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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의 손과 평화의 발과 자비의 옆구리 [예수님의 숨]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06 조회수421 추천수1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요한 20, 19 -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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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끔 교우들끼리 서로 만나면 "찬미 예수님"하고 인사를 건냅니다. 예수님께서는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시며 부활하신 만남의 인사로 건내십니다. 예수님의 평화가 모든 신자들과 함께 하기를 염원하신다는 사랑의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에 [갑자기 그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다.“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 13 - 14)] 라며 사랑의 마음이 울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에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남에서, [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요한 14, 27) //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 33) ] 하셨던 그 사랑의 마음입니다.

평화의 실재는 사랑의 마음에서 이루어져 간다고 할 것입니다. 사랑의 탄생에서도 평화, 사랑의 수난에서도 평화, 사랑의 부활에서도 평화인 것입니다. 사랑의 마음과 평화의 마음은 예수님을 따르는 마음이며 예수님께서 보내 주시는 성령을 따르는 마음입니다.

[무릇 육을 따르는 자들은 육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성령을 따르는 이들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육 안에 있는 자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로마 8, 6 - 8)] 하셨듯이, 사랑의 행동으로 죄악의 고통과 죽음에서 벗어나 해방되는 그리스도의 평화입니다.

육적인 감흥에 맛들여져 가는 행실의 그 결과는 죄악에 의한 고통과 죽음이지만, 성령에 따라가는 행실의 결과는 사랑에 의한 평화와 생명인 것입니다. 육에 속한 공동체에는 죄악의 고통과 죽음이 있고 영에 속한 공동체는 사랑의 평화와 생명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영'에 깨어있지 못하면 '육'에 죽어가는 몸입니다.자기 몸이 또한 공동체 몸이 육적인 몸이면 죽음으로 나아가지만, 영적인 몸은 생명으로 향해 나아가게 합니다. 그러므로 '영이 깨어 있어야 육을 다스릴 수 있게' 되며 마음이 무디지 않게 하여 악은 악으로 볼 수 있고 죄는 죄로 여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평화와 생명으로 우리는 기뻐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예수님의 숨은 '사랑의 숨'입니다. '사랑의 불꽃'이면서도 동시에 '성령의 불꽃'입니다. 지난 번 복음 말씀의 '숯불'은 바로 <이 불꽃>인 것입니다. 서서히 사랑의 마음이 지피져서,바람이 불면 더욱 거세게 타오르는 성령의 마음으로 제자들은 영적으로 충만해 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 충만한 영적인 마음은 육적인 감흥에 맛들여진 것들에 대한 싸움이며, 영적인 선하고 좋은 일에 대한 싸움은 될 수 없을 것입니다.우리는 모두가 연약합니다.그러한즉 육적인 싸움에서 지친 형제들을 보게 되면 서로를 친밀하게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이같은 평화 안에서 사랑의 불꽃은 타오르며, 죄악과 고통과 죽음을 모두 태워버리게 됩니다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하여 다른 제자들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영적인 눈을 뜨고  토마스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토마스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여전히 육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결국 토마스는 예수님의 사랑을 확인합니다. 토마스가 예수님 안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예수님의 사랑은 못박히신 사랑의 손입니다. 그리고 못박히신 평화의 발입니다. 그리고 창에 찔리신 자비의 옆구리입니다.토마스는 누구보다도 크게 울음을 터뜨렸을 것입니다

따라서 연약한 형제들이 영적인 메마름에서도 힘들어 할 때는, 예수님 처럼 자신의 못박힌 상처입은 손과 발과 옆구리를 그 형제에게 보여주면서 서로가 '예수님의 평화'로 격려받기를 예수님께서는 원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공동체 안에 퍼져 뿌리내려진 '죄스런 배경의 본질(죄악성)'까지도 모두 태워버릴 수 있는 사랑의 불꽃, 예수님의 숨인 것입니다.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십니다 지금 시대도 우리는 예수님을 육적으로는 볼 수 있는게 아닙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깨어있다면, 버려진 이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 없는 한 사람에게서 예수님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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