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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 2013.4.26 부활 제4주간 금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26 조회수408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3.4.26 부활 제4주간 금요일 사도13,26-33 요한14,1-6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지금부터 50년 전, 60년대 중반 중학교 시절 즐겨 듣던 최 희준 씨의

‘하숙생’이란 연속극 주제곡이 생각납니다.

이때 시골 동네에는
전기도 안 들어왔고 동네에는 라디오도 몇 대 되지 않았습니다.

-인생은 나그네길/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정처 없이 흘러서간다.
 인생은 벌거숭이/빈손으로 왔다가/빈손으로 가는가?
 …강물이 흘러가듯/소리 없이 흘러서 간다. -

 

 

 

사춘기 시절, 그냥 마음이 끌려서 마냥 불렀던 노래인데 그 여운은 여전합니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평생화두입니다.
어디서 왔는지를 모르니 어디로 갈지도 모릅니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아는 이와 모르는 이는 천지차이입니다.

많은 이들이 무의미와 허무, 혼란 중에 방황하는 까닭은
바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은 이 답을 줍니다.

며칠 전 읽은 이와 흡사한 예화도 생각납니다.

 

-한 노인이 공원 의자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땅거미가 깔리고 공원 문을 닫아야 할 시간,
 공원지기가 다가와 눈을 감고 있는 노인을 발견하고 고함을 질렀다.
 “당신 누구요? 어디서 왔소?”

노인은 눈을 번쩍 뜨며 대답했다.
 “내 그걸 몰라 이렇게 앉아 있소.”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이야기이다.-

 

역시 우리 모두를 향한 화두 같은 ‘당신 누구요? 어디서 왔소?’ 물음입니다.
선뜻 대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원을, 우리의 기원을 묻는 심원한 물음입니다.
역시 오늘 복음이 답을 줍니다.

제가 피정 강론 때 많이 드는 예화도 생각납니다.

 

-일일일생(一日一生),
 일생을 하루로 압축할 때 여러분은 어느 시점에 와 있습니까?
 오전입니까, 오후 입니까?
 우리의 죽음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귀가(歸家)입니다.
 오후로 넘어가면서 점차 귀가 시간도 가까워집니다.-

 

긴 인생 여정 같아도 하루로 압축하면 절박해집니다.

가왕(歌王)이라 일컫는 조용필 씨의 다음 인터뷰 대목도 생각납니다.

 

“내 나이를 65세라고 쓴 매체가 있다.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른다.
 한해 한해가 아까워 죽겠는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고 산다면
한해 한해가 아까워 그렇게 초조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성인(聖人)들은 물론이요 믿는 이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압니다.

우리가 세례 받아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났다는 사실은

바로 하느님으로부터 기원되어 하느님 목적지를 향한 여정임을 알려 줍니다.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나는,
하느님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느님으로 끝나는
우리 수도원의 하루가 우리의 평생 삶을 압축합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근원적 불안과 두려움은 영원한 도반이신 예수님을,
우리의 출발점이자 종착지인 하느님을 믿을 때 해소됩니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바로 우리의 궁극 목적지는 아버지의 집임을 깨닫게 됩니다.

끊임없이 거처할 곳이 많은 아버지의 집인 수도원에
피정 차 와서
머무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 아버지께, 아버지의 집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뿐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가이드이신 예수님을 따라갈 때 무사히 아버지의 집에 이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이 주님의 길을 벗어나, 길을 잃어 떠돌며 방황하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길이라고 다 길이 아닙니다.
거짓과 죽음에 이르는 멸망의 길도 무수히 많습니다.
지옥에 이르는 길은 아름답게 포장되어있다는 말도 생각이 납니다.

아버지께 이르는 생명의 길, 진리의 길이신 예수님을 따라갈 때
성공적 인생여정입니다.

 

오늘 복음 주석을 읽다가 은혜로운 구절이 있어 나눕니다.

 

‘예수님을 통해 알게 되는 계시는 하느님에 관한 정보가 아니라

하느님과의 친밀한 일치요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의 나눔이다(The revelation, accessible through Jesus, is not information about God, but intimate communion with God, a share in God's own eternal life).’

 

바로 미사은총이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과 깊은 일치를 살 때 깨닫는 현실입니다.

 

바로 이런 경지의 영원한 생명을 살고 있는 바오로의 설교입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분명히 알 때 말씀은 힘이 실리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우리 선조들에게 하신 약속을,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그들의 후손인 우리에게 실현시켜 주셨습니다.
  이는 시편 제2편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예수님을 부활시키심으로 시편 말씀을 확증하신 하느님이십니다.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와 깊은 친교를 누리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은 당신과 하나 된 우리 모두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아들(딸),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아멘.

 

매일 주님의 진리의 말씀과 사랑의 성체를 모심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우리들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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