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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든 일에 하느님께 영광 -관상, 선교, 공동체- 2013.4.28 부활 제5주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28 조회수424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3.4.28 부활 제5주일(이민의 날)

 

사도14,21ㄴ-27 요한21,1-5ㄴ 요한13,31-33ㄱ.34-35

 

 


모든 일에 하느님께 영광

-관상, 선교, 공동체-

 


오늘은 하느님 예찬, 하느님 자랑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방금 흡겹게 부른 화답송 후렴도 묵상과 잘 어울립니다.

 

"내 하느님 임금님 기리오리다. 영원토록 당신 이름 기리오리다."

 

하루하루가 영원입니다.
하루하루가 하느님의 기적이요 선물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가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하느님 계신 거룩한 땅 성지(聖地)입니다. 눈만 열리면 온통 하느님 기적이 펼쳐지고 있는 성지입니다.

별다른 기적을, 별다른 성지를 찾을 것 없습니다.
그러니 매일 새벽산책이 저에겐 그대로 성지순례입니다.

 

환대의 하느님입니다.

수도원 정문을 통과해 성전 앞 주차장 까지 난 배 밭 사이 길,
만개한 배꽃들이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환대하고 있습니다.

그대로 하느님의 환대를 상징합니다.

하여 수도원을 하느님 환대의 집이라 일컫습니다.

고향집 아버지의 집을 찾는 무수한 사람들을 환대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이십니다.

 

하느님 예찬, 하느님 자랑은 끝이 없습니다. \
이보다 유쾌하고 행복한 일도 없습니다.

지난 수요일 저녁기도와 미사 중 시편 한 구절에 대한 제 해설이 생각납니다.

 

-‘주님 당신 얼을 떠나 어디로 가오리까?
당신 얼굴 피해갈 곳 어디 이리까?
하늘로 올라가도 거기 주님은 계시고, 지옥으로 내려가도 거기 계시나이다.’

 

지옥에도 주님이 계시다는 사실이 놀랍고 큰 위로가 됩니다.
하느님을 등진 곳이 지옥입니다.
주님이 계셔도 모두가 하느님을 등지고 산다면
아무리 자연환경 좋아도 거기가 지옥입니다.

 

회개로 하느님을 향할 때 지옥은 천국으로 바뀌고 거기가 천국입니다.
그러니 똑같은 환경에서 천국을 사는 이도 있고 지옥을 사는 이도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모두 제대의 하느님을 바라보며 미사를 봉헌하는 시간이
바로 천국임을 깨닫습니다.-

 

어제 토요일 봄 꽃 만발한 수도원을 참 많은 이들이 찾았습니다.

화창한 봄날과 봄꽃을 즐기던 이들이 오후 4-5시쯤 되니 썰물이 빠지듯
고요한 분위기가 새삼스런 깨달음이었습니다.

저녁이 가까우니 모두 귀가(歸家)한 것입니다.

 

‘아, 인생 오후가 되면 서서히 아버지의 집에의 귀가(죽음)를 준비해야겠구나.’하는 깨달음이 가슴을 쳤습니다.

이렇듯 자명한 하느님을 까맣게 잊고 지내는 것이
오늘날 문제의 원천이요 비극이자 불행입니다.

도대체 시작이자 끝인, 출발지이자 목적지인 하느님을 잊어
무의미와 허무의 어둠 속에 길을 잃고 방황이요 혼란에 무질서한 삶입니다.

 

오늘 강론 제목이자 분도회의 모토인
‘모든 일에 하느님께 영광’이 우리 삶의 목적을 분명히 밝혀줍니다.

관상-선교-공동체를 통해 환히 드러나는 하느님의 영광이요
우리 모두를 향한 다음 주님의 세 가지 당부입니다.

 

 

 

 

 


첫째, 관상가가 되십시오.

 

하느님 관상이, 하느님 꿈이, 하느님 비전이 우선입니다.
관상가가 되라고, 하느님을 꿈꾸라고, 생생한 하느님 비전을 품고 살라고
선사된 삶입니다.

 

하느님 관상을, 하느님 꿈을, 하느님 비전을 잃어 불행입니다.
하느님과의 일치인 관상은 모든 활동의 샘입니다.

관상의 꽃 없이는 선교의 열매도 없습니다.
관상에서 저절로 흘러나가는 선교활동입니다.

 

오늘 2독서에서 착안한 관상입니다.
요한묵시록을 통한 요한 사도의 하느님 관상이 놀랍습니다.
무궁한 영감의 원천이 됩니다.
이런 관상의 비전이 부단히 현실을 변화시키는 내적 원동력이 됩니다.

