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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의 삶 - 2013.4.5 부활 팔일 축제 내 금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05 조회수395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3.4.5 부활 팔일 축제 내 금요일 사도4,1-12 요한21,1-14

 

 


부활의 삶

 


부활의 삶은 사는 이가 아름답습니다.

 


죽음과도 같은 절망 중에도 생명의 빛이 되어, 희망의 빛이 되어,

부활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 저절로 힘이 납니다.

“저희가 믿음으로 거행하는 신비를 실제 삶으로 증언하게 하소서.”


본기도 마지막 구절이 새롭습니다.

실제 삶으로 주님 부활을 증언하는 삶이,
주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 사는 삶이 제일입니다.

부활의 삶을 통한 증언이요 증인의 삶입니다.

“주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부활시기, 계속되는 새벽 성무일도 초대송 후렴입니다.

부활시기의 성무일도 역시 온통 주님 부활을 경축하는 고백들입니다.


어제 읽은 불교대학 어느 교수의 인터뷰 내용 중 진솔한 고백이 생각납니다.


“그리스도교와 친숙하기는 하지만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 
 
 바로 예수의 부활과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교의다. 
  그리스도인들과 대화하다 보면 항상 이 지점에서 멈추게 된다.”

아주 중요한 지적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사도행전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대해 증언하고 있습니다.

과연 누가 단도직입적으로 우리에게
“예수님 부활을 믿느냐?”
또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을 얻을 수 없는가?”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화두처럼 주어지는 물음입니다.

 

부활신앙은 순전히 은총의 선물입니다.
객관적 논증의 대상이나 이해의 대상이 아닙니다.

희망할 수는 있어도 강요할 수 없는 부활신앙 고백입니다.

믿고 싶다고 믿어지는 주님 부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오시어 심안(心眼)을 열어주실 때
로소 체험하는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부럽다.”

 

예전 투병 중이던 형님이 지극정성 믿음으로 간병하던 형수님을 보면서
무심코 던진 말과 더불어 그 쓸쓸해 보이던 눈빛을 잊지 못합니다.

부활신앙은 순전히 은총의 선물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당신 부활을 체험하라고 미사축제에 믿음 부족한 우리를 초대해 주십니다.

 

오늘 복음 장면이 참 아름답고 심오합니다.

밤의 어둠과 동터 오는 새벽의 경계선에 자리 잡고 계신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신 주님으로 인해 좌절과 실의에 빠져
다시 고기잡이를 떠난 제자들을 찾아오신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 것도 잡지 못했다.’

 

바로 부활하신 주님 부재의 허무와 무의미의 어둠을 상징하는 장면입니다.

주님 없이 하는 일은 모두가 헛된 노고임을 깨닫습니다.

 

‘어느 덧 아침에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바로 이런 허탈감에 빠져있는 제자들에게
동녘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빛으로 다가오시는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참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접근하십니다.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못 잡았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즉시 제자들은 순종하여 그물을 던졌고
너무 많은 고기가 걸려 그물을 끌어올릴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임재하심으로
밤의 허무는 의미 충만한 빛의 현실로 바뀌었습니다.

 

“주님이십니다.”

 

순간 눈이 열려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 본 애제자에 이어 베드로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복음에서와 똑같이 이 거룩한 만찬에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과 성체를 모시면서
부활하신 주님을 깊이 체험하는 미사시간입니다.

이런 부활하신 주님체험에서 나온 그리스도께 대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바로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이런 고백은 논증이나 사변, 이해의 대상이 아닌 체험의 고백입니다.

강요할 수 없는 부활신앙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관용의 정신과 기도뿐입니다.

하여 우리는 성금요일에,
“그리스도를 안 믿는 이들이 양심대로 살아가며 진리를 찾아 얻게 하소서”
“하느님을 안 믿는 이들이 신자들의 착한 행실을 거울삼아,
     주님 홀로 인류의 아버지이심을 고백하게 하소서.”

 

기도를 바쳤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당신을 체험케 하시고

우리 모두 당신 부활의 증인이 되어 부활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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