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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여려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19 조회수754 추천수1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4월 19일 부활 제3주간 금요일



I have life because of the Father,
so also the one who feeds on me
will have life because of me.
(Jn.6,57)


제1독서 사도 9,1-20
복음 요한 6,52-59

어떤 분이 건강을 위해서 보약을 먹기 시작했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보약을 먹고는 더욱 건강이 안 좋아지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몸에 좋다는 보약이라는 말에 그리고 언젠가는 ‘좋아지겠지’ 라는 생각을 갖고 꾸준히 보약을 먹었답니다. 결국 이 사람은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진찰을 해보니 보약이 체질에 맞지 않아 간이 녹아버렸답니다. 결국 몸을 좋게 할 것이라는 보약을 먹고 오히려 건강이 더 나빠지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강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떤 측면에서 보면 약하기만 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병균 하나로 이 세상의 삶을 마감할 수도 있고, 또 아무리 강인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말 한 마디에 마음이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넓은 영토를 소유했으며 대단한 지도력을 보였던 프랑스의 나폴레옹 황제도 집에 돌아오면 고독과 외로움에 아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었다고 하지요. 하물며 보통 사람들은 어떻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이처럼 연약하고 부족한 인간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철저하게 순명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물 중에서 가장 하느님께 순명하지 않는 존재가 누구일까요? 바로 사람입니다.

이제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앞에 순명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 순명을 위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들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들은 것을 행동해야 합니다. 듣고 행동하는 것, 이 모습이 하느님 앞에 순명하는 사람의 바른 모습입니다. 만약 듣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당연히 행동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어떤 우리들을 원하실까요? 당신께 순명하는 사람 아니면 당신의 뜻을 항상 외면하는 사람?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듣고 몸으로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사람만이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사람만이 영원히 살 것이라고 오늘 복음을 통해 힘주어 말씀하시지요. 그러나 우리들은 이 주님의 말씀을 따르기보다는, 옛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빵만을 소유하고 먹으려 합니다. 즉,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에만 집착하다보니 영원히 살 수 있는 주님의 살과 피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과연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을까요? 우리의 생활 전체에서 울려 퍼지는 주님의 말씀을 혹시 이쪽 귀로 듣고 저쪽 귀로 흘리는 어리석은 모습으로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제 우리의 모습을 바꾸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명하면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데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때입니다. 이러한 사람만이 이 세상의 삶 안에서 좌절하지 않고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가니까요.

 
 
우리는 무엇이 안 되는지 경험함으로서 무엇이 되는지 발견한다(사무엘 스마일스).


어젯밤, 교구청 담벼락에 피어있는 개나리에 홀딱 반했지요.



고통을 담는 그릇

제자의 끊임없는 불평에 신물이 난 스승이 제자에게 소금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제자가 소금을 갖고 오자, 그는 우울한 얼굴의 제자에게 소금 한 줌을 물에 타서 마시라고 했지요.

“맛이 어떠냐?”

“죽을 맛입니다.”

스승은 낄낄거리면서 제자에게 다시 소금 한 줌을 근처 호수에 집어넣으라고 했습니다. 제자가 소금 한 줌을 호수에 휘휘 뿌리자 스승이 말했지요.

“이제 호수의 물을 마셔 보거라.”

제자가 턱 밑으로 물을 뚝뚝 흘리면서 호수 물을 떠 마시자 스승이 물었습니다.

“맛이 어떤고?”

“시원합니다.”

“소금 맛은 나느냐?”

“안 납니다.”

스승은 제자의 두 손을 맞잡으며 말했습니다.

“삶의 고통은 순수한 소금과 같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삶에서 경험하는 고통의 양은 똑같아. 정확히 똑같지.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고통의 정도는 고통을 담는 그릇에 따라 달라져. 고통이 느껴질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넓은 마음으로 상황을 인식하는 것뿐이야. 유리잔 말고 호수가 되어야 해.”

우리의 마음은 어느 정도의 크기일까요? 유리잔일까요? 호수일까요? 고통에 대한 나의 모습에서 내 마음의 크기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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