이,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수난의 시기 예수님께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신 것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 안에서 제 3단계인 수난의 시기, 비록 외적, 육체적 사도직은 멈추셨지만 내적, 영적 사도직은 더욱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수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철저하게 순명하시는 순명의 사도직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실 골고타 언덕 위까지 끌려오신 예수님께서는 마음먹기에 따라 당시 벌어진 판을 순식간에 뒤집어 놓을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러나 더 큰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순명하기 위해 끝까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않았습니다. 극도로 자신을 통제하였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십자가 상 그 혹독한 고통 속에서도 우도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는 사랑의 사도직을 실천하셨습니다. 십자가 주변에 둘러서 있는 많은 사람들 정말이지 도저히 용서 못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그들을 용서해달라고 청하십니다. 용서의 사도직을 실천하신 것입니다.

 

    따지고 보니 십자가상 예수님께서는 그 고통스런 가운데서도 수많은 사도직을 실천하셨습니다. 인내의 사도직, 침묵의 사도직, 겸손의 사도직...

 

    이 성주간 우리에게 필요한 영적 생활은 어떠해야 할까요? 십자가상에 매달리신 예수님께서 실천하신 사도직을 헤아려보니 즉시 답이 나오는군요. 순명, 사랑, 인내, 침묵, 겸손...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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