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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적인 식별의 장애와 예수님의 충만한 식탁간의 극명한 대조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04 조회수317 추천수1 반대(0) 신고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하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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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자신들 곁에 줄곧 계시지 않자 아무런 의욕이 없으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도 자기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슴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먼저 말합니다. 그러자 그들 역시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는 일상적인 삶의 형국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전국을 돌아다니며 호령하던 예전의 기세라고는 찾아보기가 힘든 모습입니다.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의 차이입니다. 육적인 때에는, 그나마 움직임이 활발했지만 영적인 때에는, 너무나 조용하고 그같은 일들이 있기는 있었나 할 정도입니다.

제자들에게 또 다시 엄습해 온 메마름의 시기입니다. 거기에는 지난 날들의 생각도 기억도 느낌까지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고 있지만, 아무런 영적인 감흥 마저도 상실되어진 '무덤의 삶'에서 여전히 이어져 갑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신 '육적인 메마름의 시기'와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영적인 메마름의 시기'에서 더욱 그 메마름의 혹독함은 영적인 메마름이다 할 것입니다. 육적인 것은 자극에 의해 반응이 즉시 있을 수 있겠지만 영적인 것은 감지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영적인 나태는 메마름의 시련이 됩니다. 육적인 감각은 점점 살아나고, 영적인 감성은 점차 죽어갑니다. 그리하여 육적인 것들이, 영적인 것들을 지배해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악의 유혹에 쉽게 빠지고 악을 악으로 볼 수 없으며 죄를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육적인 감각들이 자라나서 악에 의한 고통과 죄에 의한 죽음을 일상의 흔한 일로 치부해 버립니다. 그리고 육적인 감흥에 더욱 맛들여 가면서 영적인 것들은 쉽게 무시해 버리기도 합니다. 제자들에게, 수도자들에게는 그것들이 더욱 쏜살같이 달려들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였다.하고 말하는 것은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일상의 삶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온갖 고난을 겪으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셨던 그동안에 예수님의 마음을 잃어버렸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고생하며 '사랑'을 선포하여야 할 일인데도 불구하고 악의 고통과 죄의 죽음을, 한낱 일상의 일로 치부해 버린다는 것은 그것들의 종이 되어졌다는 세속화의 증거로써 대단히 심각한 일이다고 할 것입니다. 영적인 메마름은 그 심각함이 영혼의 파멸에로 이르게 합니다. 

사제분들과 수도자분들이 영혼의 생생하게 살아 움직임을 잃어버리면 버려진 이들을 <악의 고통 속에 놓여있게 하고 죄의 죽음 속으로 밀려 떨어지게> 합니다. 육적인 감흥들에 맛들리면 '영적인 식별의 장애'로 만들어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지만 영적인 부르심을 깨닫지 못하여, 일상의 지루함을 일상의 일로 그 몫을 얻고자 하였지만 그런 몫은 '진정한 몫'이다고 말할 수 없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제자들이(공동체가) 얻고자 하는 몫은 '사랑의 몫' 외에는 어떤 것에도 맛들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르셨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하듯이 비록 '영적인 메마름'에서 예수님이심을 알지 못하였다고 할지라도 그동안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듣고 배웠던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에 순종하여 '사랑의 그물'을 던져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그물을 올릴 수 없을 정도의 수고로써 자신들의 고통을 그리스도적인 고통으로 결합시키며 제 십자가를 지면서 고생하는 자기 삶의 전부를 예수님의 식탁에 올려드려야 하는 것이 예수님의 형제들에게는 '진정한 몫' 주님께 바치는 참된 봉헌이다 할 것입니다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메마름으로 '일상의 배'로 올라갔지만 그들이 얻고자 했던 세속에서의 몫은 모두 물거품(모래성)이 되어져 버리고 맙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수고한 제자들은 그제서야 많은 고기를 얻고 예수님께서 서 계시는 뭍으로 내려갔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믿음으로 순종한 결과, 숯불인 '사랑의 불꽃' 위에는 '사랑의 그물'에서 제자들(형제들)의 고생으로 얻게 된 진정한 몫인 물고기가 있슴을 보여 주시며 충만한 이 식탁에는 예수님께서 몸소 빵이 되심도 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영적인 식별의 장애와 예수님의 충만한 식탁은 실로 대조적이다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가 육적인 감흥에 맛들여져서 영적인 메마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버려진 이들이 겪는 '악에 의한 고통과 죄의 죽음'에 대하여 무감각해 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이같은 영적인 메마름이 점차 영적인 식별의 장애를 불러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들에 오래 중독이 되어지면 자기 자신들이 아니라 버려진 이들이 고통에서 구원되지 못한다는 것에 도리어 슬퍼해야 합니다.하지만 버려진 이들이 자기 마음속에 그리스도적 고통으로 자리잡지 못할 때에는 소용도 없이 아무런 느낌도 받지를 못합니다.

모든 신자들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돌이켜 살피며 진실로 회개하고 자신을 성찰하며 오로지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할 때, 식어진 사랑의 불꽃은 서서히 타오르는 것입니다.그러는 가운데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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