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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리아 막달레나 그는 누구인가?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05 조회수369 추천수1 반대(0) 신고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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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막달레나 그는 누구인가?

 

성경에 마리아 막달레나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어디인가?

 

성경에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고 어떤 연유로

예수님을 따랐는지  전하지 않고 다만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다른 여인들과 함께

있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요한 19,25)

 

또한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시신이 어디에 묻히는지 그 장소까지

함께 했던 여인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는 그분을 어디에 모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마르 15,47)

 

그리고 이어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다른 여인들과 예수님의 무덤에 가서 향료를

발라 드리려고 샀고 주간 첫날 매우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에 무덤으로 갔다고

소개되고 있습니다(마르 16,1-2).

 

요한 복음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 그 제자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요한 20,1-10 참조)

 

그러나 마리아 막달레나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처럼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왜  서서 울고 있었을까?

그리고 울면서 그녀는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이미 빈 무덤

임을 확인하고 두 제자가 떠났는데 그 빈 무덤에 무엇을 기대하고 몸을 굽혀 들여다

보았을까?

 

나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이러한 이야기의 흐름 안에서 무엇을 묵상할 수 있을까?

 

마리아 막달레나가 부활하신 주님을 가장 먼저 만날 수 있었던 무엇이 있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이 부분을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는 부분은 여기까지이지만 이 내용을 가지고 마리아 막달레나가

왜 이토록 예수님께 애착(?) 또는 집착(?)을 하고 있었는지 그 마음을 알고 싶습니다.

도대체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통해 무엇을 얻었기에 다른 모든 제자들이

자기의 갈 길로 다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무덤을 떠나지 못하고 서서 울고 있어야

했는가?

 

짐작할  뿐이지만 예수님을 죽도록 사랑한 여인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어떤 연유로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서 어떤 사랑을 어떻게 받았는지 그것은 마리아

자신만이 알기에 그렇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성경이 전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는 결국 나 자신이었습니다.

저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는지 사실은 적나라하게 소개하고

싶지 않기에 그렇습니다. 내가 내 삶의 여정 안에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 사랑을 나누게 되었는지그 내용은 저와 예수님만 알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공개될 수 없는 사랑 이야기이기에 그렇습니다. 왜냐 그것은 저의 개인적인

사생활이기에 그렇기도 하지만 진심은 결코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한 개인의 인격을 존중하십니다.

 

그럼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의 부활을 첫 번째로 목격할 수 있었던 은총의 샘은

무엇인가?

 

성경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예수님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십자가

곁에서도 예수님 곁에 있었고, 예수님의 시신이 어디에 묻히는지도 따라갔고

이른 아침 해가 뜰 무렵 무덤을 찾아갔고, 빈 무덤을 확인하고 두 제자가 다시

집으로 돌아갔지만 그녀는 여전히 무덤에 남아 있었고, 그 빈 무덤이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았는지 몸을 굽혀 들여다 보았다는 것이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저는 저의 내면으로 여행을 할 것입니다.

어떤 힘이 그토록 예수님을 떠나지 못하게 하였을까? 마리아 막달레나를 찾는

것보다 더 빠르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왜 사느냐는 삶의 문제 앞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못다한 사랑을 위하여" 살아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못다한 그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주인이신 예수님께 꾝 붙어 있어야 했습니다.

제가 예수님께 지금까지 붙어 있었던 의미입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전 빈 무덤에 서서 울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다고 하시더니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주님, 도대체 어떻게 부활하신다는 것입니까?..."

아마 이렇게 넉두리를 하며 서서 울었을 것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도 아마 이렇게 말하며 서서 울었을 것입니다.

부활이 도대체 무어냐고 물었기에 가장 먼저 예수님을 뵈올 수 있지 않았을까요?

궁금해 하는 사람에게 답을 주어야지 즉시 깨닫지 묻지도 않는 사람에게 답을

줘봐야 그게 뭔 답인지도 모르기게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었고 주님의 음성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알아뵙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이건 무슨 의미인가?

 

그런데 주님께서 "마리아야!" 라고 부르시자 그 때에야 마리아 막달레나는

돌아서서 "라뿌니!" 하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천사도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물었고, 처음에 예수님께서도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천사가 물었을 때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예수님께서 직접 자신의

음성으로 물으셨을 때조차 마리아 막달레나는 그분이 주님이신지 알아뵙지 못했습니다.

 

이 의미는 무엇을 말하고 싶으신 것일까?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요한 10,27)

 

예수님께서 "여인아, 왜 우느냐?"고 물으셨을 때도 예수님의 음성이었고

"마리아야!"라고 부르셨을 때에도 예수님의 음성이었는데 "마리아야!"라고

부르셨을 그때에야
부르신 그분이 주님이심을 알아뵈웠다는 말씀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 살아생전 예수님께 늘 듣던 말씀이라는 의미가 아닐런지요?

예수님 살아생전에 들어보지 못한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에 해 주신

그 말씀을 들을 수 있을 때에 부활하신 주님을 뵈올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닐런지요?

 

그렇다면 전 예수님의 음성을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그동안 예수님과 함께 사랑하며 살아오는 과정 안에서 늘 듣던 그 말씀을 통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뵈올 수 있다는 그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저에게 늘 하시던 말씀들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 말씀은 성경을 통해서도 있었고

내 삶의 자리에서도 일상적인 말씀들로 늘 있었습니다.

 

바르지 못한 생각들을 할 때에도 해 주셨던 말씀들이 있었고, 외롭고 쓸쓸했을 때에도

해 주신 위로의 말씀들이 있었고, 고통 중에 신음할 때에도 위로해 주시고 쓰다듬어

주셨던 말씀들이 있었습니다. 잘했을 때에는 칭찬도 아끼지 않고 해 주셨고...

 

부활하신 주님은 그동안 저에게 해 주셨던 그 말씀과 그 음성으로 저를 다시 만나

주신다는 의미로 깨달았습니다. 이 깨달음은 기쁨이고 은총입니다.

제가 들어보지도 못한 어떤 새로운 말씀으로 저에게 다가오시는 분이 아니라

그동안 저와 함께 사셨던 그 말씀과 그 음성으로 오늘도 저를 만나 주십니다.

그리고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당신의 형제들에게 가서 전하라고 말씀하셨듯이

저도 이 기쁜 소식을 형제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요한 20,18)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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