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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월31일(일) 예수 부활 대축일, 聖아모스님
작성자정유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30 조회수499 추천수1 반대(0) 신고



3월31일(일) 음2/20

예수 부활 대축일

[이콘] 마르코복음서에 의한 이콘.러시아.16세기경



 





요한20,1-12

1 안식일 다음 날 이른 새벽의 일이었다.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무덤에 가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이미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달음질을 하여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다른 제자에게 가서
"누군가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다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알려 주었다.
3 이 말을 듣고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곧 떠나 무덤으로 향하였다.
4 두 사람이 같이 달음질쳐 갔지만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 가 먼저 무덤에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수의가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으나 안에 들어 가지는 않았다.
6 곧 뒤따라온 시몬 베드로가 무덤 안에 들어 가 그도 역시 수의가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는데
7 예수의 머리를 싸맸던 수건은 수의와 함께 흩어져 있지 않고 따로 한 곳에 잘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 가서 보고 믿었다.
9 그들은 그 때까지도 예수께서 죽었다가 반드시 살아나실 것이라는 성서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10 두 제자는 숙소로 다시 돌아 갔다.
11 한편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던 마리아가 몸을 굽혀 무덤 속을 들여다 보니
12 흰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의 시체를 모셨던 자리 머리맡에 있었고 또 한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주님 부활 대축일

초기 교회의 파스카 대축일은 거룩한 밤(성토요일)에 시작하여 새벽이 되기 전에 끝마쳤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향료를 가지고 간 여인들에게 전한 천사의 말로부터 시작하여
저녁 무렵에 사도들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사건에 이르는 수많은 사건에 대한 기억을
파스카 주일 전체에 걸쳐 되새기기를 원하게 됩니다.
그래서 4세기 예루살렘에서는 오후에 거행하는 전례가 생겨납니다.

또 7세기에 이르러서는 로마 교회에서 파스카 저녁기도를 거행하였다고 합니다.
오후에 새 영세자들과 신자들은 라떼란 대성전으로 모여
’기리에 엘레이손’을 부르는 가운데 성직자가 행렬을 지어 입당함으로써 저녁기도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후 중세기에 수많은 예절들이 생겨나고 이 예절들은 부활절 아침의 특징적인 전례로 자리잡게 됩니다.
9세기에는 파스카 전야의 마지막 전례에 참여한 사람들이 서로 친교의 표시를 하며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하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최근까지도 동방 전례에서는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한 두 번은 본 영화「부활」에는 이러한 장면이 있습니다.

이날 새벽에 드리는 미사에는 베드로와 요한이 빈 무덤을 발견하는 부분을 읽습니다.
이 복음 구절은 전야에 읽었던 천사가 여인들에게 발현하는 기사와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발현한 기사 사이에서 시간적으로 중간에 해당하는 대목입니다.
말씀의 전례는 베드로가 예수님의 파스카를 증언하는 부분(사도 10, 34-43)으로 시작합니다.
이 구절을 시작으로 성령 강림 때까지 사도행전은 계속해서 읽혀집니다.
이어서 그리스도의 파스카를 유다인의 파스카와 비교하는 바오로의 글(1고린 5, 6-8)이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람답게 살 것을 촉구하는 글(골로 3, 1-4) 가운데 하나를 읽기도 합니다.






쇠못에 뼈가 어스러지고
가시관에 찔린 피가 온 얼굴에 흘러 내리는데
옆구리 깊숙히 창에 찔리며 참혹히 죽어가신 예수님

그러나 어머니와 제자들 앞에 영광으로 부활하시니
이 죄인도 이제는 눈물을 거두옵니다.

알렐루야!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시여!!






3월31일(일) 음2/20

예언자 聖 아모스


 
 
성인명 아모스(Amos)
축일 3월 3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구약인물, 예언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8세기BC
같은이름  


예언자들 - 성 말라키(Malachias)와 성 즈카르야(Zacharias)와 성 아모스(Amos)


 


구약성서 열두 소예언서 가운데 세 번째 책인 아모스서의 저자인 성 아모스(Amos)
정의의 예언자로서 예언-집필 문학 시대를 연 이스라엘 최초의 예언자였다.
아모스는 남부 유다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Jerusalem)으로부터
남동쪽으로 18km 떨어진 작은 촌락 드고아에서 태어났다(1,1).
다윗 왕권 계승 사화에도 등장하는(2사무 14,1-24) 이 마을은,
사방이 언덕으로 둘러싸인 유다 광야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어서
염소나 양 떼 목축업이 가능했던 지역이었다.

아모스는 자신을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라고 소개하였는데(7,14),
이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은 다양하다.
속성 재배를 목적으로 당시 가축들의 사료로 사용되었던
돌무화과나무의 열매에 칼집을 내던 목축업자였던 것으로 여겨지며,
돌무화과나무 재배에 종사했다는 사실에서
여러 지역 특히 셰펠라(Shefela) 지역을 자주 여행하였으리라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렇게 아모스는 정치, 문화, 농업이 상호 긴밀히 연계되어 있던 지역 출신으로서,
보다 넓은 시야를 갖출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원 세계에서 터득한 언어를 어려움 없이 구사할 수 있었다.
아모스 예언자가 활동한 기원전 8세기 중반은
북이스라엘 왕국에 있어서 고통스러운 시기였다.
정치적으로 과거의 영토를 상당 부분 회복함으로써 승리에 도취되었고,
경제적으로는 인접 국가들과의 교역이 확대되어 괄목할 정도로 부가 증가하였지만,
이는 오히려 빈부의 사회적 불균형을 가중시켰다.
부자들의 사치와 착취가 사법권을 등에 업고 조직적으로 행해졌다.
그리고 종교적인 면에서도 예언자들의 경신례가 화려해지고,
법과 정의를 존중하고 실천하려는 의지 없이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예식이 성행하였다.
이 같은 역사적, 사회적 상황 속에서,
좀 더 정확하게 기원전 760-750년경 예언자 아모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모스는 남부 유다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와 왕실의 성소였던 베델을 중심으로 예언활동을 전개하였다(7,10-17).
따라서 그의 사명은 보편적인 중요성을 지님과 아울러 일치의 표지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이 아무리 정치적, 종교적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하더라도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책임을 물으시려는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한 백성으로 머물러 계시기 때문이다.


*굿뉴스 자료집에서 발췌

 






승리에 도취된 이스라엘이
극심한 빈부차로 하느님의 정의가 흔들릴 때
예언자로 등장하셨던 성 아모스 님이시여

비슷한 혼란 가운데 헤매는
현세의 저희를 위하여 천상의 기도를 보내 주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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