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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요한 20,17)어떤 의미인가?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08 조회수358 추천수1 반대(0) 신고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요한 20,17) 어떤 의미인가?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이며 너희의

아버지이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요한 20,17-18)

 

이 말씀을 묵상하며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미사 때의 한 장면입니다.

신부님께서 + 신앙의 신비여! 라고 하시면 우리들은,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

 

먼저 예수님께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왜 당신을 더 이상 붙들지 말라고 하시는지

저는 그 의미가 정말 궁금해졌습니다. 왜 더 이상 붙들지 말아야 하는지?

 

죽은 줄로 알았던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니 그토록 예수님을 찾아 헤메던 마리아

막달레나 입장에서는 붙들고 싶은 것이 당연한 것일텐데 도대체 무슨 의미로 그러시는

걸까? 너무 냉정하신 것 아닌가? 아주 깊은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뭘까?

 

그 의미는 예수님께서 이어서 하시는 말씀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이며 너희의 아버지이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요한 20,17)

 

이 말씀을 이해하는 순간 이러한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동안 세례 이후 지금까지

부활절을 몇 번이나 맞이하는 동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가?

그저 부활절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에 기쁘고 즐겁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머물고 ... 여기까지의 여정이 끝이 아니었던가?

이러한 내 모습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잡고만 있는 모습이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이렇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기도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가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이렇습니다.

주님, 00을 용서하고 싶습니다. 주님 도와 주십시오.

그러나  용서하려고 그닥 애를 많이 쓰지도 않았습니다.

주님, 아프리카에서 어린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 했으나 정작 먹을 것을 그닥 많이 주지도 않았습니다.

... 이러한 모습으로 사는 것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붙잡고만 사는 모습이라고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당신을 만났으니 더 이상 붙잡지 말고

당신의 형제들에게가서 전하라 하십니다. 무엇을 전하라고 하시는가?

"나는 내 아버지이시며 너희의 아버지이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요한 20,17)

 

이 말씀이 지금은 그리 크게 와 닿지 않지만 이 말씀을 하시고 계신 당시의

시대적 배경 안에서는 아주 중요하고 요한 복음서의 결론이라고 해도 될만한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한 죄목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신성모독 죄였습니다. 예수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하셔서

신성모독 죄로 십자가형에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셔서 당신의 아버지이시며 우리의 아버지이신 분, 당신의 하느님

이시며 우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고 말씀하시며 이 사실을 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실로 당시의 사람들이 감당하기에 힘들고 버거운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복음 말씀을 묵상할 때에 현재 우리들이 알아듣고 있는 현실에

맞추어 묵상하는 것도 좋지만 당시의 시대적 배경 안에서 묵상해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함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 말씀은 당신이 누구이신지 또한 우리는 누구인지 그 신원에 대해 확실하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복음의 기쁜 소식이 바로 이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전하는 것이 어찌 기쁜 소식이 될 수 있겠는지요?

 

이 말씀을 그대로 전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바로 자신들의 스승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가야 하는 것은 뻔한 일입니다.

곧 예수님과 똑같이 십자가형에 죽어야 하는 선포가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이시라는 사실도 당시 사람들이 받아 들이기 

힘든 말씀인데 거기서 더 나아가 예수님과 우리의 사이가 어떠하다고 말씀해 

주시는가?  한 아버지 아래 한 자녀라고 선포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고 선포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 하느님이 

바로 예수님의 하느님이시고 우리의 하느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실로 

당시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선포입니다. 곧 이 말을 전하면 어떻게 되는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뿐인데 이 말씀을 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어떻게 했는가?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을 전하였다고 

합니다. 곧 순교할 각오를 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듯이 신약 성경에서 가장 먼저 순교할 결심을 한 사람을 꼽으라면,

그가 바로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먼저  목격한 마리아 막달레나 그녀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먼저 목격한 증인이라는 것보다 더 중요한 점이 바로 오늘

제가 묵상하며 만난 가장 먼저 순교를 각오한 분이시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 나는 어떤 각오로 예수님을 전하고 있는가?

이러저러한 핑게를 대고 그저 부활하신 예수님을 붙잡고만 살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제 마리아 막달레나를 통해 예수님을 전하는 사명은 그런 것이 아니라 목숨을

바쳐 전해야 한다고 알려 주십니다.

 

곧 이렇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0)

 

이렇게 하느님을 사랑함으로써만이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다."고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토록 부족한 저에게 당신의 마음을 보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시고 영광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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