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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든 덕행들의 어머니인 분별력 -맡기기, 놔두기, 떠나기- 2013.4.12 부활 제2주간 금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12 조회수341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3.4.12 부활 제2주간 금요일 사도5,34-42 요한6,1-15

 

 

 


모든 덕행들의 어머니인 분별력

 

-맡기기, 놔두기, 떠나기-

 

 


한반도의 상황이 엄중합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제일입니다.

상생(win-win)의 평화가 최고의 정책이자 분별의 지혜입니다.

전쟁이 나면 남북은 함께 공멸입니다.
몇 가지 예들이 잊혀 지지 않습니다.

 

- “북미대화?? 분쟁지역 하나쯤 있어야 좋은 것 아닌가?
      차베스마저 가버린 판에…-(경향4.11;3면).

‘미, 군산복합체’를 풍자한 거인을 배경으로 한 오
바마 대통령의 모습이 담긴 그림마당입니다.

 

-‘흔히 미국이 한반도에서 원하는 것은 전쟁도 아니고 평화도 아니다’라고 한다.
  안타깝게도 전쟁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정전상태’는
  미국 군산복합체 및 이와 결탁한 세력에게는 ‘블루오션’이다.
  ‘핵의 위력’에 의지해 정전체제를 무력화하려는 북한은 이들에게는
  꽃놀이패가 되고 평화체제의 비전을 상실한 한국은
  현금자동지급기(ATM)이 되고 있는 셈이다.-(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아주 의미심장한 통찰입니다.
삼 남북이 평화공존을 위한 진정성 담긴 대화가 절박합니다.

중국의 판단이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있습니다.

 

-북한은 오판하지 말고, 미-일은 불난 집 부채질하지 마라.
  한국은 초점을 놓치지 말라.
  미국이 핵우산이라는 안보를 약속하고 있지만
  한반도의 전쟁이나 어떤 형식의 충돌이 일어나면 
  북한과 38선을 사이에 둔 한국은 최대의 피해국이 될 것이다.

한국의 새 정부는 북한과 미국의 장단에 춤을 추지 말고
긴장을 완화하는 역할에 나서야 한다.-(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10일)

 

위기는 기회입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지도자의 분별력과 용단이 절실한
작금의 엄중한 상황입니다.

지도자의 덕목 중 으뜸이 분별력입니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하듯
지도자의 분별력이 빈약하면 그 공동체의 손실이 막대합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가말리엘과 복음의 예수님은 말 그대로 분별력의 대가입니다.

 

‘온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율법교사 가말리엘’입니다.
과연 온 국민에게 존경을 받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라고 지혜를 제공할 수 있는 어른이 있는가 묻게 됩니다.

종파를 초월해 존경 받던 김수환 추기경, 김대중 대통령, 법정 스님 등
많은 어른들이 이미 타계했기 때문입니다.

연극인 손 숙씨의 인터뷰 기사 중 마지막 결론부분입니다.

 

-양심이 실종된 사회, 도덕이 치매 수준인 사회에서 한결같은 자세로
  <나의 황홀한 실종기>를 준비하는 손 숙씨는 참 아름답게 보인다.

  나이 먹기는 쉬워도 어른이 되기는 힘들고,
  아름다운 어른이 되기는 더더욱 어려운데 말이다.-

 

진정 아름다운 어른은 분별력을 지닌 어른입니다.
경천애인(敬天愛人),
하느님을 경외하고 사람을 사랑할 때 선사되는 분별력의 은총입니다.

바로 가말리엘과 예수님의 분별력이 이를 입증합니다.
경천애인으로 자기를 비워가면서 저절로
‘맡기기’, ‘놔두기’, ‘떠나기’의 삶의 패턴이 형성됩니다.

떠들썩한 분위기를 분별력으로 압도하며 해결사로 나선 가말리엘입니다.
테우다스와 갈릴래아 사람 유다의 예를 들면서
사도들을 건드리지 말고 놔두라 말하는 가말리엘입니다.

 

“저 사람들 일에 관여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저들의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입니다.
  그
러나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그대로 참고할 만한 지혜로운 통찰 가득 담긴 말입니다.
때로 그냥 내버려 두는 게, 봐도 못 본체 알아도 모르는 체 함이 지혜입니다.
때로 하느님께 맡기고 기다리며 놔두고 지켜보는 것이 지혜입니다.

무책임한 방치의 무관심이 아니라 거룩한 무관심, 사랑의 무관심입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께 맡기고 놔두길 권하는 가말리엘입니다.

며칠 전 읽은
‘악동(惡童)’이니까 ‘악동(樂童)’이다’라는 칼럼 중 한 대목이 생각납니다.

 

-한 가지 즐거움으로 버틴다.
  일요일 오후 4시55분 오디션 프로그램 <K팝스타2>에 채널 고정이다. 
  다른 별에서 온 아이들인가,   
  자작곡 가사는 기발하고 멜로디는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다.

  결국은 방목(放牧)이다.
  이 아이들은 그냥 놔두면 된다.
 
남매는 몽골에서 왔다.
  홈스쿨링으로 공부해왔다고 한다.-

 

새삼 자녀 교육에도 사랑의 무관심, 그냥 놔두는 게 지혜임을 깨닫습니다.

 

얼마 전의 깨달음도 잊지 못합니다.
고백성사를 원하는 분이 있다는 수사님의 전갈에 시간이 촉박해
“안 돼.”하고 거절한 일입니다.

‘안 돼’라는 몰인정한 말에 제가 상처 받았습니다.
가능한 한 해선 안 될 말이 ‘안 돼’이고
가능한 한 자주 써야 할 말이 ‘그냥 놔둬’ ‘괜찮아’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의 절망적인 절박한 상황 중에도 예수님의 모습이 참 낙관적입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놔두니
아이는 안드레아를 통해 빵 다섯 개와 2개의 물고기를 제공합니다.

아이의 봉헌에 감동하신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간절히 기도하니 하느님의 감동에 이어 군중들의 감동이었고,
감동한 군중들이 가진 음식을 다 내놓고 나눠 모두 배불리 먹었으니
바로 이게 기적의 진상입니다.
복음의 마지막 대목에서 예수님의 분별력이 더 한층 빛납니다.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군중들의 인기에 편승하지 않고 군중들은 하느님께 맡기고,
놔둔 채 홀연히 떠나 하느님 안 제자리인 산으로 향하는 예수님의 분별력입니다.
노자의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
공을 이루었으면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는 말씀이 그대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집착 없이 초연히 떠나시는 예수님의 아름다운 모습이 남아있는 이들에게는 큰 깨달음이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경천애인의 마음으로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에게 분별력의 덕을 선물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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