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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헤로데(?)가 죽어야 말씀이 자라난다?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25 조회수335 추천수1 반대(0) 신고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화) 


예수님도 자라나셨고, 말씀도 자라나셨다?

그런데 헤로데(?)가 죽어야 말씀이 자라난다?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면서 널리 퍼져 나갔다."(사도 12,24)

그런데 하느님의 말씀이 자라날 수 있으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하였습니다.

그 조건은 무엇일까?

 

오늘 묵상은 어떻게 보면 왜 예수님은 아기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알려 주시는 하느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하느님의 나라는 씨앗을 뿌려 놓으면 그 씨앗이 저절로 열매를 맺는 나라

(마르 4,26-29 참조) 곧 씨앗은 사람이 뿌리지만 싹이터서 자라고 열매 맺게

해 주시는 것은 하느님께서 해 주시는 나라이고.

 

또한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은 나라(마르 4,30-32 참조) 입니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느 씨앗보다 작지만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되는 나라라고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자라나는 나라임을 보여 주시려고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자라나셨습니다.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루카 2,40 참조)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

(루카 2,52 참조)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겨자씨처럼 자라나셔서 하늘의 새들인 우리들이

예수님의 그늘에 깃들여 살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한 알의 작은 씨앗이 땅에 심어져 썩어야 했듯이 예수님께서도

썩으셨는데 예수님은 십자가상 죽으심으로 한번만 썩으신 것이 아니라

저를  두번 썩으셨다고 보았습니다.

 

그 첫 번째 썩으심과 두 번째 썩으심은  바로 이것은 아닐까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필리 2,5-8)

 

이 모습은 요한 복음이 전하는 말씀을 당신 삶으로 사신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 12,24)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신 것이 첫 번째 썩으심이고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신

삶이 바로 두 번째 썩으심이라고 느낀 것입니다.

 

이렇게 겨자씨와 같이 땅에 심어지셔서 자라나시는 모습을 우리들에게 직접

보여주심으로써 우리들도 당신처럼 자라날 수 있는 희망을 심어 주셨습니다.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우리는 보통 이렇게 말합니다.

"아, 그 사람의 명예가 땅에 떨어졌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땅에 떨어지심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땅에 떨어지시어(아기로 태어나심) 자라나셨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행전은 말씀이 자라나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예수님께서 아기로 오셔서 자라나심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그렇다면 말씀은 어떻게 자라나는가?

 

사도행전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더욱 자랐다는 말씀 바로 앞에 어떤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느냐하면, 헤로데가 죽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안에 살고 있는 헤로데로 상징되는 것들이 죽어야만  말씀이 더욱 자라날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헤로데로 상징되는 것이란 무엇일까?

 

"헤로데는 티로와 시돈 사람들에게 몹시 화가 나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뜻을

모아 헤로데에게 갔다. 그리고 임금의 시종장 블라스토스를 설득하여 화평을

청하였다. 그들의 지방이 임금의 영토에서 양식을 공급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해진 날에 헤로데는 화려한 임금 복장을 하고 연단에 앉아 그들에게 연설을

하였다. 그때에 군중이 '저것은 신의 목소리이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다.'하고

외쳤다. 그러자 즉시 주님의 천사가 헤로데를 내리쳤다. 그가 그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벌레들에게 먹혀 숨을

거두었다. "(사도 12,20-23)

 

주님의 천사가 헤로데를 내리쳐서 헤로데가 벌레들에게 먹혀 숨을 거둔 원인을

성경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 그가 그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헤로데가 주님의 지혜로 연설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그 연설을 헤로데의 연설로 듣지 않고 신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었다는

의미인데 헤로데는 그 때에 자신이 한양 우쭐거렸던 모양입니다. 교만이었죠.

그러자 주님의 천사가 그를 내리쳤다고 합니다.

 

그렇게 헤로데가 죽은 다음에 하느님의 말씀이 더욱 자라면서 널리 펴져

나갔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일까?

 

우리에게도 헤로데의 모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모습을 가지고 있는 한

말씀은 우리 안에서 자라나지 못하고 자라나지 못하면 널리 펴져 나갈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특히 저와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각별하게 다가오는 말씀인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은사는 주님께서 주신 것인데 사람들이 박수를 치자 그 박수가

지가 잘나서 치는 줄 알고 교만해지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죽여야할 헤로데라고 느낍니다.

 

오늘의 말씀을 깊이 새개며 헤로데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비참하게 죽게

되었는지 잊지 않고 살고자 애쓰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늘 깨어 있을 수 있는 은총을 주십시오.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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