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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태중에 있던 요한이 자신의 주님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었나?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21 조회수332 추천수2 반대(0) 신고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그러자 마리아가 말하였다."(루카 1,46) 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 부분은 마리아의 노래가 시작되는 첫 부분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자" 란 무엇이 그러자란 의미일까?

 

앞에서 마리아가 길을 떠나는 내용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길을

떠나 마리아가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습니다.

 

뭐라고 인사말을 하셨을까?  그냥 보통 이스라엘 민족들이 통상적으로 하는

인사말 "샬롬!" 이라고 하셨을까? 아니면 천사에게 들었던 말씀을 가지고

인사말을 하셨을까?

 

저는 천사에게 들었던 엘리사벳에 관한 기쁜 소식으로 인사말을 하셨을 것도

같습니다. 보통 너무 기쁜 소식을 들은 사람이 먼저 "어머, 엘리사벳 축하해요!"

이렇게 엘리사벳의 기쁜 소식을 축하드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다."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1-44)

 

이 말씀 안에도 다 쓰시지 않은 말씀들이 많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머, 엘리사벳 축하해요. 임신하셨다면서요?"

"아니,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그렇지 않아도 마리아의 인사말 소리를 듣고 자신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음도 예사롭지 않았는데다 자신은 이미 아기를 못낳는 여인이었던

사람이었는데 자신들이 하느님께 드린 청원이 이루어져 하느님께서 아이를

주셨음을 먼저 체험한 엘리사벳이 아니었던가요.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

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루카 1,13)

 

이렇듯 엘리사벳은 먼저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으신 분이심을 체험한

분이십니다. 이러한 체험 안에 있는 엘리사벳에게 마리아가 방문한 상태인데

마리아의 태중에는 이미 예수님이 함께 계셨습니다.

 

영이 열려 있었던 엘리사벳과 더 오묘한 것은 엘리사벳의 태중에 있는 요한이

먼저 예수님을 알아뵈었다는 내용입니다. 엘리사벳의 태중에 있는 요한이

들은 것은 성모님의 인사말씀이었는데 어떻게  알고 요한은 기뻐 뛰놀았을까?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아기의 순수하고 깨끗한 영혼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세상 물정에 때가 묻은 어른들은 눈이 멀고 귀가 멀어 자신의

주인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지만,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요한 1,9-10)

 

그러나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던 요한의 깨끗한 영은 자신의 주인을

단번에 알아 뵈온 것은 아닐까 합니다. 아직 세상을 볼 수 있는 조건이

되지는 않아서 자신의 육안으로 알아뵙지는 못했지만 눈보다 더 빠르게

자신의 주님을 알아 뵈올 수 있는 것은 영이라는 의미는 아닐런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접 자신들의 눈으로 예수님을 뵈었지만 살아생전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고백하고 진심으로 믿었던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었던가요?

 

이러한 맥락에서 아마 이 세상 사람으로 가장 먼저 자신의 주님을 알아뵈온

사람이 있다면 바로 요한이 아닐까 합니다. 성모님 다음으로 말입니다.

 

요한이 먼저 엘리사벳의 태중에서 주님을 알아뵙고 기뻐 뛰놀자 그 때에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가득자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엘리사벳은 자신의 태중에 있던 요한이 주님을 알아뵙자 자신도 알아뵙게

되었습니다. 아기와 엄마는 한 몸이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가득차 큰 소리로 외치는 엘리사벳의 찬미에,

"아니, 내가 임신한 사실을 엘리사벳이 어떻게 알았지?"

이것은 하느님께서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하신 말씀 그대로 하느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임을 성모님이 완전히 깨닫게 되시는

장면은 아닐까 합니다. 완전한 믿음이 바위와 같이 튼튼해지는 장면은

아닐까 합니다.

 

흔들렸었을 믿음이 완전한 바위와 같이 튼튼한 믿음으로 굳어졌을 때에

바로 그 때가 "그러자 마리아가 말하였다." 이 때가 아닌가 합니다.

이러한 완전한 믿음 가운데  이제 드디어 하느님을 향한 찬미의 노래를

부르십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하느님을 향한 완전한 믿음을 가지신  분만이  부를 수

있는 찬미가일 것입니다. 믿음이 흔들리는 상태에서 어찌 이러한 고백을 

할  있겠습니까?

 

하느님은 누구이신지, 또 나는 누구이신지를 온전히 깨달으신 분이

부를 수 있는 찬미의 노래일 것입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성모님의 믿음이

온전하시고 바위와 같이 튼튼하고 흔들림이 없으신 고백의 노래이기도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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