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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4주일(성소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21 조회수314 추천수2 반대(0)


동창들과 이야기를 하면 주로 본당 사목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늘 하는 이야기가 본당에 부임을 하면 6개월은 지켜보자는 이야기입니다. 나무를 옮겨 심으면 자리를 잡아야 하듯이, 본당 공동체에도 본당 신부가 새로 부임하면 서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생기는 것은 너무 급하게 바꾸려 하기 때문입니다. 신자분들은 이미 전임 신부님의 사목 방침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전례, 행사, 재정과 같은 부분이 그렇습니다. 본당 공동체의 친교와 나눔도 그렇습니다. 새로이 부임을 해서 급하게 바꾸려하면 본인도 힘들고, 신자분들도 힘들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갈등도 생기고, 어려움도 생기곤 합니다.

동창들이 하나같이 하는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문제들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본당신부와 신앙공동체가 서로 호흡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처음에는 희미하던 것들이 뚜렷해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신부라면 사랑이 넘치는 신앙공동체와 함께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목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생각하면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온전한 마음으로 응답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성소주일’입니다. 성소주일에 생각나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아는 자매님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이야길 하는데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시더군요. “사제로 사는지 22년이 되어 가는데 어떻게 지낼 만한지요?” 저는 그 질문을 받고 잠시 생각했습니다. 내가 사제로 살아가는 것이 지낼 만한 것인지, 아니면 마지못해서 지내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제 생활이 재미있으면 하고 재미없으면 시장에서 물건 바꾸듯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자매님은 제게 이런 이야길 하시더군요. 둘째 애가 성당에서 복사를 하는데 사제가 되고 싶어 한다고 합니다. 제가 생각이 나서 전화를 하였다고 합니다. 참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가끔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신부님은 왜 결혼을 하지 않습니까?” 제가 대답도 하기 전에 한 자매님께서 이렇게 답변을 하셨습니다. “처자식이 있으면 자신이 맡은 신자들을 열심히 돌보며 사목활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으니까요.”라고 친절하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수도자나 사제들의 독신을 단순히 효과적인 사목활동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하는 것은 효과주의나 경제마인드로 접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사목활동만 잘 한다면 독신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독신생활의 참된 이유는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 때문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독신으로 사셨고 우리를 위해 당신을 온전히 내놓으신 주님을 갈림 없는 마음으로 따르기 위한 것입니다. 사제가 독신으로 살기 때문에 사목활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독신생활에서 따라오는 부수적인 결과이지 목적은 아닐 것입니다. 사제나 수도자들의 독신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에서 그 근거를 두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입니까! 예수님은 나를 따르려면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첫째, 혈연관계보다 예수님을 더 따라야 한다고 합니다. 단순히 독신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과 가르침을 먼저 생각하고 따라야 한다고 이야기하십니다.
둘째,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를 마음의 준비가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지배하고 소유하려고 한다면 독신으로 사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남을 탓하고 원망하는 삶의 자세를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셋째,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버릴 수 있는 무소유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내 주위를 돌아보면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1년이 지나도록 한번 입지 않는 옷도 있습니다. 몇 년 째 듣지 않는 음반도 있습니다. 필요하지 않은 것들도 포기하지 못하는데 주님을 위해서 정말 필요한 것을 버릴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여행을 가면 따로 방을 마련해 주시는 교우들의 배려에 대해서 당연하다고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 다른 분들은 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사제라는 이유로 음식을 갖다 줄 때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자가용으로 모시러 오고, 모셔다 드려야 한다고 하는 말씀을 듣고 아니라고 지하철 타고 버스타고 간다고 말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독신으로 사는 것은 필요에 의한 것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을이 아름다운 것은 죽어가기 때문이라는 말을 생각하면서 안도현님의 ‘가을엽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 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 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주어진 십자가를 충실하게 지고 가며, 나의 모든 것 주님께 돌릴 수 있을 때, 우리는 주님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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