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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리아 막달레나가 두 번 돌아섬의 의미는?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07 조회수527 추천수2 반대(0) 신고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마리아 막달레나 무엇으로부터 두 번 돌아서야 했나?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마리아 막달레나가 두 번 돌아섰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으로부터 돌아섬일까? 곰곰이 묵상해 보아야 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요한 20,14)

 

첫 번째 돌아섬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께서 서 계셨으나 예수님이신 줄

몰랐다고 하십니다. 왜 그랬을까?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천사와 예수님께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처음에 공통적으로 물으신 물음이

있습니다.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랬구나!

마리아 막달레나가 왜 울고 있었느냐를 먼저 봤어야 했구나!

 

마리아 막달레나의 고백을 들어보면 그녀는 예수님의 몸을 끊임없이 찾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자신이 찾고 있는 예수님의 몸이 찾아지지 않으니까

울고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자 제게 떠오른 말씀이 있습니다.

"백성의 큰 무리도 예수님을 따라갔다. 그 가운데에는 예수님 때문에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 때문에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 때문에 울어라'"

(루카 23,27-28)

 

그렇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 때문에 울고 있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천사가 "여인아, 왜 우느냐?"고 물으셨을 때에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섰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라고 말씀드리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면서 여인들에게 하셨던 말씀이 떠 올랐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 때문에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 때문에 울어라."

이 말씀을 기억하고 돌아섰다는 말씀은 아닐런지요?

 

그렇게 돌아섰을 때에  예수님께서 마리아 앞에 서 계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마리아 막달레나는 그분이 예수님이신줄 몰랐다고 합니다. "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요한 20,15)

 

첫 번째 돌아섬에서 예수님의 말씀의 기억은 되살아 났으나 아직 예수님을 알아뵙지

못하는 것을 볼 때에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는 못한 상황은 아닐까 합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다시 묻습니다. "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예수님께서는 왜 우는냐고 물으시고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천사가 "여인아, 왜 우느냐?"라고 물으셨을 때에 예수님께서

십자자를 지고 가시면서 여인들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했다면 이제 구체적으로

누구를 찾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묻고 계신 것입니다.

과연 누구를 찾아야 하는 것일까?



이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두 번째로 돌아서서 "라뿌니!"라고 고백하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뵈옵고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두 번째로 돌아섬을 통해 이제사 예수님께서 십자자를 지고

가시면서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하신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고 느낍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 때문에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 때문에 울어라'"

 

이 말씀의 참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고 느껴집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 때문에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 때문에 울어라"

예수님의 이 말씀 안에서 나 자신과 우리 자녀들 때문에 울어야 하는 그것을

찾아야 한다는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결국 부활은 이것의 답을 얻어야

진정한 부활을 맞았다고 할 수 있는가 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많은 경우 예수님 때문에 웁니다.

그렇게 불쌍하게 돌아가시는 것을 가슴아파하며 울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진정 너 자신과 너희 자녀들 때문에 울라고 하십니다.

나와 우리의 자녀들의 무엇 때문에 울어야 하는지는 각자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일 것입니다.

 

제가 여기까지 묵상을 하면서 느낀 것은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깨닫도록 이끄시는 분이신가?

당신께서 답을 직접 가르쳐 주신는 분이 아니시고 당신께서 그동안 해 주신 말씀들을

기억해 내어 스스로 깨닫도록 이끄시는 방식으로 제자 교육을 하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교육법은 하느님의 교육법이십니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시작하신

교육법이시고 합니다.

 

 "주 하느님께서 사람을 부르시며, '너 어디에 있느냐?"라고 물으셨고

카인에게도 "주님께서 카인에게 물으셨다.'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교육하고 계심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고 살아야 하는데 ...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주님께서 우리보다 먼저 우리에게 물어 오십니다.

주님은 이런 분이셨습니다.

 

세례 후 오늘까지 저를 만나 주신 주님께서도 이 방법으로 저를 만나 주셨습니다.

주님께 찬미와 영광 드립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아멘. 알렐루야!

 

다음 묵상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다가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지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고 합니다.

 

이 두 천사들과 이야기를 마친 마리아가 뒤로 돌아서자 예수님이 서 계신 것을

보았지만 예수님인 줄은 몰랐다고 합니다.  이 부분에서의 돌아섬을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처음에 우리들이 생각하고 있는 방향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쩐지 뭔가 방향이 맞지 않았습니다. 천사들과 이야기를 하다 뒤로 돌아서서

예수님이 서 계신 것을 보고 일단 서로 말을 주고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 다시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자 다시 돌아섰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또 예수님과 대화를 합니다. 이렇게 돌아섬을 생각해 보면 결국 마지막에는

예수님과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인데 어찌 등을 돌리고 대화를 할 수 있는지요?

그렇다면 이런 돌아섬은 분명 아니고 성경적 돌아섬의 의미는 뭘까? 하고 묵상해야

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다가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들여다보고

만난 천사들과 대화를 하고 돌아섰다는 의미는 천사들이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물으시는 물음에 대한 응답인 것입니다. 이  질문을 받는 순간 마리아에게 뭔가

확 다가온 느낌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건 저의 체험으로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마리아가 찾고자 하고 그토록 애타게 모시고자 하는 예수님은 무덤 안에서는

만날 수 없다는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마리아가 무덤에 꽃혔던 시선을 무덤 밖으로

돌렸기 때문입니다. 이 의미가 위에서 말씀드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면서

여인들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해 내는 여정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무덤을 향해 있던 그녀가 돌아서자 예수님께서 거기에 서 계셨는데

그녀는 그분이 정원지기인 줄로 알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알고 있는 그분께 자신의

진심을 전합니다. 이것이 아마 신앙고백일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이제 당신께서 살아생전에 부르셨던 그대로

"마리아야!" 하고 불러 주시자 이 때에 마리아는 또 돌아서서 "라뿌니!" 라고

고백을 합니다.

 

이제 완전한  응답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르시자 돌아서는 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바로 돌아섰습니다.

 

그런데 나는 어떠한가?

기도하자고 하는 음성을 수없이 많이 듣습니다.

미사 드리러 가자는 음성도 수없이 많이 듣습니다.

내 삶 안에서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그 음성을 듣는 즉시 돌아선 기억보다 내 멋대로 했던 기억이 더

많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은 마리아 막달레나를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부르시면 그 음성을 듣는 즉시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즉시

돌아서서 주님의 말씀대로 따라 사는 것이라고 오늘 저에게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아,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정녕 마리아 막달레나가 걸어간 그 길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방식대로 살아갈 것인가?

이 선택을 하라고 하십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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