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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24 조회수839 추천수14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4월 24일 부활 제4주간 수요일



I came into the world as light,
so that everyone who believes
in me might not remain in darkness.
(Jn.12,46)


제1독서 사도 12,24─13,5ㄱ
복음 요한 12,44-50

저에게 사람들은 자주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성인 사제되시길 기도할게요.”

그렇다면 성인 사제의 삶은 어떤 삶일까요?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편하게 사는 삶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니지요. 우리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성인과 닮은 삶을 사는 사제가 되기를 기도하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삶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어떤 성인은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어 놓아야 했으며, 어떤 성인은 희생과 극기의 삶을 하느님께 봉헌하면서 어떻게 보면 인간적으로 아주 비참한 생활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성인 사제되시길 기도하십니다. 왜냐하면 인간 세상에서의 행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제시하시는 길을 따르는 것이 가장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어떤 신부의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다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와 같은 선교 지역에서 열심히 선교하시는 신부님들을 보면 정말로 존경스럽지요?”

“그럼요. 그 신부님들은 정말로 대단하신 것 같아요. 이태석 신부님을 생각해보세요. 어떻게 존경을 안 할 수가 있겠어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어머니께 “그러면 만약 어머니 아들 신부가 그런 선교 지역을 간다면 어떠시겠어요?”라고 여쭸습니다. 이에 그 신부의 어머니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말씀하시네요.

“신부님, 그런 말씀 제발 하지 마세요.”

분명 존경받고 사랑받는 길이 어떤 길인지 잘 아시지요. 또 어떤 길이 성인 사제 되는 길인지도 잘 아십니다. 그러나 아들이 고생하고 힘든 곳에서 생활하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이 모습이 부모의 마음이겠지만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은 아닐 것입니다.

인간적인 기준을 떠나서 하느님의 기준을 따르는 것. 우리 모두가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입니다. 인간적인 기준을 내세운다면 거룩한 생활, 참 행복의 길로 들어가는데 커다란 장애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도 말씀하셨듯이, 빛으로 이 세상에 오신 주님이십니다. 빛은 세상을 환하게 밝기 비추는 역할이지요. 그러나 남을 환하게 비출 뿐, 정작 자신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세상을 비추시기 위해 오신 주님께서 우리들 역시 그렇게 살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인간적인 기준만을 내세우면 할 수 없는 것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내세우시는 사랑의 기준에 맞추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어디에 기준을 맞출 지는 바로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사랑 그 자체에는 실패가 없어요. 누군가를 좋아하면 내 마음도 행복해지고 평안을 느끼지 않습니까. 사랑에 빠지면 행복해지는 사람은 상대가 아니라 결국 나 자신입니다(법륜).


어제 강의를 했던 흑석동 성당입니다.



침묵의 힘

제가 아는 형제님 중에서 불의를 보면 도저히 참지를 못하는 분이 계십니다. 어느 정도냐면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담배꽁초를 창밖으로 던지면, 차에서 내려 꽁초를 주워 창밖으로 버린 분에게 다시 되돌려 주는 분이시지요. 그러다보니 싸움도 참 많이 했다고 들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런데 더 무서운 사람은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침묵 중에서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언젠가 자매님들과 함께 길을 가는데 한 자매님이 길에 떨어진 휴지들을 말없이 주우시는 것입니다. 함께 가는 사람들은 이 모습을 못 본 채 하면서 지나가고 있었지만, 이 자매님은 꿋꿋하게 휴지들을 아무 말 없이 주우셨습니다. 잠시 뒤에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그 누구도 휴지를 줍자고 말하지 않았지만, 함께 걷던 모든 분들이 휴지를 보면 줍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긴 엄마들도 아이들 교육시킬 때, 말로써 혼을 내기도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침묵을 지키면서 보고만 있을 때가 있더군요. 그런데 말로 혼을 내는 경우보다 침묵 가운데 보고 있을 때를 아이들은 더 무서워합니다.

침묵의 힘을 깨닫습니다. 많은 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리고 그 말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 같지만, 사실은 침묵이 오히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예수님도 우리의 그렇게 많은 잘잘못에도 그냥 침묵해주시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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