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0) 타락 / 죄
작성자김영범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24 조회수386 추천수0 반대(0) 신고
 

* 제 7 단락  타 락----  교리서 간추림 부분  

413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 이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다”(지혜 1,13; 2,24).

414 사탄 또는 악마와 모든 마귀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계획에 봉사하기를 거부하여 타

락한 천사들이다. 하느님을 거스르는 그들의 선택은
결정적인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에

대한 자신들의 반역에
인간을 끌어들이고자 애쓴다.

415 “하느님께서 의롭게 창조하신 인간은 그러나 악의 유혹에 넘어가 역사의 시초부터

제 자유를 남용하여, 하느님께 반항하고 하느님을 떠나서 제 목적을 달성하려
하였

다.”312)

416 첫 인간으로서 아담은 죄를 지음으로써, 자기 자신뿐 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하여 하

느님께 받은 원초적인 거룩함과 의로움을 잃어버렸다.

417 아담과 하와는 그들의 첫 범죄로 후손들에게 원초적인 거룩함과 의로움을 상실한

손상된 인간 본성을 전해 주었다. 이 상실을 ‘원죄’라 한다.

418 원죄의 결과로 인간 본성은 그 힘이 약해져서, 무지와 고통과 죽음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죄로 기울게 되었다(이러한 경향을 ‘탐욕’이라 한다).

# 탐욕은 원죄의 결과이지 본죄가 아님 , 번식의 성격이지 모방의 성격이 아님

( 개신교는 원죄 = 본죄 ) (천주교는 본죄란 원죄의 결과 )

419 “그러므로 우리는 트리엔트 공의회에 따라, 원죄는 ‘모방이 아닌 번식으로’ 인간 본

성과 함께 전달되며, ‘각자에게 고유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313)

 

420 그리스도께서 획득하신 죄에 대한 승리는, 죄가 우리에게서 빼앗아 간 것보다 더 좋

은 것을 우리에게 준다.
(원복음)

421 “그리스도인은 이 세계가 창조주의 사랑으로 창조되고 보존된다고 믿는다. 죄의 노

예 상태에 떨어졌으나,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악의 권세

를 쳐부수시고 해방시키신
이 세계는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변혁되고 침내 완성될 것

이다.”314)

 

<죄...>

아담의 범죄에서 드는 궁금증.. 왜 하느님은 아담이 범죄하게 내 버려 두었는가?

그에 대한  답은 '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도 주었다. '

 영성 심리학에서는 원죄로 인한 하느님의 징벌을 벌의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 이

라고 하면서 하느님께서 세상을 노동으로 창조하고 인간을 낳은 고통을 인간도 함께 겪

어보는 축복이다..라고 풀이 해 줍니다.

 원복음이란  죄가 인간에게 빼앗아 간 것보다 하느님께서는 더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

입니다. 


그런데 이 아담의 원죄가 갖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이 불순종의 원죄를 무시하게 되면 인간은 사회,정치,교육과 같은 관계의 틀에서

심각한 범죄를 지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느님께서는 아담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원복음 - 나중에 인간의 후손이 뱀을 밟을
것이다 - 을 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원죄를 항상 경계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짓는 본죄가 바로 이 원죄의 흔적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릴때 겪은 상처가 잠재의식에 남아 어른이 된 후에도 계속 괴롭히는 것과 같은 이치

입니다.

그러므로 원죄 사함을 받는 영세를 받은 후에도 갱신서약은  필요한 법입니다.

오늘 교리를 소개한 부분은 ' 타락 ' .....

아무리 깨끗한 물도 일정기간 고여 있게 되면 썪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서 하시는 말씀이지만 

우리가 그것을 지키는 것 까지는  못할 망정  교만으로 인해 적극적으로 거부를 하거나

모독을 하게 되면 예수님도 어쩔 수 없이 우리를 썪게 만듭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총도 많다' 함은 죄를 권장하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하느님께서 인간을 극진히 사랑하신 다는 의미 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애초부터 인간을 괴롭히기 위해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죄를 짓는 인간이라 할 지라도 하느님께서는 계속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물론 끝까지 회개를 거부하면 스스로 썪게 되지요...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선행에 힘써야 함은 남을 위한 배려, 희생이라기 보다

반드시 필요한 의무사항 입니다.

사회보장권마저 짓밟힌 약자를 위한 의무를 누가 해야 할까요?

바로 그리스도인, 그리고 그들이 모인 교회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세상의 빛과 소금들이 오늘날 약자 앞에서 침묵을 하고 있는 중일까요?

' 하느님이 침묵 하시니까 따라서 침묵하는 것입니까? '

이는 변명 축에도 못 낍니따.

부모님이 자식에게 회초리 들었다고 자식도 부모님께 회초리 들 수 없는 법입니다.


우리가 약자 앞에 침묵하는  죄를 범하는 원인은 

' 무사 안일 주의 ' 또는 ' 선(善)을 두려워하는 이면의 심리 '

라고 봅니다.

오늘 하루 그저 무사히 넘기는 것을 목표로만 하는 삶은 인생의 방향 앞에 커다란 천막

을 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