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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막달라 여자 마리아 막달레나/신앙의 해[132]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02 조회수496 추천수0 반대(0) 신고


                        그림 : [그리스] 파트모스 섬 성 요한 기념 수도원에서 본 스칼라시

우리가 마리아 막달레나라고 부르는 여인은 막달라 출신 마리아일 게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내 주신 여인이다.
그녀는 예수님께 치유를 받고 감사드리며 예수님 일행의 시중을 들었다.
또한 그녀는 갈릴래아 부인들과 함께 예수님의 임종과 장례를 지켜보았으며,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요한 20,16-17)’
 

사랑하면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는 것이 들린단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군중 속에 파묻혀 있어도 금방 찾을 수 있다나.
말을 잘 못하는 장애인 아들의 이야기를 어머니는 알아들을 수 있다.
사랑 때문일 게다.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부활하신 주님을 뵐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지극한 사랑 때문이리라.
사랑 안에서는 죽음 너머의 생명이 보이고 삶 너머의 부활이 보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주님의 따뜻한 부르심의 음성을 눈치 챌게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당시의 예루살렘에서는 커다란 충격적인 드라마였다.
그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총각 귀신의 무덤을 여인 혼자의 몸으로 찾았다는 것은 선뜻 이해가 되질 않는다.
제자들조차도 골고타 언덕배기에서의 스승 예수님에 대한 처절한 죽음의 본질을
반신반의한 입장에서 예수님의 무덤을 찾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처럼 보통의 남정네도 감히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도
그녀가 그곳을 찾았다는 것은 쉽게 수긍이 되지 않는다.
 

평소에 예수님을 얼마나 따랐기에 그녀는 안식일 이른 새벽에 무덤을 찾았을까?
성모님이 먼저 무덤을 찾지 않은 것은 이해가 되지만,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을 이른 새벽에 찾았다는 것은 한번 궁금증을 가져봐야 할 일이다.
성모님은 자식 같은 예수님에 대한 나름대로 가슴에 품은 한을 머금으며
성령의 힘으로 십자가 사건을 지켜보았고, 그 억눌림으로
안식일에 홀로 마음을 삭이고자 무덤을 찾지 않는 것이 나름대로 이해는 된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왜 이른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을까?
복음마다 일부 차이는 있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이른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여자임이 틀림없다.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님과의 관계는 어떤 관계일까?
그녀는 복음의 어디에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사건을 제외하고는 구체적으로 등장하지 않는 여인이다.
사실 복음에는 여러 여자가 등장하여 하나같이 예수님의 도움을 받고 그분을 따른다. 
 

다시 말해 여성 대부분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따르는 인물이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분명히 복음의 어느 구절에도 도움을 받거나 예수님과의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그녀에 대해서는 일곱 마귀를 쫓아낸 적이 있는 여자라고만 간단히 묘사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 일곱 마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무엇이 일곱 마귀이며,
이 마귀와 막달라 마리아와의 구체적 관련에 대해서 그 어떤 설명도 없다.
부활의 신비에 가려진 아이러니이다.
 

좌우지간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뿐 아니라 여러 제자들에게도 나타나셨다.
그분의 발현을 부활의 증거로만 해석하면 곤란하다.
그분의 발현은 사랑의 표현이니까.
당신을 믿었던 이들에게 드러내신 애정의 보답이었다.
그러기에 온몸으로 사랑했던 이들은 그만큼의 감동을 받았으리라.
우리 역시 마찬가지일 게다. 의심을 풀어 제치면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
막달라 마리아는 사랑의 그 길을 보여 준 여인이다.
우리가 진정 주님을 사랑한다면
자신의 체면은 물론이요 생명을 무릅쓰고라도 주님 옆에 머물러야 한다.

신앙의 해를 보내는 우리는 주님께 대한 사랑이 어느 정도일까?
주님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을 수 있다고 내심 속으로는 말할 수 있을게다.
그렇지만 다른 모든 이 앞에서 떳떳하게 주님만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
주변에서 ‘믿는 이는 역시 다르다.’라는 소리를 듣고는 있을까?
신자임이 오히려 부끄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깊게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게다.
우리의 시선이 막달라 여자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언제나 주님을 향하고 있는지 깊이 반성해 보는 부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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