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마지막 날에 우리를 살릴 그분의 뜻을/신앙의 해[147]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17 조회수308 추천수1 반대(0) 신고


                                                                          그림 : 한티 순교자 성지

오늘날 컴퓨터의 대부 ‘빌 게이츠’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에 오른 적이 있으며,
세계 갑부 순위에서도 늘 1위 아니면 2위를 하였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장사를 생각했다. 그래도 그의 부모는 간섭하지 않았단다.

마침내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1년을 마치고 자퇴한다.
변호사였던 부친은 그의 판단을 전적으로 존중해 주었다. “그래, 네 생각대로 해 보렴.”
이것이 부친의 말씀이었다. 좋은 아버지이다.
그런 아버지였기에 ‘빌 게이츠’가 나타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아버지가 계신다. 하늘에 계시는 주님이시다.
‘어떻든 나에게 오기만 하라.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라며
기쁨을 주시고 희망을 주시겠단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우리는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35-40)
 

토마스 성인의 성체 찬미가에는
‘사랑 깊은 펠리칸(Pelican), 주 예수님!’이라는 구절이 있다.
펠리칸은 길고 넓은 부리를 지닌 물새로 긴 부리 밑 아래턱의 신축성 있는
볼주머니에 먹이를 저장했다가 입을 벌려 새끼들이 꺼내도록 한다.
이 새에 대한 전설이 있는데, 먹을 것이 없어 죽어 가는 새끼들을 위하여
어미가 부리로 자기 가슴을 쪼아 피를 내어 먹여 살렸다는 것이다.
이 자기희생적인 모습이 성체의 의미를 잘 드러내기 때문에 성체 찬미가에
‘사랑 깊은 펠리칸’이라고 표현된 것이라나.

신(神)의 노여움을 풀고자 인간을 제물로 바치고,
노여워하던 신이 인간을 해치우는 종교 이야기는 참 많다.
그러나 오히려 인간에게 먹히는 신의 이야기는 오직 그리스도교뿐이다.
인간이 신을 위하여 음식을 차려 놓고 제사를 지내는 종교는 많다.
그러나 신이 인간을 위하여 손수 제물이 되어
‘와서 드시오.’라고 초대하는 종교는 그리스도교뿐일 게다.

왜 그리스도교는 이렇게 신이 몸소 먹히는 존재가 되고,
몸소 먹을 것을 차려 주는 것일까? 그 대답은 너무도 간단하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영원히 죽기를
바라지 않으시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이신 당신 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고,
우리의 양식으로 내어 주신 것이다.
 

육체는 외부 공격을 받으면 자동으로 침입자를 퇴치한다.
‘면역 체계’인 선천적인 ‘방어 시스템’이다. 그러기에 장기를 이식받으면
‘면역 억제제’를 대거 투여한단다. 면역 체계의 무력화를 위해서 일게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식된 장기를 이물질로 착각해 몸에 손상을 입히기 때문이리라.
우리 몸의 면역 체계는 그만큼 본능적이다. 영적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에게는 하느님께 돌아가고 싶어 하는 ‘자동 장치’가 있다.
신앙이라는 ‘면역 체계’이리라.
자꾸만 허무해지고, ‘이유 없는 불안’이 떠나지 않는 것은
주님을 ‘믿고 맡기는 기쁨’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일 게다.
 

신앙의 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맡겨진 사람은 잃지 않겠다고 하신다.
모든 사람이 구원되기를 바라신다는 말씀이다.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란다.
우리에게도 맡겨진 사람이 있다. 운명적으로 맺어진 이웃이다.
이 이웃을 말 만이 아닌 진정으로 몸으로도 사랑하는지?
사랑이신 하느님은 그걸 원하리라.
우리는 믿음의 생활을 하는 한 그분의 뜻인 당신 사랑과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그 이웃을 사랑하며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겠다.
마지막 날에
우리를 하나도 잃지 않고 다시 살릴 그분의 그 깊은 사랑의 뜻을 생각하면서.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