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아직 어두울 때 사랑찾는 예수마음은 무덤에 머물지 않는다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31 조회수423 추천수0 반대(0) 신고

세상은 아직 어둠에 묻혀 있었습니다. 어둠은 죽음입니다. 어둠이란 악에 의해 죄가 발휘하고 이어서 고통이 뒤따르며 죽음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어둠에서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어둠 속으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사실 사랑이 인간의 마음 안에 지워져 있으면 악의 유혹을 받게 되고, 죄를 지으면,  인간은 고통에서 신음하기 마련입니다. '사랑의 고통'을 말하는게 아닙니다.누가 사랑 때문에 고통을 겪는 것에 싫어하겠습니까.

고통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악의 고통과 사랑의 고통' 그 두 가지입니다. 악의 유혹을 받아 죄를 지으면 인간은 여러모로 고통에서 신음하게 되어지는 것이 '악의 고통'이며 악의 고통에서 침묵이라는 언어로 방관하지 않고,  이 악의 고통을 없애고자 하려는 사랑 때문에 겪게 되어지는 고통은 '사랑의 고통'입니다.

이로보건대 예수님께서 고통을 겼으셨다면, 이는 사랑 때문에 고통을 겪으신 사랑의 고통인 것입니다. 악의 고통에 침묵이라는 언어의 방관으로 사랑의 고통을 회피하는 사람은 아직 이 어둠에 사로잡혀져 있는 '죽음의 세력'(죽음의 상태)에 불과합니다.

이같은 어둠 속에서 빛이 비춰졌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어둠 속에 갇힌 이들을 구하시고자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그러므로 곧 '사랑의 빛'이십니다 어둠이 없었더라면 빛은 비추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악에 의한 고통과 죄에 의한 죽음의 어둠이 없었더라면 이 죄악의 고통과 죽음에서 인간을 특히 버려진 이들을 해방시킬 수 있는 사랑은 결코 탄생하지 않았다는 그 의미입니다 이처럼 사랑은 세상에 사랑이 탄생할 수 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인간 안으로 온 사랑은 반대받는 표적으로 정하여져 있었는데 시메온의 예언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어둠 때문에 사랑이 오게 되었고 이 어둠 때문에 사랑은 죽게 된 것입니다.악의 고통과 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사랑이 탄생하고 사랑은 죽어야 했던 것입니다.

인간이 침묵의 거추장스러운 위선을 벗어던지고, 예수님과 같이 '악의 고통'에 결합하여 사랑으로 악의 고통과 죄의 죽음을 없애고자 하였다면, 사랑 때문에 고통을 겪어야 하는 '사랑의 고통'은 예수님께 마련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갔습니다. 여기에서 아직 어두울 때라는 것은 악의 고통과 죄의 죽음이 아직 없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찾으러, 사랑을 찾으러 예수님께서 묻히신 무덤으로 갔습니다. 악에 의한 고통, 죄에 의한 죽음에 의해서 '잃어버린 사랑'을 찾으러 간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는다는 것은 사랑을 찾는다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은 악과 죄에서 사랑을 잃게 되었고, 방관하는 침묵으로 고통과 죽음의 어둠 속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마리아가 예수님을 찾는 것은 바로 인간에게 원래 있었던 사랑이다 할 것입니다.
 
인간은 죄악과 고통과 죽음에 방관적으로 침묵함으로써, '하느님의 숨'으로 받은 본래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이 '하느님의 사랑'을 찾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아직 어두울 때에 사랑을 찾아가는 마리아의 마음걸음(발걸음)에서 볼 수가 있게 됩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사랑의 죽음을 방관하는 사람은, 침묵을 들먹거리며 '어둠의 침묵'으로 마리아를 방해할 것이지만, 마리아는 자신에게서 '잃어 버려진' 사랑을 찾기 위해 이같은 어둠의 세력을, 어둠의 상태를 헤치고 자신의 사랑이신 분에게로 향하여 갑니다.

이같은 마리아의 마음이 '예수 마음'입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이 바로 '예수 마음'이었습니다.  잃어버린 사랑을 찾기 위해서 방관자들에게서 보여지는 '어둠의 침묵 상태'를
'예수 마음'이 헤치고 가는 것입니다. '예수 마음'이 아니고서는 '예수님의 사랑'에 일치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드러내신 사랑은 마리아의 '예수 마음'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요한 14, 21 참조)] 마리아는 자신이 받은 '예수님의 사랑'에 대하여 결코 방관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예수 마음'이 된 마리아는 방관적으로 침묵하는 아직 어두울 때에라도 예수님의 사랑에게로 향합니다. '행동하는 사랑'을 찾으러 향한다는 뜻입니다.그러나
성마리아여, 사랑이신 분은 결코 무덤 속에 결박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랑은 '죄악과 고통과 죽음'
에서 싸워서 이기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성마리아여,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죄악과 고통과 죽음의 무덤 안으로 내려가서 예수님과 함께 묻혔더라면 사랑은 무덤에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나 홀로 수덕주의'에 빠져, 쫓겨날 것을 두려워하며 숨어 있는 제자들에게 '사랑의 부활'을 전하십시오.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마리아에게서 전해듣고 두 제자는 '사랑에게로' 달려갑니다.  <다음 게시글에서 계속>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