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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이 없는 무덤의 삶과 다른, 사랑이 있는 부활의 삶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30 조회수344 추천수0 반대(0) 신고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그리고 보고 믿었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한 20, 1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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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셔야 했습니다. 사랑은 죽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탄생하실 때, 이미 예수님의 죽음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사랑이 탄생했을 때는 이미 사랑은 죽음이 정하여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탄생'과 '사랑의 죽음'으로써 전부 끝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랑의 부활'이 예고되어져 있었습니다. 사랑이신 분께서는 사랑으로 죽으심을 겪어셨지만 사랑이신 분은 다시 사랑으로 부활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탄생하셨으며,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탄생하셨으며 사랑으로 부활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탄생과 부활 사이에는 예수님의 죽으심이 있습니다. 역시 사랑으로 죽으심입니다.

사랑의 탄생과 사랑의 죽음과 사랑의 부활입니다. 이는 사랑으로 탄생하고 사랑으로 죽으며 사랑으로 부활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동안 사랑이 죽는 까닭에 대하여 많이 이야기를 해 왔습니다. 사랑은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나를 미워한다고 하셨습니다.세상은 사랑을 미워합니다.여기에서 세상이 미워하는 사랑은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1요한 4, 7 참조)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반대받는 표적이 되신 것은 세상이 악하다고 증언(요한 7, 7)하셨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요한 15, 19)]라고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이 반대받는 표적이 되는 것은 '악하다'고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사람으로 '사랑은 복되시어라'하고 여겨지지 못하고 도리어 반대받는 표적이 되어져 예수님께서 죽으셔야 했던 것처럼 사랑은 죽어야 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죽는 것은 결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써 모두 끝나는 것이 아니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사랑을 팔아넘긴 유다에게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라며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사랑의 부활이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사랑의 탄생이셨고 사랑의 부활이십니다. [나는 알파이며 오메가이고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시작이며 마침이다.(묵시 22, 13 참조)] 하느님께선 사랑의 시작(탄생)이시며 사랑의 마침(부활)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은 사랑이 부활하는 것입니다.사랑은 죽음을 넘어 생명으로 향합니다. 사랑이 부활하지 못한다면 죽음을 넘지 못하는 것입니다.악이 고통의 문을 열었다면 사랑은 평화의 문을 여는 것이며 죄가 죽음의 문을 열었다면 사랑은 생명의 문을 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부활은 땅에서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땅에서 일어났듯이 그러합니다. 사랑의 부활은 하늘에서 시작하지 않고 땅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땅은 삶입니다. 따라서 부활의 삶이란 바로 사랑의 삶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탄생한 이유인 것입니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사랑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사랑을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랑을 무덤 속에 묻혀 두고 무덤 속에서 사랑을 찾는 것은 부활의 삶이 아닙니다. 그리고 사랑은 또다른 무덤에다 모시는 것도 아닙니다. 

부활의 삶은 '사랑의 삶'인데, 사랑으로 부활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삶을 사는 사람은 죽은 이들의 삶이 아니며 또한 죽은 사랑의 삶도 아닙니다. 무덤에서 승리한 부활의 삶은 '살아있지만 실상은 죽어있다'가 아니라,  “나는 죽었었지만,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다”(묵시 1,18)하고 그리스도의 참된 부활에 참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며 사랑의 부활입니다. 악과 고통, 죄와 죽음의 무덤에서 정지되어 머무르는 삶은 살아있지만 실상 죽은 이들이 찾아가는 무덤의 삶이고,  그런 무덤에서 승리하여 부활한 사람은 죽었지만 보십시오. 살아있는 이들이 찾아가는 사랑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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