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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신앙의 해[157]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27 조회수324 추천수1 반대(0) 신고


                                                                          그림 : 전주 풍남문 성지

척박한 사막에서는 사람들의 가장 큰 기쁨은 비가 많이 오는 것일 게다.
이곳 어느 주민들은 언제나 신에게 기우제를 지냈단다.
그런데 한 가지 희한한 건 수십 년째 한 번도 예외 없이
그 기우제를 지낼 때마다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는 것이다.
이유는 비가 올 때까지 그들이 기우제를 계속해서 지냈기 때문이라나.
그들은 신께서 반드시 비를 내려 주시리라는 굳은 믿음으로
비가 올 때까지 지냈기에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던 것이리라.
믿음과 희망이란 바로 이러한 자세가 아닐까?
 

미국의 딕(Dick)과 그의 아들 릭(Rick)의 부자(父子) 이야기가
텔레비전에 방영되어 사람들을 감동시킨 적이 있다.
릭은 뇌성 마비와 경련성 전신 마비라는 중증 장애를 지닌 채 태어났다.
그는 혼자서는 걷지도, 말을 하지도 못했다.
시간이 흘러 릭이 컴퓨터를 통해 처음으로 한 말은 ‘나는 달리고 싶어요.’였다.

아버지는 이 말에 직장을 그만두고서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
휠체어에 앉은 아들을 아버지는 뒤에서 밀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라톤 24회 완주, 철인 3종 경기 6차례 완주,
미국 대륙 횡단이라는 놀라운 일을 일군다.
이것은 건강하고 젊은 사람도 하기 힘든 일이리라.
이 모든 일을 이루고 난 릭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는 아버지가 없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아, 나는 네가 없었다면 그 일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아들에 대한 사랑과 그 아버지의 믿음이 합쳐져 이 놀라운 일이 가능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한 14,12-14)'
 

신학생 때였다. 어느 날 밤 성체 조배를 하면서 주님께 이렇게 청하였다.
“주님, 지금 제 귀에다가 대고 무언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저는 그것을 제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겠습니다.”
저는 무언가 제 귀나 눈으로 주님을 느끼고 싶었다.
그 경험만 있다면 사제직을 준비하는 데 충분할 것 같았다나.
그러자 몇 분이 지난 후 제 마음에 이러한 울림이 퍼졌다.
‘얘야, 나는 이미 너에게 내가 할 말을 다했단다.’

그분께서는 매번 분명 답을 주셨는데 우리가 몰랐을 뿐이다.
그분께서는 지금도 숱한 ‘사건과 만남’을 통하여 ‘메시지’를 주고 계실 게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이제라도 ‘주님의 뜻’을 찾는 기도를 바쳐야 한다.
왜 그런 사건과 만남을 ‘주셨는지’에 대한 묵상이리라.
좋은 일에는 감사를 드리고 시련에는 의미를 묻자.
그러면 주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게다.
사건과 만남 속에 담긴 그분의 깊은 ‘가르침’을 해독할 수 있으리라.
기도와 묵상이 없기에 깨달음은 지나가고 만다. 우연한 사건으로 끝나 버리는 거다.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루어 주겠다.”
예수님께서 무심코 이 말씀을 하신 게은 아니다.
그분께서는 진정으로 믿는 이들의 청을 들어주고자 하셨다.
그러기에 그분께 간청했던 병자들은 예외 없이 치유를 체험했다.
나을 수 없다고 체념했던 사람도 예수님 앞에 나아갔기에 기적을 안았다.
성경을 통해 자주 만난 내용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은 머뭇거린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면 되는데도 미적 인다.
이유가 무엇일까? 절실하게 다가가지 않기 때문일 게다. 모든 기도에는 힘이 있다.
간절하게 부르면 ‘영혼’이 알아 첼 게다.
주님께서도 그런 목소리는 일체 외면하지 않으리라.
그 애절함이 없기에 머뭇거리게 될 것이다.

애절함은 인연을 자아낸다.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인연을 만나는지?
맺고 싶다고 맺어지는 것이 아니고 끊고 싶다고 끊어지는 것이 아닌 게 인연이다.
그 인연에 괴로워하고 때로는 그 인연에서 상처도 받는다.
그러기에 애절함도 더해진다.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를 시작하고 끝낸다.
오늘만큼은 그분과의 인연을 위해 정성과 간절함을 더해 기도해야 할 게다.
이 좋은 인연을 악연으로 만들지 않도록 늘 애써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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