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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금까지도 정녕 예수님을 못보는 제자들은 아직 있기 마련이다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05 조회수332 추천수1 반대(0) 신고

그 여자는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이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며 그 여자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그 뒤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래서 그들이 돌아가 다른 제자들에게 알렸지만 제자들은 그들의 말도 믿지 않았다. 마침내, 열한 제자가 식탁에 앉아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르코 16,9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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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다시 살아 나셨다는 말에 제자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다시 살아나 계신다는 말인지 믿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에서 정말 신비롭게 기적처럼 죽으시면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는 제자들이었을 것같지도 않습니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과 그들에게 속한 군중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메시아라고 하겠다며 조롱하고 빈정거렸습니다. 그리고 못박혀셨고 창으로 찔렸습니다. 제자들까지 그런 메시아에 대하여, 전혀 생각해 보는 것조차 엄두도 나지 않으신 만큼이나 아주 초라하게 볼품도 없이 죽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처럼 참으로 모양새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에게 신비로이 모양새가 있게 십자가에서 죽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도 하찮은 인간적인 마감이었고 너무나 육적인 죽음이었기에 제자들의 비통한 심정은 좀처럼 끊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남 다르게 죽는 모습이었다면 지도자들과 군중들과 제자들이 예수님을 그나마 달리 생각했을까요.그리스도께서는 여느 사람들과 같이 다름없는 십자가에서 볼품나지 않게 죽으셨습니다.사람을 사랑하였고 늘상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던 사람에 대하여 진정성으로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로 쉽게 죽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을 십자가에 매달은 사람들은 그렇게 떠나신 예수님을, 사랑에 대하여 또 다른 멸시와 조롱과 빈정거림으로 대하기를 계속해서 멈추지 않습니다. 자기들 안에, 악이 지속적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는 점에 자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살아있을 때에도 멸시하고 죽어가는 때에도 또 멸시하며 조롱과 조롱, 빈정거림과 빈정거림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사랑의 십자가 죽음을 바라보며 비아냥거림은 사랑에 대한 악한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을 나타내 줍니다. 자신들의 죄악성을 숨기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자신들이 진정으로 그 죄악성(죄스런 배경의 본질)을 감추지 않는다면 사랑의 십자가 죽음에 대하여 회개가 자신들에게 일어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회개보다는 비아냥 대는 것이 더 재빠르기만 합니다.

그러하니 그들의 악한 성향으로는 그렇게 모양새없이 죽으신 십자가의 예수님께서 도무지 사랑으로 다시 살아나심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 내재적으로 자리잡은 악한 성향은 죄와 함께 사랑에 대하여 영적으로 보는 눈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입니다.그들은 결코 "사랑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수 없는 이스카리옷 유다들이었습니다. 정녕 사랑을 (예수님을) 보지 못할 사람들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보라, 너희 집은 버려질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날이 올 때까지, 정녕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루카 13, 34 - 35) ]

마침내, 열한 제자가 식탁에 앉아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고 기록합니다. 

사랑을 십자가에 매달은 사람들은 십자가에서 특별하지도 않고 다른사람들과 똑같이 볼품없이 아주 하찮게 떠나버리신 예수님을(사랑을) 진정성으로 믿지 못합니다. 재차 말하지만 그런 것들이 작용하는 것은 참으로 인간적인 죽음에 대하여서 회개할 수 있는 마음보다 그들의 마음 속에 내재된 죄악성이 더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용서를 빌며 죽으셨다고 해서 저절로 회개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미리 의미상으로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찮게 돌아가신 십자가의 예수님(십자가의 사랑) 에 대하여 인간 안에 감추어진 죄악성은 사랑으로 다시 살아나셨다고 해도 그불신과 완고한 마음으로는 "사랑은 복되시어라" 하고 사랑을 믿지 못합니다. 

사랑을 못박은 그들 안에 있는 뿌리깊은 죄악성은 사랑에 대한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결코 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특히 제자들에게는 사랑의 복음 말씀을 선포하여야 할 일들을
손놓고 있었다는 것은 영적인 메마름인 것입니다. 할 일도 없으니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하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하는 것처럼 아무런 진정한 몫은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기억하며, 말씀에 따라 순종하여 사랑으로 행동할 때에만
제자들은 <말씀 순종에 의한 고기> 새로운 가치의 진정한 몫, 사랑의 몫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죄악성을 버리게 합니다.죄악성은 사랑을 불신케 하지만 사랑은 죄악성을 없앨 수 있는 본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껏 묵상은 틀리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이 자신들의 고기잡는 일인 것입니다. 육적인 감흥에 빠지는게 아니라 영적인 부르심에 힘써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 사랑의 복음을 백색순교의 정신으로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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