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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26 조회수679 추천수12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4월 26일 부활 제4주간 금요일



Do not let your hearts be troubled.
You have faith in God; have faith also in me.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Jn.14,1,6)


제1독서 사도13,26-33
복음 요한 14,1-6

어제 저녁식사 후 제가 살고 있는 동네의 골목골목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묵주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지난 성지순례 때 스페인의 어느 골목에서 길을 잃어버릴 뻔 했던 순간이 떠올려지더군요. 사진을 찍다보니 함께 걸어가던 일행을 놓친 것입니다. 골목이 좁고 길이 다 비슷비슷해서 어디로 가야 할지를 잘 모르겠더군요. 다행히 잠시 뒤에 가이드를 만나서 그 골목을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순간적으로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어제 묵주기도를 하면서 지나는 골목들이 스페인의 골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골목에서도 제가 길을 잃어버릴까봐 두려워했을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골목길을 자주 걸었기 때문에, 눈을 감고도 훤히 알 수 있지요. 따라서 길을 잃어 버릴까봐 염려할 이유도 또 두려워할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운전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아는 길에서는 굳이 차량용 내비게이션을 켜지 않습니다. 그러나 처음 가보는 길, 그래서 잘 모르는 길에서는 내비게이션을 켜서 그 안내를 철저히 따르게 됩니다.

이렇게 길을 알고 모르냐에 따라서 마음가짐도 다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 나아가는 구원의 길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을까요? 어쩌면 우리의 미래가 결정될 가장 중요한 길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길을 따라 걸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알지 못하고, 또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구원의 길을 걷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약 주님을 잘 알고 있다면 이 구원의 길을 모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두려움 없이 힘차게 지금 이 시간을 잘 활용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과 멀리 떨어져서 그분을 잘 모르고 있는 우리의 마음이 문제가 아닐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라고 확실하게 말씀하십니다.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시험 때 정답을 맞히기 위해서이지요. 주님이 바로 정답이신데, 그 정답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맞을 수가 있을까요?

언젠가 어떤 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신부님, 저는 어렵고 힘든 문제가 생기면 동네 카페에 가서 커피를 시켜서 마셔요. 그리고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하지요.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그러다보면 저도 모르게 문제에서 탈출하게 됩니다.”

카페에만 가도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 나아간다면 얼마나 문제가 잘 해결되겠습니까? 어렵고 힘들 때, 주님을 찾아가보세요. 주님을 찾아가 기도하고 주님께 매달려 보십시오.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바로 주님한테 있습니다.

 
바다는 낮기 때문에 모든 물을 받아들인다. 세상의 모든 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낮은 자세로 사랑해야 서로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다(이지성).


연등이 잔뜩 걸려있네요. 밤에 보니 예뻐서 찍어 봅니다.



맛있게~~~

제 선배 신부님 중에 한 분은 음식을 드실 때 항상 ‘맛있다’를 외치십니다. 그런데 이 신부님께서는 교통사고로 인해 후각을 잃으셨습니다. 냄새를 못 맡으면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고 하지요(음식을 드실 때 코를 막아보세요. 맛을 잘 모릅니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언제나 ‘맛있다’를 외치시며 맛있게 드십니다. 그러다보니 음식을 사주시는 분이나 식당 주인 모두 좋아하더군요. 맛있게 드시니 서비스도 달라집니다. 밥도 더 가져다주고, 반찬도 알아서 더 가지고 옵니다. 나중에는 후식까지 챙겨서 주시네요. 그리고 식사를 사주신 분 역시 나중에 또 기회를 만듭니다.

이렇게 ‘맛있다’고 말씀하시는 신부님이 있는 반면에, 입맛이 아주 까다로운 신부님도 계십니다. 그 신부님의 입에서 ‘맛있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음식은 어떻고, 또 저 음식은 어떻다고 말하면서 까다로운 입맛을 자랑(?)하십니다. 이런 경우 어떨까요? 함께 식사하는 것이 큰 부담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일용할 양식이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맛보다도 그 안에 담긴 사랑을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 사랑만으로도 충분히 맛있게 먹을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떠한 음식도 다 맛있게 드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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