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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29 조회수889 추천수12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3월 29일 주님수난 성금요일



For this I was born 
and for this I came into the world,
to testify to the truth.
Everyone who belongs to the truth listens to my voice.
(Jn.18,1)


제1독서 이사 52,13ㅡ53,12
제2독서 히브 4,14-16; 5,7-9
복음 요한 18,1─19,42

내게 오랜 시간 동안 아픔과 상처를 주는 사람을 과연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고통과 시련이 바로 이 사람을 통해서 오고 있는데도 기쁘게 받아들이고, 그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습니까? 이러한 질문을 던지면 분명히 열이면 열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는 성인(聖人)이 아닙니다. 그러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천할 수 없어요. 어떻게 내게 아픔과 상처를 주는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으로만 받아들일 수가 있나요? 신부님들은 예수님께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셨으니 우리도 그러한 무조적인 사랑을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만, 말처럼 절대 쉽지 않습니다.”

어때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우리 역시 예수님처럼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예로, 지금 갓 태어난 갓난아기와 그 어머니를 생각해보세요. 사실 이 갓난아기는 어머니에게 참 많은 아픔과 상처를 주었습니다.

몇 달 동안 배 속에서 어머니를 발로 차면서 밤잠도 설치게 만들었습니다. 입덧으로 인해 음식 역시 제대로 먹지 못하게 했습니다. 요즘 다이어트가 한창 인기인데, 그 흐름에 역행해서 어머니의 몸무게를 잔득 늘려 놓지요. 10~20Kg의 몸무게를 불려놓았지만, 출산 직후 빠지는 것은 단 3~4Kg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 아기가 세상에 나올 때는 어떠합니까? 인간이 느끼는 엄청난 고통을 이 출산의 순간에 경험하게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거의 10달 동안 많은 아픔과 상처를 가져다준 아기입니다. 그런데 갓 태어난 아기를 향해서 “너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했어? 그래서 너 미워!!”라고 말하는 어머니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많은 고통과 시련을 가져다 준 이 아기이지만, 가장 사랑스러운 미소를 띠며 바라볼 뿐입니다.

사랑이 고통과 시련보다 훨씬 더 높고 넓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고통과 시련 없이 어떤 사랑도 남아 있을 것 같지 않지만, 이를 뛰어넘어서 세상을 환하게 드러내는 것은 이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토록 보여주고 싶으셨고, 또 우리들이 간절하게 따르기를 원하는 것이 이 사랑입니다. 참 하느님이신 분께서 얼마나 큰 사랑을 보여주셨습니까? 그래서 힘없는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벌거벗은 채 오셨고, 돌아가실 때 역시 옷이 벗겨진 채 십자가에 못 박혀 비참한 모습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이제와 다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나만을 생각하고 강조하는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삶이 아닌, 어떠한 상황에서도 가장 큰 가치를 ‘사랑’에 둘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주님 수난 성금요일인 오늘, 나의 사랑을 반성하고 더 큰 사랑의 삶을 살아가는 그 시작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씨앗 몇 개만 뿌리고도 트럭 한 대 분량의 호박을 얻을 수 있다. 자연의 경이로움은 우리가 내준 것보다 훨씬 많이 주는 저 관대함이다(앤드류 매튜).


도화동성당으로 주님만찬 성목요일 미사 다녀왔습니다. 사진은 세족례장면.



믿음이란 그런 것이다.

강론 직전에 오랫동안 기도를 하시는 신부님이 계셨습니다. 다른 신부님들은 복음을 읽은 뒤에 곧바로 신자들을 향해 강론을 하는데, 이 신부님만은 눈을 감고 오랫동안 기도를 하신 뒤에 강론을 하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한 어린 복사가 미사 후에 신부님께 묻습니다.

“신부님, 미사 강론하시기 전에 꼭 기도를 하시는데 무슨 기도를 하세요?”

신부님께서는 웃으며 대답하셨지요.

“아~~~ 강론 전에 하는 기도? 신부님은 신자들을 향해 좋은 강론을 하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는거야.”

그러자 어린 복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다시 묻지요.

“그런데 그 기도를 하느님께서 왜 안 들어주시는 거예요?

무척이나 당황할 수 있는 질문이었지만,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답니다.

“나중에, 언젠가는 주실 거야. 믿음이란 그런 것이니까.”

나중에 그리고 언젠가는 주신다는 믿음. 이 믿음을 잃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 믿음을 간직하지 못하지요. 그래서 희망을 잃어가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 수난 성금요일인 오늘, 주님의 그 큰 사랑을 바라보며 더욱 더 흔들리지 않는 굳은 믿음을 내 안에 간직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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