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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월5일(금) 聖女마리아 크래센시아 회스 님..등
작성자정유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04 조회수317 추천수1 반대(0) 신고



4월5일(금) 음2/25

聖女마리아 크래센시아 회스 님..등


 


마리아 크레센시아 회스(4.5)

성인명

마리아 크레센시아 회스(Mary Crescentia Hoss)
축일 4월 5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동정녀
활동지역 카우프베렌(Kaufbeuren)
활동연도 1682-1744년
같은이름 메리, 미리암, 크레센씨아, 크레센티아, 크레셴시아, 크레스켄티아,
크레쎈씨아, 헤스, 헤쓰, 호스

 



카우프베렌의 성녀 마리아 크레센시아 회스(Maria Crescentia Hoss)


 



성녀 마리아 크레스켄티아 회스(Maria Crescentia Hoss, 마리아 크레센시아 회스)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Bayern)의 카우프베렌에서 가난한 가정의 딸로 태어났다.
양친의 신앙생활이 매우 열심하였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단순함의 표양을 보여주었고,
그 결과 자녀들은 모두 세례를 받고 자주 성당에 가서 기도하곤 하였다.

성녀 마리아 크레스켄티아 회스는
집주위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녀회 성당으로 자주 성체조배를 하러 다녔는데,
어느 날 그녀는 십자가로부터 신비스런 목소리를 들었다.
“이곳이 네가 거처할 집이니라.”
그래서 그녀는 아버지께 간청하여 수녀원에 들어가려 하였으나
집안이 너무 어려우니 21세까지만 기다리라는 말씀을 듣고 열심히 가사를 도왔다.
드디어 이 약속은 지켜졌다.

그녀의 수녀원 생활은 겸손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지참금을 전혀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녀는 아주 조그마한 방이 마련되었으나
지참금을 지불한 새 입회자에게 넘겨주어야 했고
자신은 그녀의 방 마루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 모든 수모를 아주 겸손하게 받아들였고,
그럼으로써 높은 성덕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장상이 임명되었을 때에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그녀의 높은 덕을 보고 살아있는 성녀로 높이 평가한 것이다.
마침내 그녀는 수련장과 원장직까지 역임하였다.
그녀는 수많은 환시를 보았고 자주 탈혼에 빠졌으며
특히 우리 주님의 수난에 대한 신비적 체험이 많았다.
이 체험은 매주 금요일마다 일어났다.
그러므로 그녀의 영향은 수녀회 뿐만 아니라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모두 그녀의 참 지혜와 겸손으로부터 큰 감명을 받고 돌아갔으며,
교회의 지도자들도 가난한 이 수녀의 의견을 듣고자 애썼다.
성녀 마리아 크레스켄티아 회스는 1900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1년 11월 25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굿뉴스 자료집에서 발췌




가난했던 소녀는
수녀원에서 뒤로 밀리며 겸손만으로 살았는데

주님은 탈혼과 환시의 은혜의 신비로 님을 축복하셨으니
성녀 마리아 크레센시아 회스 님이시여

단순함과 겸손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저희를 위하여 천상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가타리나 토마스(4.5)

성인명

가타리나 토마스(Catherine Thomas)
축일 4월 5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수녀
활동지역 팔마(Palma)
활동연도 +1574년
같은이름 까따리나, 카타리나, 캐서린



팔마의 성녀 카타리나 토마스(Catharina Thomas)


 
 



성녀 카타리나 토마스(Catharina Thomas, 또는 가타리나)
일생동안 에스파냐 발레아레스 제도 마요르카(Mallorca) 섬에서 지냈다.
그녀의 양친은 막내딸인 카타리나가 일곱 살 되던 해에 모두 운명하여
어려서부터 슬픈 나날을 보내며 삼촌 집에서 자랐다.
그런데 그녀는 어려서부터 소량이지만 약물 상용 복용자였다.
이를 극복하라고 주위에서 야단이었지만 그녀는 이를 아예 무시해 버렸다.
그러므로 그녀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였다.

15세 되던 해에 그녀는 성 안토니우스(Antonius)
자신의 수호성인인 성녀 카타리나의 환시를 보게 되었는데,
이때 그녀는 수도생활에 대한 열망이 치솟았고,
이 사실을 은수자로 지내던 안토니우스 카스타네다 신부에게 말씀드리고
판단을 기다렸다.
얼마 후에 그녀의 성소를 시험한 안토니우스 신부는 이를 허락하고
수도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지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팔마에 있는 성 아우구스티노회를 선택하고 입회하였는데,
이때 그녀의 나이는 20세였다.

입회 초부터 그녀의 탁월한 성덕과 겸손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봉사가 돋보이기 시작하여
장상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연간 13-15일 동안은 탈혼 상태에서 지냈으며,
어떤 때는 하루 종일 그런 상태에서 보내기도 하였다.
때때로 간경증 환자처럼 전혀 생기 없는 상태가 되었고,
또 예언의 은사도 받았음이 드러났다.
그러나 수녀원 내에서 맡은 소임을 게을리 한 적은 없다고 한다.
성녀 카타리나 토마스는 자신이 예언한 해(41세)에 운명하였으며,
1792년에 시복되고, 1930년에 시성되었다.

*굿뉴스 자료집에서 발췌






7살에 부모를 모두 잃은 고아로서
가난에 약물 약물 상용 복용까지 경험했던 소녀
그러나 천상 성인님들의 신비로운 환시를 보고 수녀회에 입회하여

탁월한 겸손과 봉사의 영성으로 급변한
성녀 가타리나 토마스 님이시여

가난과 무지 속에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위하여
천상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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