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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성소는 나의 존재이유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20 조회수557 추천수10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부활 제4주일 (성소주일) 
 

<나는 내 양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요한복음: 10,27-30






<성소는 나의 존재이유>     

요즘 상영하는 영화중에 톰 크루즈가 출연하는 ‘오블리비언’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오블리비언은 ‘(기억의) 망각’이란 뜻입니다.

지금으로부터 60년 뒤인 2077년, 지구엔 외계인의 침공이 있었고 지구인들이 외계인과의 전쟁에서 승리는 하였지만 지구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게 망가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살아남은 인류는 토성의 두 번째 위성인 ‘타이탄’에 있거나 중간 행성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버려질 지구에서는 바다에너지를 흡수하여 타이탄으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는데 남겨진 외계 약탈자들이 끊임없이 방해하여 그 약탈자들을 저지할 인원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 중의 한 명이 잭 하퍼(톰 크루즈)이고 도론이라는 살상 정찰비행 로봇을 수리하는 일을 하고, 그의 짝인 바카라고 하는 여성이 중간 행성과의 통신장교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런데 약탈자들에게 잡혀 자신들의 귀중한 정보를 잃게 될 것을 걱정한 지구인들은 이들의 기억력을 다 지워버렸습니다. 그래서 언제 태어나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기억하지 못하고 그저 일만 하는 것입니다.

잭 하퍼는 기억이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았는지 한 여자에 대한 꿈을 자주 꾸었는데 실제로 그 여자가 나타나게 됩니다. 추락한 우주선 캡슐에 있었는데 함께 있던 사람들은 드론에 의해 모두 죽고, 그 여자만 하퍼가 간신히 구해냅니다. 자신도 인간인데 자신은 왜 인간을 죽이는 자를 위해 일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그렇다면 어쩌면 자신도 이런 소모품처럼 사용되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 여자는 하퍼의 정체성을 되찾아줍니다. 기억이 지워지기 전 하퍼가 구한 그 여자는 자신의 아내였던 것입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자신이 약탈자라고 생각하며 싸워왔던 자들을 만나게 되고 정체를 직접 눈으로 보게 되는데, 약탈자들이 사실은 외계인이 아니라 사람들이었고, 오히려 자신이 몸 바쳐 일하던 지구인이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약탈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그 약탈자들에 의해 선택되어 수없이 복제된 하나의 인간이고 도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결국 자신이 믿고 목숨 바쳐 충성해왔던 그 중간 행성, 즉 약탈자들의 중심부로 잠입하여 자신을 만들고 자신의 기억을 지우고 자신을 이용해먹은 약탈자를 파괴시킨다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을 절실하게 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잭 하퍼는 기억이 지워진 채 열심히 일을 합니다. 왜 일을 할까요?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일을 함으로써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어머니는 어머니로서, 아이는 아이가 해야 하는 일을 함으로써 자신이 누구인지 느끼며 안정감을 찾아갑니다.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다면 내가 왜 존재하는지, 왜 사는지 혼란스럽게 되어서 불안하게 됩니다. 그것을 견딜 수 없어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데도 잭 하퍼는 여전히 혼란스럽습니다. 지금까지 인간을 위해 일을 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자신이 고친 기계가 오히려 인간을 죽이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사람은 일만 한다고 자신이 누구인지, 왜 존재하는지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잭 하퍼처럼 자신의 적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빈 라덴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생각해봅시다. 그들도 누군가를 위해 일하며 의미 있는 죽음을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미가제 자살 특공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천황과 나라를 위해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리옷 유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다 지도자들과 돈을 위해 일을 하였습니다.

잭 하퍼가 느끼는 불안은 이것입니다.

‘나도 인간인데 인간을 저렇게 죽이는 주인이 나도 저렇게 하찮게 여기지 않을까?’