 

“나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 바로 이게 하느님의 선물인 새로운 공동체, 유토피아 공동체의 원형이요,
그 내용은 어좌에서 울려오는 큰 목소리를 통해 환히 드러납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다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공동체의 꿈이, 희망이 우리를 살게 하는 힘입니다.
이런 공동체를 어렴풋이나마 감지할 수 있는 게 바로 미사은총입니다.

 

하느님 꿈은 참 꿈이라 꿈꾸는 대로 됩니다.
얼마나 고무적이고 위로가 되고 희망이 넘치는 비전인지요.

이런 비전을, 꿈을 잃어 무기력, 무감각, 무의미한 삶, 허무한 삶입니다.

이런 꿈을 늘 생생하게 지니고 사는 이가 진짜 하느님의 관상가입니다.

 

 

 

 

 


둘째, 선교사가 되십시오.

 

관상과 선교는 하나입니다.
안으로는 관상가, 밖으로는 선교사가 될 때 온전한 소명의 완성입니다.

저는 오늘 1독서에서 선교활동을 묵상했습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 두 사도는
누구보다도 주님과 일치되어 사셨던 관상가였습니다.

두 사도를 통해 관상의 꽃이 풍성한 선교의 열매로 드러납니다.
관상의 진위는 선교를 통해 검증됩니다.

두 사도의 지칠 줄 모르는 선교활동을 통해
이분들의 관상이 얼마나 깊은지 깨닫습니다.

 

관상은 사랑입니다.
선교도 사랑입니다.

관상이냐 선교냐 이분법은 맞지 않습니다.
관상도 선교도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이분들의 선교활동이 눈부시고 진정성이 넘쳐 참 아름답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고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하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하고
  말하였다.-

 

또 두 사도는 교회마다 제자들을 위하여 원로들을 임명하고,
단식하며 기도한 뒤에, 그들이 믿게 된 주님께 이들을 의탁합니다.

또 사명을 끝낸 후 안티오키아 교회 공동체에 돌아와 한 일을 모두 보고합니다.

관상의 교회 공동체에 깊이 뿌리내렸을 때
지칠 줄 모르는 선교활동임을 깨닫습니다.

 

 

 

 

 


셋째, 공동체를 사랑으로 가꾸고 돌보십시오.

 

공동체를 떠난 관상과 선교는 환상입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선교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도
안티오키아 교회 공동체란 배경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오늘 주님은 복음에서 공동체 건설의 비결을 알려주십니다.

예수님의 유언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내 멋대로의 감정사랑, 기분사랑도, 마음사랑도 아닙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집착 없는 무사(無私, 無邪)한 사랑, 자유롭게 하는 사랑, 생명을 주는 사랑입니다.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랑, 신뢰하고 예의를 지키는 사랑입니다.
공동체의 중심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공동체는 결국 주님의 선물 공동체임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서로 사랑할 때
모든 사람은 이것을 보고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것입니다.

새삼 사랑 역시 평생공부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평생 주님의 사랑 방법을 배우고 실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여 믿는 이들의 공동체는 그대로 사랑의 학교입니다.
평생 졸업이 없는 사랑의 학교에 재학 중인 평생학생인 우리들입니다.

 

이런 사랑은 비상하지 않습니다.

사제서품 50주년 금경축을 맞이한 인천 교구 오경환 신부님의 행적이 감동입니다.

‘50년 사제 생활의 원칙;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 존중하기, 화내지 않기’

신부님의 삶을 요약한 짧은 대목이 사랑의 정체를 밝혀 줍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를 존중하는 것, 화내지 않는 것,
평범하나 이 보다 더 좋은 사랑 실천도 없습니다.

 

 

온 땅에 가득한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사랑을 통해 환히 드러나는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하느님 주신 봄의 자연보다 더 좋은 그림도, 사진도 없습니다.

그대로 사랑과 생명의 하느님 체험입니다.

얼마 전 임영웅(연극연출), 오승자(불문학자) 부부의 인터뷰 기사 중
마지막 대목에 공감했습니다.

 

“연극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아주 날것이란 점이라 생각해요. 
  어느 지인이 제게 
  ‘다른 것은 다 남는데 연극은 없어진다. 그런데 왜 하느냐’고 물은 적도 있었어요.   저는 오히려 날것으로 순간순간 생명을 사는 게 매력적인 것 같아요. 
 임선생과 50년 넘게 살다보니까 그런 걸 체득하게 된 거죠.”

 

‘나도 순간순간 날 것으로 하느님 생명을 살기에
사진도, 그림도 관심이 없었구나.’ 깨닫습니다.

좋으신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관상가가, 선교사가 되어 살라고,
또 공동체를 사랑으로 가꾸고 돌보며 살라 고 당부하시며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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