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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27 조회수931 추천수9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3월 27일 성주간 수요일



"Surely it is not I, Lord?"
(Mt.26,22)


제1독서 이사 50,4-9ㄴ
복음 마태 26,14-25

쓰고 있던 컴퓨터의 화면이 갑자기 어둡게 변했습니다. 깜짝 놀랐지요. 지금 현재 쓰고 있는 글이 혹시라도 잘못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얼른 저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어두워진 화면이 잠시 뒤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원을 끄고 잠시 뒤에 다시 켜보았지요. 소리를 봐서는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것 같지만, 화면상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예전의 지식을 떠올렸습니다. 한때 저는 컴퓨터를 직접 조립하고, 교구의 모든 신부님들이 컴퓨터에 이상이 생기면 제게 연락을 할 정도로 컴퓨터에 대해서 박식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러나 이제 컴퓨터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또 신경을 쓰지 않다보니 이러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모르게 된 것입니다.

컴퓨터 본체를 열어 그 안을 유심히 쳐다보았습니다. 특별히 모니터와 연결하는 부분에 해당하는 그래픽 카드를 더욱 더 관심 있게 쳐다보았지요. 그러던 중에 그래픽 카드가 약간 빠져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카드를 빼었다가 다시 끼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전원을 켜는 순간, 다시 정상적으로 화면이 보입니다. 만약 대충 보았다면 빠져있는 그래픽 카드를 볼 수 없겠지요. 그러나 잘 몰라도 유심히 쳐다보니 전과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의를 기울여 바라보는 시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특히 주님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주의를 기울여서 바라보려고 합니까? 내게 다가온 어떤 문제를 주의 깊게 바라보지도 않으면서 주님을 향해 쉽게 판단하고 불평불만을 던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만찬을 드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지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 넘길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유다 이스카리웃을 꾸짖기 위함일까요? 아닙니다. 그보다는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려서 주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는 참된 제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신 말씀인 것이지요. 그런데 이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이 재미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아니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갖고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주님을 주의 깊게 바라보지 못했던 제자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자기만 아니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을 뿐이었지요. 따라서 자기 안에만 갇혀 있었던 이천 년 전의 제자 모습이 아니라, 주님을 제대로 바라보고 그래서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주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 주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길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될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수많은 갈등의 순간. 우리는 그 속에서 양 갈래 길을 앞에 둔 사람처럼 고민한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두 가지 중 하나만 정답이랴. 어느 것을 선택해도 나쁘지 않다(법륜).



어제 아침,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바라 본 송도국제도시.



주님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시간.

비통한 경험을 하게 되면 영적인 세계로 발을 들여놓기 쉽다고 하지요. 즉,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을 때에 영적인 세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신학생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당시 저는 테니스에 푹 빠져 있었지요. 휴일에 외출도 하지 않고 친구들과 테니스장에서 하루 종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리한 것일까요? 서브를 넣는 순간 허리가 너무 아픈 것입니다. 그래서 오후 시간에 동네 목욕탕을 갔습니다. 목욕탕에서 허리를 지지면 금방 나을 것만 같았지요. 그런데 사우나실에 누워있던 제게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글쎄 누운 상태에서 꼼짝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어나야 하는데 허리가 아파서 일어날 수가 없었지요.

사우나실 안에 있으니 점점 답답해지고 힘이 빠졌습니다. 저는 밖에 있는 사람들이 들으라고 “여기 좀 도와주세요.”를 외쳤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저를 돕기 위해 사우나실 안으로 들어오지 않더군요.

절망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나약하고 힘이 없는 존재인 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절망적인 순간에 나오는 말은 “주님, 도와주세요.”라는 것이었지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잘 찾지 않습니다. 혹시 이를 위해 주님께서 종종 우리에게 이러한 절망적인 순간을 주시는 것이 아닐까요? 결국 절망의 순간을 피하고 싶지만, 그 순간 역시 주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소중한 시간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고통과 시련이 가득한 절망의 순간. 너무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순간이 오히려 멀리만 계신 것처럼 느꼈던 주님을 더욱 더 가까이에서 만나는 시간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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