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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의 끝으로는 달아나고 육의 끝으로는 달려들다 [생명과 죽음]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08 조회수411 추천수0 반대(0) 신고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3, 7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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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연유로 해서 이같은 가르침이 나오게 되었을까요. 이를 먼저 살펴보아야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고 봅니다.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지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우선 결론은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은 영적인 것들에 대하여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좋아하는 것들은 육적인 것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입니다. 영적인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그래서관심을 가지고 싶지 않는 탓에 있습니다. 육적인 감흥에 즐겨 맛들여져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물질인 흙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육(물질)적인 것과는 친숙합니다. 하지만 영적인 것들과는 거리를 두며 또한 일부러 굳이 피하려고 애씁니다. 그리하여 사람은 영적인 것들과는 친숙해 지지 못하고 점점 더 영적인 것으로부터 멀어져 가기만 합니다.

[ 하느님은 영이십니다(요한 4, 24 참조)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하느님(영)에게서 멀어지려고 하는 본성은 죄의 결과입니다. [영은 생명을 줍니다(요한 6, 6 참조)]  그리고 '육의 마지막'은 죽음입니다. 이를 알고 있으면서도 영적인 것들은 회피하고 육적인 것들에게로 달려가기만 하는 것입니다. 

영에서 회피한다는 것은, 영의 생명을 회피한다는 것이며 육으로 달려간다는 것은, 육의 죽음으로 달려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육의 끝은 무엇입니까.육의 끝은 죽음입니다. 영의 끝은 무엇입니까. 영의 끝은 생명이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렇듯 육에서 태어난 사람은 죽음으로 가지만, 영에서 태어난 사람은 생명으로 갑니다. 사람은 죽음이 아닌 생명으로 가고자 한다면 영에서 다시 새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녕 육에서 태어난 것과 영에서 태어난 것은 다른가 하고 물을 수가 있습니다

[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요한 3, 6 참조) ] 하시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의 끝인 죽음이고 영에서 태어난 영의 끝은 생명인 것입니다.그렇게 때문에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예수님께서는 '진실로'를 두 번씩이나 반복하시며 '생명'에 대하여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담(육)에게서 태어났습니다.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영)에게서 다시 새로 태어나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기 위해서 입니다.아담은 죽는 죽음이지만 하느님은 죽지 않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그런데도 사람은 영적인 것들에는 피해 달아나고 육적인 것들에는 붙어 달려듭니다. 

사람이 영(하느님)을 피하려고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태초부터 인간 자신의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하느님)을 가까이 하여 영(하느님)과 친숙해 지고자 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집중할 필요가 마땅히 있을 것입니다. 

니코데모라는 사람이 예수님께, [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스승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면, 당신께서 일으키시는 그러한 표징들을 아무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하자,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하십니다

예수님께 "하느님에게서 오신" 이심을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자신은 그렇게 인정을 한다는 니코데모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니코데모와 같이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예수님 당신께서 일으키시는 표징 곧 하느님의 나라를 인정할 수 없다(볼 수 없다)고 화답해 주셨습니다.  

니코데모가 갑자기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에서 의문을 가지고 예수님께 반문합니다. [“이미 늙은 사람이 어떻게 또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배 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은 다시 새로나야 한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침으로 분명하게 선포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 하십니다. 

여기에 니코데모와의 대화에서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것과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서로 다름을 지적해 주고 계십니다. 인정하는 사람과 들어가는 사람은 다릅니다.  육에서 태어난 '육적인 사람(몸)'은 하느님 나라를 인정한다고 하여도 하느님 나라에는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육의 끝은 죽음이고, 영의 끝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으로 달려가는 육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요한 6, 63 참조) 하지만 영은 생명을 줍니다. 하느님께서만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태초에 인간(육)은 "결코 죽지 않는다"는 유혹에 빠졌다는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결코 죽지 않는 것이 아니라, 결코 죽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위, 영)으로부터 다시 새로 태어나야 죽음에서 생명으로 (하느님 나라로) 건너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생명을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보내주신다는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의원 니코데모의 눈(마음)에는 그 모든 말씀이 아직 가리워져 있습니다.성령이신[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하겠습니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육에서 태어난 사람은 영(성령)에서 태어난 사람을 알지 못합니다. 

육적인 것들에는 달려들고 영적인 것들에는 달아나기 때문에 영적인 사람에 대하여 알지 못합니다. 
바람이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르듯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은데 그래서 육적인 사람은, 영에서 태어난 영적인 사람을 알지 못합니다. 

육의 끝인 죽음으로 달려드는 사람은 영의 끝인 생명으로 달아납니다. 육적인 것들을 좋아하고, 영적인 것들은 회피하기 때문입니다.내가 세상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하십니다.  육적인 것들은 좋아서 달려들고 영적인 것들은 피해 달아난다는 세상 일을 말하여도 믿지 않는 육적인 사람들입니다.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육적인 것들에 달려들지 말고 영적인 것들을 사모하여야 할 것입니다. 육적인 감흥에 맛들여져서 영적인 것들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영적인 나태를 경계하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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