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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17 조회수782 추천수9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4월 17일 부활 제3주간 수요일



I came down from heaven not to do my own will
but the will of the one who sent me.
(Jn.6,38)



제1독서 사도 8,1ㄴ-8
복음 요한 6,35-40

어린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종종 던지지요?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저 역시 이런 질문을 어렸을 때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도 계속해서 변했습니다. 대통령, 과학자, 경찰관, 소방관, 운동선수, 신부님……. 그런데 시간이 흘러서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저의 꿈은 좀 더 구체적으로 변했지요.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고, 과학을 싫어하는 제가 과학자가 될 수도 없었습니다. 겁이 많은 제가 경찰관이나 소방관 역시 불가능한 꿈이었지요. 또한 운동선수가 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잠시 탁구를 했었지만 너무나 힘들어서 결국 포기하고 말았지요. 마지막으로 신부님. 이성에 대해 관심이 많았을 때, 결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자연스럽게 꿈을 접게 만들었습니다. 더군다나 죄 많은 제가 거룩한 사제가 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갖게 된 꿈은 ‘선생님’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되어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같은 자식들을 낳아서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저의 구체적인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그렇게 어렵지 않게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으니까요.

이 사실에 대해 저는 구체적인 계획도 시간이 나면 세우곤 했었습니다. 몇 살에 결혼하고, 몇 명의 아이를 낳을지(지금은 기억나지도 않지만 내 미래의 아이 이름도 미리 지어놓기도 했습니다), 또한 집은 어떤 형태로 지을까도 계획했지요. 그런데 지금 현재 저는 분명히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선생님’과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는 삶이 아니라, 당연하게 포기했었던 ‘신부님’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저의 적중률은 이렇게 전혀 맞지 않았습니다. 적중률 0%라는 어마어마한 확률을 자랑하네요. 잘 생각해보면 우리의 미래에 대한 적중률은 대부분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미래를 잘 맞추지 못한다고 좌절하고 절망에 빠져야 할까요? 어쩌면 오히려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빤히 보이는 나의 미래가 행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빤히 보이는 미래를 주시지 않는 하느님이십니다. 미래를 빤히 볼 수 있다면 지금을 열심히 살까요? 그래서 더욱 더 힘차게 지금이라는 현재를 살라고 미래를 보여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이 사실만을 봐도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100% 적중률을 이루는 말씀을 해주십니다.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적중률 0%의 확률을 가지고 자신의 미래를 지레짐작하지 마십시오. 대신 100% 적중률을 자랑하는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이렇게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만이 주님의 적중률에 동참하게 되어 영원한 생명이라는 가장 큰 선물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듣기보다 더 큰 위로는 없다(안광복).


벚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드디어 봄인가 봅니다.



여행 후유증

성지순례를 다녀온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토요일에 돌아왔으니 겨우 4일 지났을 뿐입니다. 그런데 또 어딘가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지순례나 여행을 갔을 때에는 집이 그립고, 또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니 다시 어디든 훌쩍 떠나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꽤 많은 시간을 소비해서 여행 사이트를 둘러보면서 사이버 여행을 떠났네요.

제 안에 방랑벽이 있어서일까요? 하지만 지금의 제 모습을 이러한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곳에 있을 때에는 그곳이 그립고, 그곳에 있을 때에는 이곳이 그립다.’

그리워할 수 있는 곳, 바로 내가 원하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있는 이곳 역시 내가 그리워하며 원하는 곳이라는 것이지요. 결국 그립고 좋은 곳을 지향하고 있지만, 이미 그러한 곳에 살고 있는 나는 아닐까요?

가장 좋은 곳에 살고 있는 나를 잊고 있었기에 지금의 자리를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남의 자리만을 탐내고 욕심내기에 내 자리를 떠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그리운 곳을 향해 어디든 훌쩍 떠나고 싶습니까? 그런데 지금 내 자리가 바로 그리워할 곳임을 잊지 마셨으면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래도 또 떠나고 싶기는 하네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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