그렇습니다. 누구나가 일을 해야만 자신의 정체성을 느끼게 되고, 일을 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포함해 누군가를 ‘위해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누군가가 나와 같은 인간을 소중하게 여길 줄 모르는 존재라면 나 역시 ‘소모품처럼’ 그 주인에게 ‘이용’당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깨는 일을 시키는 그 누구도 나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저도 지금은 예수님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지만, 전에는 내 자신을 위해 공부하고 일을 하였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경영학을 공부하였지만 하면 할수록 회의가 드는 것이었습니다. 잭 하퍼가 무언가 일을 열심히 하고는 있었지만 끊임없는 회의가 들었던 것과도 같을 것입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그렇게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것입니다. 특히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나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이익을 극소화시켜야 한다는 법칙 때문이었습니다. 나를 위해서 산다는 것은 결국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잭 하퍼는 지금까지 자신을 인간을 죽이는 일에 이용했던 주인을 찾아가 죽이게 됩니다. 저는 그 약탈자가 바로 나의 자아라는 것을 압니다. 사실 자아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라고 하지만 그렇게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다보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이기주의자가 되어버리게 됩니다. 즉 자아는 나와 똑같은 인간을 이용하여 나의 이익을 챙기게 만드는 인간을 전혀 존엄하게 생각하지 않는 가짜 주인인 것입니다. 그 주인에 속아서 그 주인의 일을 해주며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소주일입니다. 그리고 복음내용에서 보듯이 착한목자 주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착한목자로서 양들을 아버지께 이끄는 임무를 부여받으셨고, 세상의 많은 제자들을 뽑아 당신의 직무를 이어가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성소, 즉 거룩한 부르심인 것입니다. 하느님도 나에게 일을 시키면서 내 정체성을 찾아주려 하십니다. 하느님은 나를 태어나게 하셨고 그랬다면 어떻게 쓰시기 위해 나를 존재하게 하셨는지 이미 계획이 다 있으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인간을 존엄하게 여기시는 주인일까요? 당연히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시키려는 일이 사람을 해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영혼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셨으면 당신 아드님의 목숨을 바치시면서까지 구하려 하셨겠습니까?

결국 우리는 지워진 기억을 되살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원천이 누구인지 알아야합니다. 왜냐하면 그 원천이란 것이 있다면, 만약 나를 존재하게 한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면 나를 존재하게 한 이유가 있을 것인데 그 이유가 바로 나의 존재 이유인 동시에 소명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1982년 호주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원인도 알 수 없이 양 팔과 다리가 없이 태어났습니다. 그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특히 젊은이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가 강연하는 것은 매우 감동적인데 특히 일부러 앞으로 넘어져서 머리와 아주 작은 다리를 이용해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줄 때는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온 몸이 성하면서도 지금까지 넘어져 일어서지 못했던 절망의 시절을 반성하며 다시 일어서려는 희망을 갖게 됩니다. 그는 또 최근에 아리따운 여인과 결혼까지 하게 되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든 시기도 있었습니다.

“나는 왜 팔다리가 없이 태어났을까?”

학교에 입학해 친구들로부터 신체적인 차이로 따돌림을 당해야 했고, 8살 때는 자살시도도 합니다. 그러던 중 요한복음 9장의 태생소경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길을 지나면서 눈이 없이 태어난 소경 거지를 봅니다.

“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이상야릇한 대답을 하십니다.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하느님의 일이 그 사람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이유가 하느님의 뜻을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다 이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는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개어 그의 눈에 발라줍니다. 그가 실로암에 가서 씻으니 눈이 다시 생겨났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에게 가서 없던 눈을 다시 만들어 줄 수 있는 분은 분명 하느님의 사람이라고 증언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병이 고쳐지는 것으로는 그들에게 믿음을 줄 수가 없어서, 하느님이 태초에 진흙으로 인간을 만드셨듯이 없던 것을 다시 만들어 줄 수 있는 분이 하느님으로부터 온 분이 아닐 수 없음을 입증하시려고 했던 것입니다.

닉 부이치치는 이 말씀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느님이 자신이 그렇게 태어나게 하신 이유는 자신을 통해 절망하고 쓰러져 일어날 힘이 없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게 하심이었다고 믿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는 희망 전도사로서 항상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 자아를 만족시키려면 끊임없이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어야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존중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도 존중받을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슬퍼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주인으로 삼게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을 베풀어주는 사람이 되게 됩니다. 희망을 주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자신도 귀중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며 행복해하게 됩니다. 이는 하느님을 주인으로 삼고 그 뜻, 즉 성소를 받아들을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소는 결국 나를 알고 나의 주인을 알고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필연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하느님이 나를 창조할 때부터 가지고 계신 나에 대한 계획이고 나의 존재이유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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