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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이 두렵고 유령으로 보이는 세속화에 빠지다 [이 일의 증인]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04 조회수347 추천수2 반대(0) 신고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루카2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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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에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하여 '예수님과 성경'은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증언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요한 20, 17 참조) ]하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내 아버지와 너희의 아버지, 내 하느님과 너희의 하느님은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말씀'께서는 '율법'을 올바로 해석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이 '말씀'께서는 '말씀'으로 '말씀'을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해 주신다 할 것입니다.
[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 8, 31 - 32 참조) ] 에서도 알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도 보았듯이 '내 말 안에 머무르면 -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입니다.예수님의 말씀 안에 머무르면 - 진리의 말씀을 깨닫는다는 것은 말씀 그 자체이신 분, 예수님의 가르치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 안에 머무른다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곧, 예수님의 마음과 같은 그대로의 마음에 견주어야 한다고 할 것입니다.
 
높은 지식의 신학자 혹은 신부님들께서만 예수님의 마음(말씀) 안에 머무르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지식을 배우신 것은 많으시다 할 수 있지만, 도리어 그 지식은 마음을 가로 막아 버리는데 작용하기도 합니다.그리하여 율법 학자들은(학자들은) '말씀' 안에 온전하게 머무르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는데 주도하기도 합니다.다시말한다면 '사랑'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린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수도자들도 예외는 될 수 없으며, 또한 모든 평신도들까지도 제외되지 않습니다.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요.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머리를 열어 주시는게 아니고 마음을 열어주십니다.마음을 여시는 '진리의 영'께서 마음을 여시도록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 자체이시고, 이 말씀 안의 말씀의 영으로 그들의 마음을 여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요한 6, 63 참조) 하고 가르치시며 예수님께서는 당신 말씀 안에 '말씀의 영'이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에서의 '말씀의 영'이 바로 '진리의 영'이신 것입니다. 진리의 영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
진리의 영이시다.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머무르시고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요한 14, 17) //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요한 16, 13) ]

사람이 눈여겨 보아야 하는 부분은, < 진리의 영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신다 >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말씀을 해석(이야기)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말씀의 영'께서는 말씀이 아닌 것으로는 결코 말씀을 이야기(해석)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말 안에 머무르면 -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는 말씀은 참되십니다.예수님의 말씀은 '말씀의 영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인간의 작용이 아닌 하느님의 작용에 의해서 '진리의 영'을 (말씀의 영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과 같습니다.  세상의 악과 죄에 머무르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 안에 머무르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이 아니다'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의 세속화, 사람의 세속화는 <악과 악에 의한 고통 그리고 죄와 죄에 의한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마치 이러한 것들이 말씀에서 진리인 처럼 여기면서 '죄악의 도식'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세상의 그것들을 수용(묵인)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아닌 것들을 받아들임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게 되고 결국 사랑을 볼 수 없게 되어집니다.

사랑은 볼 수 없기에, 악과 고통과 죄와 죽음이 설치게 됩니다. 사랑이 무덤에 묻혀 사랑이 죽은 곳에는 사랑으로 악에 대항하고 고통에 대항하여 얻을 수 있는 평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예수님)을 볼 수 없는 곳에는 평화를 바라 볼 수 없습니다.세상의 죄악과 고통과 죽음을 미화하는 세속화에서는 예수님을 볼 수 없습니다.그리고 예수님을 볼 수 없는 까닭에 사랑을 볼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화도 찾을 수 없게 되어 집니다.  

예수님을 볼 수 없기에 사랑을 볼 수 없고 평화를 찾지 못하는 제자들 (공동체) 에게는 이제 도리어 사랑이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합니다. 사랑이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임에도 이를 현실이 아닌, 허상으로 믿게 되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타락하여 세속화되면 사랑하는 것이 오히려 커다란 짐이 되어버립니다. 
사랑하는 것들에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영적인 나태함입니다.

그러므로 악과 악에 의한 고통이며 죄와 죄의 죽음을 도식화한 공동체는(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아닌 것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사랑을 볼 수 있어야 하는 일입니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사랑의 증인으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과 같은 그대로의 마음에 견주어야 한다는 것은 악에 대항하고 고통에 대항하며 죄의 죽음에서 승리하여 인간 안에 평화와 생명을 찾는다는 것으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사랑의 증인'은 '이 일의 증인'이 됩니다.

인간 고통에 밀접하신 예수님께서는 인간 고통에 민감하셨습니다. 당신의 고통이 '하느님의 고통'이 되셨으며 그리하여 악에 의한 고통에서 인간을 보호하시고자 악을 쳐부수시었습니다. 사랑으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묵인은 타락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인간의 '악에 의한 고통'을 아셨고, 당신께서도 직접 경험하셨으며 이 때문에 악의 고통에서 해방시키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죄의 죽음까지 없애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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